[음악과 미술의 하모니] (23) 에곤 쉴레와 알반 베르크왜곡된 나체와 음울한 음색 말 못한 내면의 외침과 절규를 표현

에곤 쉴레
객관적인 사실보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을 표출하는 것에 중점을 둔 표현주의 예술가 와 . 쉴레의 비틀리고 왜곡된 나체와 베르크의 불안하고 음울한 음색은 왠지 모를 슬픔과 우수에 쌓여있다. 이들의 세기말적인 작품은 인간의 숨겨져 왔던 본능적 호기심과 욕망을 끌어올려 우리들의 내면을 자극한다.

베르크는 표현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 쇤베르크의 제자로 12음 기법을 사용했다. 이 기법으로 그는 음악을 통한 탁월한 인간의 심리묘사에 성공한다. 오페라 <보체크>와 함께 <>는 인간 내면의 미묘한 감정과 심리를 표현한 그의 대표작이다. 자살, 살해, 동성애, 매춘, 탈옥, 사랑 등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뱀으로 소개되는 라는 한 여인을 둘러싼 남자들과 레즈비언의 사랑과 욕망에 대한 내용이다.

음산함과 에로티시즘이 공존하는 이 오페라는 를 사랑한 대가로 파멸에 이르는 남자들과, 남자들을 파멸로 이끈 대가로 매춘부로 전락해 끝내는 살해되고 마는 의 운명을 그리고 있다. 자신을 사랑했던 많은 이들을 연이은 자살과 죽음으로 이끈, 수많은 남자들의 욕망의 대상이었던 . 그녀의 모습에선 타락과 퇴폐를 넘어 연약함과 순수함마저 느낄 수 있다.

팜므파탈인 , 유혹과 욕망을 상징하는 그녀를 탐했던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서 진정 원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많은 남자들의 죽음 앞에 그토록 의연했던 그녀의 냉담함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은 동성애자였던 게슈비츠 백작 부인뿐이었다는 결론으로 오페라는 막을 내린다.

베르크의 음악과 비슷한 작풍을 풍기는 쉴레는 뒤틀리고 비틀어진 육체에서 풍겨 나오는 에로티시즘을 보여주고 있다. 성병에 걸려 목숨을 잃은 아버지를 두었던 에게 성이란 두렵고도 헤어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성에 대한 느낌을 잃지 않는 한 사람은 그로 인해 괴롭고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라고 한 그의 말에서 그가 그린 거칠고 왜곡된 육체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소녀와 죽음
쉴레는 또한 어린 소녀의 누드를 주로 그렸는데, 여기서 그는 그가 성장기에 느꼈었던 성에 대한 호기심, 혼란, 통념에 대한 반항, 잠재의식 속의 세계 등을 표현하고 있다. 1912년, 그는 어린 소녀들을 유인해 외설적 누드를 그린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하게 된다. 판사가 자신이 아끼던 그림을 불에 태우는 모욕을 겪은 그는 "어른들은 어릴 적 성욕이 얼마나 자극적이고 사악한 것인지를 잊었나? 그 시절 불타듯 두려운 욕망이 얼마나 우리를 괴롭혔는지. 나는 잊지 않았다. 그 처절한 고통을" 이라고 일기에 적고 있다.

인간의 내면, 본능, 무의식의 세계를 그린 쉴레의 인생에는 두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한 명은 자신의 모델이자 스승 클림트의 모델이었던 발리이고 또 한 명은 중산층의 여인 에디트였다. 자신을 헌신적으로 사랑했던 발리와 연인관계에 있을 때 쉴레는 에디트를 만나 결혼을 약속한다. 그리고는 에디트와의 결혼 후에도 연인 관계를 지속하자고 빌리에게 제안하지만 발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바로 쉴레의 곁을 떠난다.

쉴레와 마찬가지로 베르크에게도 사랑하는 두 여자가 있었다. 그의 아내 헬레나와 비밀의 연인 한나였다. 베르크는 깊은 열애 끝에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헬레나와 결혼한다. 하지만 한나의 등장으로 그의 맹세는 끝이 나고 그는 아내에게 평생 애인의 존재를 숨긴 채 감춰진 사랑을 키워나간다.

그의 작품 <서정 모음곡>은 한나에 대한 사랑의 결정체로 베르크는 그와 그녀의 이니셜에 해당하는 음들을 모아 작품의 모티브로 사용한다. 이렇듯 음악을 통해서만 이들의 관계를 알릴 수 있었던 베르크는 감춰야만 했던 자신의 이중적 사랑에 괴로워했다. 다음은 베르크가 한나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이중자화상
"1925년 5월에 당신을 처음 만난 이래 나의 정열은 조금도 식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날 이후 내가 감당하고 있는 슬픔 때문에 조금 힘들 뿐이에요. 나는 이중인격자가 되었습니다."

역시 애인 발리와 아내 에디트 두 여인 사이에서 자신의 이중성에 대해 고민하고 괴로워했던 것일까? 쉴레의 그 유명한 <이중 자화상>은 1915년 그가 에디트와 결혼하던 그 해에 그려졌다. 쉴레는 인물화 외에도 소량의 풍경화를 남겼는데 그가 그린 앙상한 나뭇가지들에선 그의 마른 육체들처럼 쓸쓸함과 고독함이 묻어난다.

외롭고 혼란스러우며 처절했던 인간의 영혼을 그린 화가 . 그토록 소리치고 싶었던 절박한 사랑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작곡가 . 그들의 작품에서 말하지 못했던 내면의 외침과 절규를 듣는다.


가을 나무들
포옹
알반 베르크
룰루
베르크의 연인 한나

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음악 칼럼니스트 violinoella@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