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신비화 전략은 음식을 맛보는 향유자의 입장 아닐까

드라마 '파스타'
<대장금> 열풍의 이면에는 '요리하는 여자의 신비화'라는 이데올로기가 있었다. 장금이의 전공이 '요리'에서 '의술'로 넘어가는 스토리가 어색하지 않았던 이유는 요리=살림('사람을 살린다'는 의미에서)=치유라는 마음속의 도식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외식이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이 되어버린 도시에서 현대인들은 어느 때보다도 요리사를 숭배한다.

각종 맛집 탐험 프로그램과 <헬스키친> 같은 요리 배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유행은 '바로 그 맛'을 찾아 헤매는 현대인의 가열찬 탐구정신을 증명한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요리에 '대한' 관심은 뜨거워졌지만 정작 현대인은 '요리하는 일상'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진다는 점이다.

김치와 된장과 고추장을 담그는 집들은 점점 줄어들고 맛집 프로그램은 연일 승승장구하며 진화하는 '전도된 요리'의 세계에서, 우리는 우리가 잃어버린 '바로 그 맛'을 끝없이 그리워한다.

드라마 <파스타>는 마치 현대판 <대장금>처럼 음식을 향한 인간의 근원적 열정을 흥미롭게 탐색한다. 3년 내내 주방 보조로 고생하다 이제야 '프라이팬'을 잡을 수 있게 된 새내기 요리사 서유경(공효진). 파스타를 손님 테이블에 내는 것이 평생소원인 유경은 파스타에 얽힌 아픈 기억이 있다.

가족들에게 암 말기 선고를 숨기고 가출했던 엄마가 딸과 함께 마지막으로 먹고 싶어했던 음식, 파스타. 죽기 전에 값비싼 이태리 식당에서 딸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하고 싶었던 엄마는 '제일 싼 거'라도 먹어보자고 하며 딸을 설득했다. "제일 싼 거라도 사줄게. 엄마가 사줄게. 우리가 언제 이런 걸 먹어보겠니." 가난한 중국집 딸로 자라 '면'이라면 징글징글한 딸은 엄마가 돈이 어디 있냐며, 스파게티나 짜장면이나 비슷비슷할 거라며, 무심히 엄마를 돌려 세운 기억이 있다.

드라마 '대장금'
엄마가 돌아가신 후 뒤늦게 찾아가 먹은 '제일 싼' 파스타. 그것이 알리오 올리오였다. 그렇게 단출한 요리가 그토록 맛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유경의 눈에서는 눈물이 철철 흐른다. "이 맛있는 걸 엄마도 먹어봤으면 더 살고 싶지 않았을까, 더 살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유경은 엄마가 딸과의 마지막 만찬을 하고 싶어 그토록 서성이던 이태리 음식점에 취직하여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바로 그 맛'을 재현하고 싶어 한다. 언젠가 엄마의 제사상 위에 평생 지겹게 먹었던 아버지의 짬뽕 국물이 아니라 자신의 파스타를 올려 놓기 위해. 그런데 이태리 유학도 못 다녀오고 주방보조로 중노동을 하며 간신히 학원강습과 선배들의 어깨너머로 배운 파스타 요리의 세계는 어렵기만 하다.

유경은 새로 온 셰프 최현욱(이선균)에게 도대체 그렇게 맛있는 파스타는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배우고 싶어한다. "왜 저는 아무리 해도 이 맛이 안 나올까요?" 셰프는 묻는다. "요리할 때 맛은 보십니까? 언제?" "만들면서 수시로 보죠." 그런데 비밀은 그녀가 '만들면서 버린' 파스타에 있었다.

'나는 왜 그 맛이 안 나지?'하고 투덜거리며 버린 수채구멍 위의 파스타. 그 식어버린 파스타에 답이 있었다. "간은 음식이 '식은' 후에 보는 것이 진짜다. 특히 단맛과 짠맛이 강한 요리는 뜨거울 때 간을 보는 것과 식었을 때 간을 본 것이 확연히 다르다. 대화중에 음식은 식어가고, 손님은 마지막 맛을 기억하고 테이블을 떠난다. 손님들의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맛있도록 계산할 것. 식었을 때, 즉 마지막 맛이 있어야 손님은 또 온다." 유경은 수채구멍에 버린 식어버린 파스타를 맛 보고 나서야 그토록 꿈꾸던 알리오 올리오의 '바로 그 맛'을 발견해내고 환호한다.

