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꼬마 패션 블로거, 타비 파격적 패션 실험 '스타일 루키' 하루 방문자 5만 명 넘어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우리 중 상당수는 패션 패배주의에 빠진 것 같다. CD로 가려질 만큼 작은 얼굴이나 소녀시대처럼 마른 다리를 가지지 않은 한 과감한 패션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라고 타인과 자기 스스로에 엄포를 놓는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후줄근한 니트와 패딩을 입은 강동원과 조인성의 사진 아래 역시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며 자기 신세를 한탄하는 댓글이 줄을 이룬다.

섹시 디바인 비욘세도 한국에서는 허벅지가 굵어 패배자, 세기의 매력남인 톰 크루즈도 여기서는 180cm에 한참 못 미치는 키로 루저다. 재미 없다.

미의 기준이 이렇게 편협한 사회라니. 그것도 아직 감성이 말랑말랑할 줄 알았던 청소년들이 더하다.

스타일의 다양성을 수평 선상이 아닌 수직 선상에 놓고, 그것도 65점, 92점이 아니라 O, X로 채점하는 이들이 한 수 배워야 할 꼬마가 있다. 열세 살의 세계적인 패션 블로거 타비 게빈슨이다.

인터넷이 세계를 하나로 묶으면서 패션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블로거는 수없이 많아졌다.

스콧 슈먼은 '사토리얼리스트'를 통해 매일 전세계 수십만 명의 사람들에게 스트리트 패션을 알리고, 영국의 패션 블로거 수지 버블은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패션계 소식을 업데이트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과 타비를 구분시키는 것은 역시 나이다. 고작 13살. 13살에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옷을 입었나? 아니, 어떤 옷으로 어떤 생각을 전달했나?

집 앞 정원에서 프런트로까지

타비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다. 아침이면 일어나 등교를 하고 학교 수업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와 숙제를 한다. 조금 다른 점은 그 후부터인데 그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스로 코디네이션을 하고 정원으로 나가 자신의 캐논 파워샷을 이용해 셀프 카메라를 찍는다.

찍은 사진은 모두 타비의 블로그인 '스타일 루키'에 업로드 된다. 물론 어릴 때 엄마 옷이나 구두를 신고 행진해 보지 않은 아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이패션 잡지의 화보를 방불케 하는 거침없고 파격적인 감각에 보는 이의 눈이 휘둥그래진다.

타비는 여러 가지 아이템을 마구 섞는데 두려움이 없다. 80년대 스타일의 요란한 파워 숄더 재킷을 입고 아래로는 히피 풍의 분홍색 레이스 스커트가 삐져 나오게 한 뒤 그 아래 아메리칸 어패럴의 황금색 레깅스를 신는 식이다.

여기에 신발은 모카빵처럼 크고 둥근 운동화를 매치한다. 색과 색이 불편할 정도로 부딪히는 것을 즐기고, 안전한 선택을 혐오한다. 그의 스타일에서는 '다리가 길어 보이도록, 조금이라도 날씬해 보이도록' 같은 조바심은 찾아볼 수 없다.

예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미를 위해 매일 새로운 것들을 뒤섞고 실험한다. 주로 치렁치렁과 알록달록을 좋아하고 구조적인 것에는 관심이 없는 그는 마틴 마르지엘라의 컬렉션을 보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일본인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로 인해 패션에 대한 열정에 불을 붙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 그대로 그녀의 스타일에서는 일본의 전위적인 스트리트 패션과 북유럽 디자이너들의 실험성이 묻어난다.

타비가 제작한 콜라주
사진을 찍을 때가 아니면 블로그에 디자이너 컬렉션에 대한 감상을 쓴다. 미니멀하고 세련된 옷으로 30대 워킹 맘들의 우상이 된 피비 파일로의 2010년 S/S 셀린느 컬렉션에 대해 이 작은 맥시멀리스트는 "난 레이어드를 사랑하고 목걸이나 반지를 몇 개씩 겹쳐 끼는 걸 좋아하지만 이 컬렉션은 완벽하다"고 코멘트를 단다.

