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놀이+3D 홀로그램, 전통예술 공연의 새 스타일 선보여

"춤을 글로 배웠어요~." 한 여자가 남자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몸부림을 한다. 얼마 전 유행한 한 광고는 이처럼 몸으로 익혀야만 하는 것들을 글로 배운 이들을 코믹하게 표현하며 네티즌들의 호응을 얻었다.

말로는 이해가 불가능한 것들이 있다.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체험에 의해서만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다. <아바타>의 현란한 입체 형상이 그렇다. 편광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아바타> 속 세계는 기존의 영화나 애니메이션이 가지 못했던 3차원의 세계로 관객들을 데려간다.

최첨단의 기술력과 영상미학의 결합으로 영화가 새로운 혁명의 시기를 맞은 반면, 공연의 기술적 진보는 더딘 편이다. 특히 전통문화 공연에서 디지털적 시도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원래가 아날로그적 특성이 강한 장르인데다, 구태여 디지털과의 만남을 시도할 필요도 못 느꼈기 때문. 그래서 사물놀이나 판소리와 같은 아날로그 예술들은 그 자체의 매력을 꽃피울 기회가 점차 줄어들어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무대도 극히 제한된 상태였다.

지난달 27일 광화문아트홀에서 공개된 <죽은 나무 꽃피우기>는 이런 전통예술의 아날로그적 매력을 디지털 환경을 통해 새롭게 재창조한 혁신적인 공연이었다. 일명 '디지로그 사물놀이'로 명명된 이 작품은 실제 연주자가 홀로그램과 협연하는 형태로, 범 전통예술 공연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을 선보였다.

무대 위에 사물놀이의 김덕수 명인이 있다. 배경은 밤처럼 어두컴컴하다. 앞에는 죽은 나무 한 그루가 차가운 겨울 날씨를 나타내듯 을씨년스럽게 앙상한 나뭇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이때 김덕수 명인의 장구 소리가 서서히 호흡을 빨리 가져가기 시작한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열채와 궁채의 잔상이 희미해질 때쯤, 관객은 눈을 의심하게 된다. 죽은 나무에서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하기 때문.

이윽고 푸른 잎을 가득 틔운 나무는 하나 둘씩 나뭇잎을 떨어트린다. 물방울이 튀는 것처럼 통통 튀는 장구 소리는 흩날리는 나뭇잎을 보이지 않는 손으로 휘감듯 공중에서 소용돌이를 만든다. 처음엔 적막이 흐르고 어두웠던 무대는 이제 완연한 푸른 빛을 띠며 온통 생기를 발산한다. 이때 무대 위에서 흩날리던 민들레 홀씨들이 무대를 넘어 어느새 객석 옆 벽면까지 가득 채우고 있다. 무대 위, 극장 안은 이제 봄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이 모든 것은 물론 홀로그램 영상이다. 이제까지 영상매체를 활용해 출연자들과 어우러지게 하는 공연들은 이미 있었다. 하지만 단순한 뒷배경이나 무대장치의 일환으로만 활용되는 기존 모습과 달리, <죽은 나무 꽃피우기>에서 홀로그램 기술은 출연자와 교감하며 라이브로 반응하는 인터랙티브 예술이고, 또 하나의 출연자이기도 하다.

장구를 치는 김덕수 옆에는 같은 크기의 북, 징, 꽹과리를 치는 김덕수가 자리에 앉아 함께 연주를 한다. 이날 출연자 목록에 있던 전통춤의 국수호 명인은 홀로그램으로만 출연한다. 아까 봄의 생동감을 표현했던 나무는 안숙선 명창의 한 어린 소리가 뿜어져 나오자 시나브로 마르며 얼음이 얼고 만다.

하지만 이내 신명 나는 사물놀이 한 판에 얼음은 깨지고 다시 새싹이 돋아난다. 다시 피어난 꽃잎에선 매화향이 가득하다. 심상이 아니라 '실제로' 객석에선 매화 냄새가 가득하다. 착각인가 하고 코를 의심하고 있을 때쯤, 무대 위 사물놀이패들이 "피었네, 피었네, 매화꽃이 피었네"하고 냄새의 실재를 확인해준다. 3D 전통예술 공연이 4D로 나아가는 순간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코드가 이상적으로 배합되어 있는 <죽은 나무 꽃피우기>의 탄생 배경에는 '디지로그'의 주창자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대본과 디지털 디자인 회사 디스트릭트의 홀로그램이 있다.

디지로그 이론의 주창자인 이어령 전 장관은 "별도의 장치 없이 인간의 감각만으로 즐길 수 있는 디스트릭트의 홀로그램이야말로 인간의 신체성에 기반하여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결합되는 디지로그 이론의 실체"라고 평가했다.

그의 말대로 이번 디지로그 사물놀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3D 홀로그램이다. 140년 역사를 가진 홀로그램 기술은 주로 유럽과 러시아를 중심으로 발달해 국내에서 이를 수입해 쓸 경우 고비용의 부담이 있었다. 이번 공연에 사용된 기술은 국내업체인 디스트릭트의 기술력으로 이루어져 일부 하드웨어를 제외하면 약 80%의 국내 기술에 의한 것이라 의미가 크다. 특히 <아바타>처럼 편광안경 없이 맨눈으로 감상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디스트릭트의 최은석 대표는 "홀로그램 기술은 주로 공업 분야에서 프리젠테이션 용도로 사용되어 그나마도 번쩍거리다 끝나는 경우가 많아 활용 면에서는 재미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하고 "음악과 춤, 소리 등과 만나 홀로그램이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됐다"며 자부심을 나타냈다.

하지만 이날 시연회에서 홀로그램 영상 송출이 오류를 일으키며 공연이 잠시 지연됐던 점은 디지로그 공연이 가질 수 있는 한계도 함께 드러냈다. 온-오프라인 기술 조건이 모두 맞아떨어져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공연이라는 점이다. 이어령 전 장관은 이에 대해 "빌 게이츠의 윈도우도 첫 프리젠테이션 때 오류로 엉망이 됐다"며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이 전 장관은 "3D 혁명은 올해는 강타할 중요 키워드이지만 어디까지나 가상현실일 뿐"이라며 "사람이 들어간 실제 상황을 구현할 4D가 바로 문화예술의 미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죽은 나무 꽃피우기>는 오는 5월 서울에서 열리는 유네스코 예술교육 세계대회에서 또 한번 선보일 예정이다. 이때의 반응에 따라 11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세계 정상들 앞에서 공연될 수 있어 공연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송준호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