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영화제 발전방안 토론회''2009 국제 영화제 평가 결과' 중심으로 문제점과 지향점 논의

국제영화제발전방안 토론회
지난 10여 년간 국내의 국제영화제들은 한국영화계의 중요한 축이 되었다.

동시대의 세계 영화를 한 자리에서 만나고, 한국영화를 활성화하는 기회로서의 국제영화제는 영화산업과 문화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몇몇 영화제가 규모 경쟁에 매달리느라 정체성을 잃고 있다는 비판이 있었다. 영화제 간 차별성이 옅어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홍보 이벤트는 점점 화려해지는데, 정작 관객수는 줄어들고 있다.

예를 들면,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의 상영작수는 355편으로 전년보다 40편이 늘어났다. 상영작수가 늘다보니 아시아영화에 집중하던 예전의 분위기는 사라졌다.

유명한 영화인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맞춘 개막식 행사는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지만 관객은 17만3천 명으로 전년의 19만8천 명에 비해 줄어들었다.

국내 국제영화제들이 제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영화진흥위원회가 주관한 '국제영화제 발전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발표한 '2009 국제영화제 평가 결과'를 중심으로 국내 국제영화제의 문제점과 지향이 논의되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평가한 국내 국제영화제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 6개다.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영화제들이다. 작년 이들 영화제의 총 사업비 203억 원 중 정부 지원은 42억 원이었다.

발제를 맡은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정헌일 책임연구원은 평가 결과 "국제영화제의 경쟁력인 영화산업에의 기여가 미비했다"고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제외하면 필름마켓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한 예다.

정헌일 책임연구원은 예산 중 상영작 수급 비용과 홍보, 마케팅 비용의 비율이 높다는 것도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영화제 측이 외형을 확장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토론 참가자들은 국내 국제영화제의 외형 확장 경쟁이 '제 살 깎아먹기'라는 점에 동의했다. 영화제 간 초청 해외 영화가 겹쳐 프로그래밍에 차질이 생기거나 초청 비용이 높아지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열린 국제공동제작 세미나
규모가 영화제의 내실을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규모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정체성이 불분명해지기 쉽다. 이는 관객 입장에서도 반가운 일이 아니다. 정초신 감독은 "관객 한 사람이 영화제 기간 동안 볼 수 있는 영화 편수는 아무리 많아도 40편을 넘을 수 없다"며 영화제의 양적 팽창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되물었다.

국내 국제영화제의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시대적 사명'을 짚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일보 이대현 논설위원은 처음 국제영화제가 생긴 90년대 중반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90년대 중반 국제영화제는 동시대 해외 영화를 국내에 소개함으로써 문화 다양성을 확보하는 역할을 했지만 미디어 환경이 변화해 관객이 국내 미개봉작도 쉽게 볼 수 있게 된 지금 국제영화제는 영화산업에 기여하는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이대현 논설위원은 "한국영화의 시장 확대를 꾀할 수 있는 필름 마켓 확충과 영화제 자체의 브랜드화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 수석프로그래머인 건국대학교 영화과 송낙원 교수도 "해외영화산업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는 필름 마켓이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지원 역시 한국영화산업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국제영화제에 집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작년 전주국제영화제 10주년 기념전
송낙원 교수의 지적처럼 국내 국제영화제들은 취지에 따라 나눌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관광 산업 육성을 취지로 지원하는 시민 축제, 다양한 사회 구성 집단이 문화적 표현을 하는 축제, 국내 영화문화 다양성을 확대하는 축제" 등이 있다. 국제영화제의 산업적 역할에 주목하는 이들은 이 나머지 범주의 영화제들은 정부의 지원 없이 자생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문화 관련 정책과 정치적 분위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더더욱 예산을 독립적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많은 국제영화제가 자생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데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이혜경 집행위원장은 "작년 예산 12억 원 중 5억 원을 민간영역에서 후원받았는데, 이 일만 해도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영화제의 의미를 영화산업 내부의 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광운대학교 영화과 강성률 교수는 지역에서 열리는 국제영화제에 정부가 예산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를 "국가는 국민 누구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어야 한다"고 명시한 헌법 조항에서 찾았다. 문화적으로 소외되어 있는 지역의 국제영화제는 아직도 문화다양성 인프라로서의 기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역성과 연계된 국제영화제는 특유한 영화문화를 형성함으로써, 국가 브랜드 제고와 관광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강성률 교수는 "칸 영화제는 영화산업적으로 중요한 필름 마켓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할리우드에 맞서는 유럽영화의 미학적 진지"라고 말했다. 그 기능이 칸 영화제의 세계적 영향력의 원천 중 하나라는 것이다.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김종현 집행위원장도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가 당장의 영화산업 발전에 기여하지는 않지만, 이 영화제 출신 영화인들이 한국영화계의 중심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이런 장기적 효과를 볼 수 있는 안목으로 영화제의 파트너가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

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인 김영덕 PD는 "영화제는 매우 복합적인 성격을 가진 이벤트"임을 강조했다. 예를 들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영화 상영이 이루어질 뿐 아니라 학술행사와 필름 마켓이 함께 열리고 대중 참여 이벤트, 미디어 이벤트는 물론 영화학교 같은 교육 프로그램과 영화펀드 등의 제작 투자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이 다양한 면들 중 일부만으로 영화제 전체의 성과를 평가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정부가 영화제 지원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평가 툴이 더 입체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는 영화제 자체의 정체성을 찾는 노력과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과제다. 김창유 용인대 교수는 "각각의 영화제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정립해야 하는 시기인 것 같다. 예를 들면 부산국제영화제는 산업적 측면을 더 강화한다든지. 그리고 이 다양한 영화제의 역할을 평가할 정교한 지표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제안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