"미술 시간에 만든 것과 똑같은 틸 블루 컬러의 스커트는 오늘 밤 꿈에 나올 것 같다"는 소녀의 말은 가끔 스타일 닷컴의 전문적이고 딱딱한 평보다 재미있는 게 사실이다. 이 '어린 것'이 전문가들도 간혹 어려워하는 하이 패션에 감동을 느낀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거니와 그 평도 제법 객관적이고 신뢰도가 높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시즌 발렌시아가 컬렉션을 두고 "미치도록 신날 만한 게 없어서 슬프다. 아주 나쁘지는 않지만 너무나 멋지지도 않다"는 말은 그냥 흘려 들을 만한 말이 아니었다. 블로그를 시작한 지 채 2년도 되기 전에 '스타일 루키'의 하루 방문자가 5만 명을 넘어 섰기 때문이다.

의도치 않게 패션계의 큰 손이 된 꼬마 아가씨는 지난해 9월에는 뉴욕 패션위크의 초대를 받아 마크 제이콥스, 알렉산더 왕, Y-3, 그리고 로다테 컬렉션의 맨 앞자리에 앉아 쇼를 관람했다. 같은 줄에는 미국 보그 편집장과 세계적인 패션 칼럼니스트들이 나란히 앉았다.

지난 11월 말에는 타비가 존경해 마지 않는 – 그녀의 집 계단에 검은 꽃잎을 뿌리고 랩으로 세레나데를 만들어 부르고 싶다는 – 꼼데갸르송의 디자이너 레이 가와쿠보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

타비와 마크 제이콥스
도쿄 텐꼬르소꼬모에서 열리는 꼼데갸르송의 홀리데이 파티에 그녀가 타비를 손님으로 초대한 것이다. 타비는 오리엔탈과 펑키한 무드가 믹스된 예의 그 실험적인 의상을 입고 엄마의 손을 꼭 잡은 채 도쿄로 날아갔다.

"패션은 가장 위대한 놀이"

되도록이면 '패션 천재'와 같은 가볍고 흔한 수식은 사용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레이 가와쿠보를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갤러리에 걸릴 만큼 크리에이티브한 동시에 도쿄의 틴에이저들이 스트리트 룩으로 즐길 수 있을 만큼 현실적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하는 것이나, 왜 블로그가 잡지보다 나은지를 묻자 '각자 다른 장점과 목적이 있는데 이런 식의 논쟁은 피곤하다'며 '블로그는 주류 매체가 아니기 때문에 광고 의존도가 낮고 그만큼 정직할 수 있는 반면 잡지는 살아 남기 위해 당연히 광고를 필요로 한다'고 블로그에 글을 남기는 데에는 (열세 살 때 뭐했더라) 왠지 환생설을 믿고 싶은 마음이 불쑥 솟아오른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녀가 천재적인 패션 감각을 가졌다는 사실뿐이 아니라 패션의 저변을 일찌감치 꿰뚫고 실컷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타비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블로그 운영 수칙이 있느냐는 질문에 "입고 싶은 대로 입을 것, 그리고 불쾌하게 쳐다보는 시선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패션은 즐거운 놀이에요.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술과 음악처럼 나를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거예요. 많은 면에서 패션은 예술보다 더 대단한 것 같아요. 왜냐하면 예술 작품과 하나가 될 순 없어도 옷은 우리의 일부가 되어 그 안에 살 수 있잖아요."

열세 살 꼬마 타비는 오늘도 자유로운 옷 입기로 자신의 영혼을 풍성하게 덧칠하는 중이다. 그를 따라 아름다움에 정답이 있다는 지루한 생각은 버리고 옷 입는 일에 재미를 추가해보는 건 어떨까. 설마 타비의 얼굴이 저 정도 되니까 그나마 저런 패션을 소화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렇다면 진짜 답이 없다.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