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본, 활자본 통틀어 가장 오래된 책 1552~1560년대 초중반 간행

조선 활자본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제8권 첫부분(왼쪽), 조선 활자본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 제8권 하권(오른쪽)
국내에서 최초로 간행된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속칭 삼국지)가 처음으로 발굴, 공개됐다. 23일 서울 인사동 화봉갤러리에서 열린 옛 서적·서화 연구자 모임인 포럼 '그림과 책'(공동대표 박철상·이양재)의 학술 발표를 통해서다.

박재연 선문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이번에 발굴한 책은 1552~1560년대 초중반에 병자자(丙子字)라는 동활자로 간행된 것"이라며 "국내 남아 있는 간행본 가운데 목판본과 활자본을 통틀어 가장 오래된 책"이라고 밝혔다.

발굴된 판본의 정식 명칭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로, 전체 12권 중 8번째 권에 해당된다. 상·하로 분리돼 있고 크기는 가로 19.5㎝, 세로 30.5㎝다. 박 교수는 "중국의 가정본(嘉靖本ㆍ1522)과 주왈교본(周曰校本) 갑본(甲本ㆍ1552)을 바탕삼아 독자적으로 편집·교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삼국지연의>는 3세기 서진(西晉)의 진수(233~297)가 편찬한 <삼국지(三國志)>와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송(宋)의 배송지(372~451)의 <삼국지주(三國志註)> 등을 근거로 명나라 나관중(1330? ~ 1400)이 지은 소설이다. 오늘날 원본은 전해지지 않으며 명(明)의 가정제(嘉靖帝, 1507~1566) 때인 1522년에 간행된 '가정본(嘉靖本)'이 가장 오래된 판본으로 전해진다

우리나라에서 <삼국지연의>에 관한 첫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 전한다. 선조(宣祖) 2년(1569) 기대승이 선조에게 "삼국지연의가 나온 지 오래되지 않아 소신은 아직 보지 못했지만, 간혹 친구들에게 들으니 허망하고 터무니없는 말이 매우 많다고 하였습니다"고 말한 대목이다.

그간 국내 최고의 <삼국지연의>본은 '정묘년에 탐라(제주)에서 간행(丁卯耽羅開刊)'했다는 기록이 있는 목판본으로 알려졌다. 이 판본의 정묘년이 임란 전의 1567년인지, 임란 뒤 인조 연간의 1627년인지를 놓고 학계에서 논쟁이 돼왔으나 최근 연구 결과 판본의 지질과 서지 형태 등이 임란 후의 것으로 판단된다.

박재연 교수는 "이번에 공개된 <삼국지연의> 판본은 주왈교본 갑본이 나온 시점(1552년)에서 얼마간 뒤인 1550년대 후반과 기대승이 말한 1569년 이전인 1560년대 초중반 사이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 한중일 삼국을 통틀어 최초의 활자본이라는 점, 기존에 풀지 못했던 학계의 의문점을 해소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큰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그동안 삼국지 판본 연구는 일본과 중국이 주도했으나 이번 판본의 발굴로 한국도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됐다"며 "현존 세계 최고의 삼국지 활자본이란 점에서 중국과 일본 학계의 관심을 모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