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창작연극'인인인 시리즈', '신주쿠양산박' 내한 세미나서 가능성 모색

인인인 기자간담회
사회와 현실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서구의 고전˙근대 레퍼토리가 아닌 오늘의 문제를 다룬 창작극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창작을 위한 내부의 노력과 제도적 지원에도 불구하고 창작극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번역극에 비해 현저하게 낮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타개할 수 있을까.

1980년대 이후 한국연극은 다른 나라 연극과의 비교를 통해 세계 속 한국연극의 위상과 해법을 활발히 모색해 왔다. 최근 잇따라 개최된 세미나와 기획 공연 역시 한중일 간의 공동작업을 통해 그 해법을 찾으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되고 있다.

닮은 듯 다른 동아시아 연극의 특색을 나누며 얻은 성과는 무엇일까. 국가 간 공동작업을 통해 한국연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현장을 들여다본다.

'현대인의 고민'으로 뭉친 한중일

지난 18일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는 '인인인 시리즈'라는 이색적인 이름의 연극을 발표하는 자리가 있었다. 연극 '인인인 시리즈'는 한중일 세 나라의 대표 작품을 통해 한국, 중국, 일본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비슷한 고민과 문제점을 풀어내기 위해 기획된 작품.

이번 '인인인 시리즈'를 기획한 김요안 두산아트센터 프로듀서 "한국과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는 중국과 일본이 고민하는 이 시대의 모습도 같이 담아내면 좋을 것 같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날을 사는 한국인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과의 역사적, 사회적 연관성을 맺고 있다"고 운을 떼며 "세계화나 자본주의가 유발하는 혼란은 한국뿐만 아니라 동북아 3개국이 공통적으로 갖게 되는 문제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번에 무대에 오르는 중국과 일본 작품은 한국 연출과 배우들에 의해 한국적으로 재현된다. 중국 작가 랴오 이메이의 원작 <코뿔소의 사랑>의 연출을 맡은 박정희 연출가는 "중국 현대연극의 시발점이자 한 획을 긋는 이 작품은 서양의 자본주의 문화와 전통적인 가치관의 충돌이 빚어낸 혼재를 진흙탕으로 표현하고, 그 위에 피어난 꽃을 '코뿔소의 사랑'으로 승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작가 히라타 오리자의 원작 <잠 못드는 밤은 없다>는 일본인들이 모여 사는 말레이시아의 리조트가 배경이다. 연출을 맡은 박근형 연출가는 "말레이시아에서 살아가는 일본인들의 이야기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노령화 사회나 히키코모리 등 우리가 서서히 겪게 될 사회문제들을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인인 시리즈 <코뿔소의 사랑>
한편 한국 작품 <인어도시>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대두되는 사회문제 중 '죽음'에 방점이 찍혔다. 극본과 연출을 맡은 고선웅 연출가는 "인어공주라는 것은 반인반수의 은유적인 표현"이라고 설명하며 "허무맹랑하고 동의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통해 한국인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요안 프로듀서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데 있어, 그리고 정체성과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 올해가 중요한 분기점이자 출발점으로 생각했다"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중국인과 일본인, 그리고 한국인이 가진 현실적 고민들을 통해 현재를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서구', '현대'와 맞선 공통점으로 마주하다

"우리의 연극계가 잃어가고 있는 것을 이 극단은 고스란히 갖추고 있다는 부러움과 놀라움. 그것은 그칠 줄 모르는 활력과 무한한 상상력, 그리고 반짝이는 개성이다."

"어떤 의미로는 연극을 위한 연극주의가 고도로 발달하고 있는 정황 속에서 그들은 새삼 인간 영혼의 소리를 무대로 되찾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극단 신주쿠양산박의 <소녀도시로부터의 메아리>
앞의 말은 극작가 차범석, 뒤는 일본의 연극평론가 하타케야마 시게루의 평이다. 한일 양국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입을 모아 호평을 하는 이 극단은 얼마 전 내한했던 신주쿠양산박(新宿梁山泊)이다.

극단 신주쿠양산박은 1987년 일본 앙그라 연극의 기수였던 가라 주로(唐十郞)의 영향을 받아 재일한국인 2세인 김수진을 대표로 일본 동경에서 결성된 단체로, 현재 일본 현대연극에서 가장 창조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앙그라(언더그라운드) 연극은 196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일본사회의 굴절된 문제를 연극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여 출발한 소극장 연극 운동. 이 신주쿠양산박이 얼마 전 3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아 그 발자취를 돌아보고 한국연극의 과거와 현재도 함께 재조명하는 세미나가 마련됐다.

이날 세미나는 '서구'와 '현대'를 키워드로 두 갈래로 갈린 양국의 현대연극의 역사가 어떤 면에선 닮은 꼴임을 보여주었다. 60년대 후반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연극의 혁명은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현대연극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를 전환점으로 일본의 근현대 연극사는 두 갈래로 나눠지기에 이르렀다. 서구의 근대극을 모델로 한 '신극'과 연극운동을 일으킨 앙그라˙소극장 연극이 그것이다.

당시 젊은 극작가와 연출가들을 중심으로 대두된 일본의 소극장 운동은 '신극'을 비판하는 한편, 대담하고 실험적이며 독창적인 일본 현대극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이후 앙그라 연극은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신극과 양립하는 현대연극의 한 분야로 독자적인 맥을 형성했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는 서구적 문화주의에 대한 저항의 움직임이 마당극의 형태로 나타났다. 1980년대라는 격동의 시기 속에서 연극계는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감을 마당극을 중심으로 한 저항적인 연극운동을 통해 표현했다. 이들 마당극 세대들은 구극(舊劇), 즉 원초적인 연회 전승 형태로 회귀한 가운데 '현대'와 맞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마당극의 성장이 민주화 이후 멈춰진 반면 창작극에의 관심과 지원은 높아져 왔다.

하지만 이런 창작극에 대한 관심도 번역극에 비해서는 현저하게 낮은 것이 현실이다. 이날 돌아본, 현재 일본 현대연극에서 신주쿠양산박이 점하는 위치는 그대로 한국 연극계 내부의 분발을 촉구하는 표본이 됐다. 마당극 이후 새로운 창작극의 경향은 어떻게 이어질 것인가. 차후 시도될지도 모르는 한일연극의 공동작업은 이 문제를 푸는 또 하나의 방법임을 시사하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