유경은 천신만고 끝에 최현욱 셰프가 주관하는 '블라인드 오디션'에 합격해 다시 복직하게 된다. 심사자가 안대로 눈을 완전히 가리고 요리를 평가하는 블라인드 오디션의 정신이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요리 실력의 유토피아다. "이태리 선생님들은 접시에 그림 그리는 거 싫어했어. 누가 만들었는지 어떻게 소스로 범벅을 했는지 요리사의 이력 따위 모두 빼버린 담백한 상태에서 오로지 맛으로만 평가하겠다는 의도지." "크림이나 토마토의 어떤 옷도 걸치지 않은, 알몸의 파스타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최소한의 재료와, 최소한의 시간으로, 최고의 파스타를 완성하십시오!"

영화 '식객-김치전쟁'
요리를 돈으로 사먹어야 하는 시대에 현대인은 어떤 요리의 철학을 지녀야 할까. '일상적 습관'으로서의 요리와 '전문적 직업'으로서의 요리는 다르다. 일상 속에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비공인' 요리사들은 거의 어머니들이지만 유명한 셰프는 거의 남성인 까닭도 '직업으로서의 요리'가 가진 특수성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위대한 요리사들이 많아도 모든 음식을 그렇게 사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요리는 주로 '예술'의 경지에 오른 전문화된 요리들이지만 우리가 일상 속에서 경험하는 요리는 사실 '예술'이라기보다는 '노동' 그 자체다. 요리는 무엇보다도 중노동이다. 요리는 사실 '잘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매일 스스로 공급할 수 있는 능력 아닐까.

여전히 요리는 전문화 직업화된 기술로 받아들여질 뿐 일상의 차원으로 끌어내려지지 못했다. 마음 같아서는 영국의 스타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처럼 냉장고에 있는 재료만으로 간단하게 모든 것을 뚝딱 만들 수 있는 스피드를 배우고 싶다. 나 자신을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 가족까지 먹여살릴 수 있는 원초적 힘이 바로 요리라는 것을 누가 모르겠는가. 쉽고 빠르고 간편하게 요리하는 것으로 유명한 영국의 스타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의 레시피도 사실 우리 평범한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따라 하기가 힘들다.

식재료나 조리 도구가 우선 다르고, 제이미처럼 '즐기면서 요리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감'이 안 잡힌다. 요리 프로그램과 요리 관련 드라마는 끝없이 진화하지만, 정작 우리의 일상 속 요리 문화는 진화는커녕 퇴보하고 있는 느낌이다. 요리가 중노동이고 비효율적이라는 인식을 바꿀 수 없는 현대인의 바쁘고 피곤한 일상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바로 그 맛'을 향한 유토피아를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간신히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요리하는 여자'는 지나치게 신비화되었다. 그러나 인생의 가장 큰 신비야말로 요리라는 것을 우리의 어머니들은, 우리의 와이프들은, 그리고 '1인 가족'으로 살아가는 싱글들은 느낄 것이다. 혼자 사는 친구들에게 '집에서 밥을 해 먹냐'고 물어볼 때마다 그순간 그들의 얼굴에 스쳐가는 날선 어둠을 본다. 잘 챙겨먹고 싶은데 늘 혼자 먹기 때문에 대충 때우는 자신에 대한 연민이 스쳐가는 순간. '사먹는 요리'가 아니라 '해먹는 요리'는 아직도 충분히 대중화 되지 않았다.

요리는 아직도 지나치게 신비화된 영역이다. 그러나 어쩌면 요리야말로 본질적으로 삶의 신비다. 신은 우리에게 음식을 주셨고 악마는 우리에게 요리사를 보내주셨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더 무서운 신비는 누군가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음식이 아니면 우리는 하루도 살아 갈 수 없다는 신비가 아닐까. '요리하는 여자가 아름답다'는 신비화 전략은 철저히 요리를 '맛보는' 향유자의 입장이 아닐까.



정여울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