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초연 <유디트의 승리>, 화제작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등 관심

비발디의 <유디트의 승리>
극심한 침체기에 시달렸던 지난해를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올해는 대형 클래식 공연들이 즐비하다.

무엇보다 오페라 공연이 두드러진다. 더구나 올해의 오페라 공연은 진부함도 벗어 던졌다.

푸치니와 베르디가 장악하다시피 했던 한국의 오페라 무대는 바로크부터 현대까지 폭넓게 흡수했다. 세계 화제작과 국내 초연 작에 이르는 십여 편의 오페라 성찬이 차려지는 중이다.

상반기에는 무엇보다 바로크 오페라가 이목을 끈다. 한국 소극장 오페라 축제가 지난 3월 바로크를 테마로 무대를 채웠다. 3월 통영국제음악제의 개막 공연으로 글룩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를 올렸던 국립오페라단은 오는 5월, 서울에서 다시금 같은 작품의 막을 올린다. 그리고 4월 초에는 비발디의 <유디트의 승리>가 공연된다.

국내에 바로크 오페라가 처음 소개된 해는 2007년으로, '울게 하소서'라는 아리아로 유명한 헨델의 <리날도>가 그 서막을 열었다. 1600년부터 1750년 사이의 작품들이 '바로크 오페라'로 분류되는데, 헨델은 바로크 오페라의 전성기를 이끈 작곡가 중 한 명이다.

국립오페라단이 공연한 글룩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당시만 해도 귀족들만을 위한 예술이었던 오페라는 주로 신화나 영웅담에서 소재를 빌려왔다. 노래처럼 음을 넣은 대사인 레치타티보와 아리아로 이루어지며, 거세된 성악가인 카스트라토를 주인공으로 한 기교적인 작품이 많은 것이 바로크 오페라의 특징이다.

1990년대 국내에 이미 고음악 연주 바람이 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크 오페라가 공연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발성의 기교와 고전미가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것은 물론 섬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오페라 공연을 위한 공연장이 대부분 대극장인 탓에, 귀족들의 살롱 오페라 형식을 가졌던 바로크 오페라가 공연되기에 마땅한 장소가 없었던 것도 여러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무엇보다 공연이 어려웠던 이유는 바로크 오페라를 완벽히 소화할 성악가를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성가대나 오페라 무대에서 노래할 수 없던 그 시절, 카스트라토의 목소리에 맞춰진 기교적인 아리아는 현대의 성악가들에겐 난제처럼 여겨진다. 그럼에도 3년 전 국내에 처음 소개되고 호응을 얻은 바로크 오페라는 점차 관객들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한국 소극장 오페라 축제에서는 올해 탄생 300주년을 맞은 페르골레시의 세 작품과 퍼셀의 <여왕의 사랑(Dido and Aensas)> 등 좀처럼 공연되지 않는 바로크 오페라를 소극장 무대에서 선보였다.

그런가 하면, 귀족의 신분과 품위를 과시하는 바로크 오페라의 전형을 깨뜨린 글룩의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서울오페라앙상블('한국소극장오페라축제'에서 공연)과 국립오페라단이 각 무대의 특성에 맞게 공연했다. 지나치게 기교적인 아리아에서 탈피해 가곡과 같은 편안한 노래가 담긴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는 바로크 오페라를 개혁한 음악사적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코리아 체임버오페라단의 <음악선생>
올해 공연되는 바로크 오페라 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작품은 세계 초연되는 <유디트의 승리>(4월 5일~7일, 충무아트홀)다. 이스라엘을 침략한 아시리아 군대와의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유디트. 복수를 위해 그녀가 적진에 잠입하고 적장을 유혹해 목을 베었다는 이야기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이 되었다. 구약성서 '유딧기'에 등장하는 이 강력한 헤로인은 특히 클림트의 에로틱한 그림으로 잘 알려졌다.

'사계'로 친숙한 비발디는 이를 소재로 한 <유디트의 승리>를 1716년 베네치아 오스달레 델라 피에타 성당에서 오라토리오로 초연했다. 당시 성서를 소재로 한 오페라는 오라토리오로 분류되었는데, 오페라보다 합창의 비중이 크고, 이후의 오라토리오가 연주회 형식인 것과는 달리 무대 공연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졌다.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루이지 피치는 철저한 고증을 거쳐 바로크 오페라로 이 작품을 재현한다.

'바로크 군주'라고 불릴 정도로 바로크 오페라에 정통한 피치는 최대한 작품에 충실하면서도 매혹적으로 작품을 완성했다. 화려한 의상과 무대도 이탈리아 현지에서 공수했다. 이번 공연에는 몇 가지 눈여겨볼 점이 있다.

바로크 시대, 모든 배역을 여성의 음높이를 가진 카스트라토들이 맡았던 관행에 따라, 이번 공연에서는 모든 배역을 여성 성악가가 노래한다는 점이다. 무대 위, '다섯 명의 여성 성악가가 라틴어로 부르는 기교 넘치는 노래가 압권일 것'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한결 같은 말이다.

덕분에 테너와 메조소프라노의 중간 음역인 '콘트랄토'를 국내 최초로 들을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적장인 홀로페르네스 역과 유디트 모두 '콘트랄토'의 음역으로 노래하는데, 홀로페르네스 역의 메리 엘린 네시와 유디트 역의 티찌아나 까라로는 세계 최정상급 성악가로 유명하다.

공연 중 백미는 유디트가 거사를 치른 후, 바고아가 주인인 홀로페르네스의 시체를 발견하는 순간이다. 음악과 드라마가 충돌하면서 대사와 음악, 그리고 드라마가 완전히 하나로 융합되는 장면이다. 바로크 오페라는 합창이 없는 것이 특징이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웅장한 합창이 더해져 오라토리오의 맛을 살릴 예정이다.

조반니 바티스타 리곤의 지휘로 바로크 전문 실내악단인 카메라타 안티쿠아 서울이 오페라 반주를 맡는다. 한국에서 세계 초연하는 <유디트의 승리>는 오는 7월 이탈리아 마체라타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