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 필름의 창시자 마야 데렌과 오마주>전춤과 영화의 영역 넘나든 경계의 예술 명작들 한자리에

'카메라를 위한 안무연구'
'아날로그의 귀환', '몸의 환기'를 외치는 시대는, 바꾸어 말하면 현재가 공고한 영상의 시대라는 것을 반증한다.

지금 영화보다 먼저 태어났던 모든 예술은 영상을 끌어들여 진화의 발판으로 삼으려 한다. 이런 시대, 영화가 예술인가 아닌가의 여부를 두고 논쟁하는 것은 부질없어 보인다.

하지만 자기만의 정체성을 그대로 가지고 거꾸로 영화라는 장르에 침입한 제3의 예술도 있다.

'댄스필름'이 그것이다. 댄스필름이란 단순히 춤을 찍은 영상이 아니라, 춤의 '무대'와 '공연'이라는 제한된 시공간을 극복해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게 한 '경계의 예술'이다.

생소하게 들리지만 댄스필름은 이미 해외에서는 잘 알려져 있다. 매년 미국(Dance Camera West Film Festival)과 네덜란드(Cinedans Amsterdam) 등 세계 각지에서는 70여 개의 댄스필름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김정완의 '나의 카메라와 춤을'
1980년대부터 현대춤을 영상으로 담아 BBC에서 상영하기도 했던 로이드 뉴슨과 DV8의 작품들은 무용계에서 더 유명하다. 반면 국내에서는 소수의 진보적인 무용가 혹은 독립영화인에 의해 이뤄진 작업 몇 편이 있는 정도다.

그래서 이 낯선 장르를 제대로 알 수 있는 기회가 이번에 마련된다.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이 주최하는 <댄스필름의 창시자 과 오마주 전>이 3월 23일부터 4월 24일까지 서울 서교동 미디어극장 아이공에서 열리는 것.

이번 행사의 두 키워드는 댄스필름과 (1917~1961)이다. 이미 댄스필름을 접해본 이들에게 두 이름은 동어반복처럼 들린다. 선구적 독립영화인이자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선두주자로도 잘 알려져 있는 은 춤과 영화의 영역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기량을 선보인 댄스필름의 창시자다.

이번 행사는 의 전 작품과 함께 그 사후 50년이 되는 올해까지 댄스필름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세계 댄스필름의 명작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댄스필름의 다양한 매력을 알기 위해서는 오마주 섹션을 선택하는 쪽이 빠르다. 총 18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섹션은 세계의 댄스필름 페스티벌에 출품되고 수상했던 작품들로, 다양한 춤과 지역적 배경으로 다채로운 영상미와 재미를 보여준다.

마야 데렌
'오마주 섹션2: 카메라를 위한 춤'에서는 유럽의 댄스필름 페스티벌 수상작들을, '오마주 섹션3: 색, 다른 춤'에서는 국내에서 흔치 않은 댄스필름 작가인 이윤정을 비롯한 한국과 홍콩의 댄스 필름 대표작가의 작품을 모았다. '오마주 섹션4: 즉흥, 그리고 카메라'에서는 무용계의 새로운 화두인 즉흥춤과 관련한 또 다른 접근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첫 댄스필름 행사인 만큼 이번 기획전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역시 의 삶이 녹아 있는 그의 작품들이다. 그의 초기작에서 포착되는 댄스필름의 징후가 이후 장르적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은, 그대로 댄스필름의 역사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젊은 시절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데렌은 안무가 캐서린 던햄의 비서가 되어 연습실에서 함께 했던 경험으로 훗날 댄스필름을 만들게 된다. 그 단초가 된 것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16mm 카메라로 두 번째 남편 알렉산더 해미드와 함께 찍은 < Meshes of the Afternoon>(1943). 미국 실험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이룩했다는 평을 얻은 고전으로, 내러티브 없이 유사한 장면들이 반복, 순환되면서 마치 꿈을 재현한 듯한 느낌을 주는 초현실주의 작품이다.

<뭍에서 At Land>(1944) 역시 <>와 같이 몽환적인 느낌을 주는 작품이다. 그러나 주인공의 동선에 따라 공간이 비논리적으로 뒤바뀌고, 모든 초점은 주인공의 행동과 표정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에서 카메라에 대한 데렌의 태도 변화를 엿볼 수 있다.

그가 더 이상 영화의 영역에만 머무르기를 거부한 것은 다음 작품인 <카메라를 위한 안무 연구 A Study in Choreography for Camera>(1945)였다. '최초의 댄스필름'으로 불리는 이 작품은 이 춤을 무대에서 해방시키고 영화적인 방법으로 제공하고자 하는 실험이었다. 무용수의 움직임에 따라 공간이 밀실과 광장, 숲으로 계속해서 변하는 것이 눈에 띈다. 무용수의 춤과 카메라를 통한 공간의 이동이 긴밀하게 상호작용한다는 점에서 댄스필름의 교과서라고 불릴 만하다.

'뭍에서'
카메라 앞에서 그가 추는 춤은 반 세기 전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실험적인 춤(혹은 영화) 작품 못지 않게 전위적이다. 무대춤의 형식이나 고상함 대신 인간 육체 본연의 원초적 특징은 카메라와 편집과 만나 새로운 매력으로 관람자에게 말을 건다.

댄스필름의 주체는 누구일까, 편집의 방향에 따라 감독도 안무를 만들 수 있는가, 댄스필름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춤추는 사람이 등장해야 할까 등의 흥미로운 주제도 고민해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기획전은 새로운 영상 언어를 찾는 영화인과 새로운 무대 언어를 찾는 무용인 모두에게 좋은 자극이 될 수 있다.

"아이공 극장 개관 4주년을 맞아 상상력을 자극하는 새로운 영화언어를 소개하고 싶었다"고 이번 기획전의 의도를 밝힌 김연호 디렉터는 "대사 언어가 없는 댄스필름은 청각장애인도 즐길 수 있는 화합적인 장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미디어극장 아이공은 장애여성을 위한 즉흥춤 워크샵도 열어 다양한 관객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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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