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집 <윤미네 집>故 전몽각 선생 첫딸 출생서 시집가던 날까지 26년 기록

지극한 삶은 잔향을 머금는다. 지극함이 자신보다, 타자와의 '관계'를 향해 있을 때 짙은 잔향은 이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프랑스 사상가 앙드레 고르와 아내 도린의 사랑이 그랬다.

불치병에 걸린 아내와 함께 생을 마감하기 전, 고르가 쓴 러브레터에는 수십 년간 아내와 함께 한 삶이 녹아있다. 수천 번의 '사랑한다'라는 말보다 뜨거운 고백은 부족한 자신을 받아준 아내를 향한 깊은 감사였다.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이런 말을 했지요.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 하자고." 일생을 함께 한 부부의 고백 속에는 시작하는 연인의 맹세가 담아낼 수 없는, 세월이 더해낸 진정성의 무게가 있다.

<윤미네 집>은 이처럼 드문 감동을 주는 책이다. 고 전몽각 선생(성균관대 토목공학과 교수)이 첫 딸 윤미가 태어났을 때부터 시집가던 날까지 26년의 세월을 담은 사진집이다. 늘 카메라의 앵글을 딸과 두 아들, 그리고 아내에게 맞추었던 전몽각 선생은 미국으로 시집간 딸을 위해 20년 전 이 사진들을 책으로 묶어냈다. 불과 1000권 남짓 제작된 책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고 올해 초 복간된 사진집은 3월이 오기 전에 3쇄를 찍어냈다.

찌그러진 양은냄비, 기운 내복, 소박한 밥상으로 넉넉하지 않은 세간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사진 에선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감과 따뜻한 사랑이 전해진다. 사진집을 본 독자들이 <윤미네 집>같은 사진을 찍고 싶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은 단지 가족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과 향수 때문만은 아니다. 연출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자연스러운 웃음과 돈이 모든 가치를 재단하는 시대에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들을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몽각 선생의 회고에서처럼 "그저 낳은 이후로 안고 업고, 뒹굴었고 비비대었고 그것도 부족해서 간질이고 꼬집고 깨물어가며 키운 아이들"은 말하지 않아도 얼굴에서 사랑이 묻어난다. 어느새 중년이 된 딸 윤미 씨는 그때 받은 사랑이 고단하고 힘겨운 순간에 다시 일어설 용기를 주던 에너지원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올해 복간된 <윤미네 집>에는 또 하나의 보석이 담겨 있다. 친구의 여동생이었던 아내의 청초한 처녀 시절부터 손자와 춤을 추는 백발의 할머니의 모습을 담은 '마이 와이프(My Wife)'라는 제목의 사진 모음이다. 전몽각 선생이 췌장암 선고를 받자마자 가장 먼저 남은 여생 동안 해야 할 일로 떠올렸던 작업이다.

아내의 칠순에 맞춰 펴내기로 했던 '마이 와이프'는 결국 미완으로 남았지만 앙드레 고르와 도린의 사랑처럼 보는 이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가족이란 관계 안에서 피어난 아름답고 극진한 삶을 보았기 때문일까. 사진 속에는 아주 가끔, 젊은 시절의 전몽각 선생이 보일 뿐이지만 항암치료 중에도 할머니가 된 아내의 사진을 인화하는 그의 모습이 마치 보았던 것처럼 잔상처럼 스친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