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사댄스컴퍼니 정용진 대표

정용진 '광대무'
고 한영숙 선생에게서 벽사(碧史)라는 호를 물려받아 지금까지 벽사류의 춤을 계승발전시킨 정재만 가문은 한국춤의 사군자라 불리는 승무(竹), 살풀이(菊), 태평무(蘭), 학무(梅) 등 수많은 명무를 보유하고 있다.

젊은 층과의 소통을 위해 그동안 운영해오던 벽사춤아카데미를 벽사댄스컴퍼니(BYUKSA Dance Company)로 변경한 지금, 대표를 맡은 정용진의 어깨는 무겁다. 대를 이어 벽사의 이름을 짊어진 명인의 아들로부터 '주니어'의 삶을 들어본다.

명인 아버지를 둔 예술가의 삶이란 어떤가요

우선 관계가 불분명해진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들에게는 그냥 스승이지만, 저는 동시에 아버지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다른 선생님께는 혼이 나도 그냥 순순히 따랐지만, 아버지께는 혼나면 대들기도 했습니다. 남들은 남자 대 남자로 얘기도 한다는데 우리는 그런 게 별로 없지요. 명인과 범인일 뿐이니까요.

춤 인생의 시작은 어땠나요? 아버지가 계승 욕심으로 춤을 강요하진 않았는지?

그런 건 전혀 없었습니다. 사고방식은 굉장히 개방적이거든요. 원래는 중학생 때 대금을 먼저 시작했어요. 그러다 아버지를 따라 유럽으로 춤 공연을 보러갔는데, 당시 88올림픽 이후 호돌이가 인기였던 때였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가 호돌이 역으로 저를 무대에 올리신 거에요. 얼떨결에 무대에 올랐는데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가 짜릿했어요. 그래서 귀국해서 춤을 배워보겠다고 했더니 "한번 해봐라"라고 하시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계획적이셨던 것 같아요(웃음).

'명인의 피'라는 점이 춤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십니까

약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한 것 같아요. 타고난 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어릴 때부터 늘 봐온 거라서 자연스럽게 춤을 습득하는 부분은 장점인 듯합니다. 반면, 그렇기 때문에 그 이상의 노력을 안 한다는 게 단점이에요. 한두 번 봐도 다 따라하니까요. 20년 정도 춤을 추고 나니까 노력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전통의 계승도 중요하지만 자신만의 특색을 살리고 싶은 욕심도 있을 것 같은데요

한국춤을 하려면 무조건 전통춤이 밑바탕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비보이와 같은 대중춤에도 관심이 많아 창작 작품에도 다양한 춤 요소를 녹여넣었습니다. 하지만 사실 제 모든 작업에는 전통 요소가 다 녹아있어요. 결국 제 춤을 찾는 것은 전통의 계승과 무관하지 않다는 겁니다.

정 대표만의 벽사는 앞으로 어떤 과제를 남겨두고 있나요

기존 벽사춤아카데미는 아버지의 일생의 사업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러운데요. 벽사춤아카데미의 인식이 전통춤이나 승무 보존회에 맞춰져 있었다면, 제가 맡음으로써 현대적 계승의 의미를 새로 다져서 벽사춤의 인식을 더욱 확장시키고 싶습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