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 커버 아티스트 로저 딘 회고전영화 <아바타>와 표절시비 소송 중… 생소한 디자인 세계 조명

'Morning Dragon'. 1984
"<아바타>를 본 많은 팬들이 영화가 제 작품과 엄청난 유사성을 보인다고 먼저 표절의혹을 제기했고, 그래서 현재 소송 중에 있습니다."

'예스', '유라이어 힙'과 같은 전설적인 밴드들의 앨범 표지를 장식했던 '커버 아티스트'의 거장 로저 딘이 대림미술관에서 열리는 자신의 작품전 개막식 참석차 3월 말 내한했다.

개막식 날 가진 회견에서 "<아바타>가 본인의 작품을 베꼈다고 보느냐?"는 질문을 받은 그는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더 이상 본인이 뭐라고 언급하는 것은 곤란하다"며 말을 아꼈다.

대신 "영화 속 나비족이 사는 행성 판도라 영상이 정말 제 작품을 본떠 만들어낸 것인지, 그랬다면 유사점은 몇 가지나 되는지 등은 이번 전시회를 보고 관객이 직접 판단할 몫"이라고 했다.

'커버 아트(cover art)'라는 생소한 디자인 세계를 조망하는 대규모 전시회인데다가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블록버스터 영화와 표절시비로 소송 중이라는 점이 호기심을 더 자극한다. 음반 커버를 장식하는 디자인이 얼마나 대단하길래?

판타지적 회화로 프로그레시브 록의 세계 표현… 작품 한 건당 30억 호가

소리와 이미지, 음악과 미술이 만나는 접점이 바로 커버 아트다. 다른 말로 음악을 시각적 세계로 표현하는 작업이다. 핑크 플로이드를 비롯해 그가 함께 작업한 유수의 음악가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건(Gun), 예스(Yes), 유라이어 힙(Uriah Heep), 오시비사(Osibisa), 아시아(Asia) 같은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들도 그 가운데 하나다.

문학도 및 고차원적 사고를 가진 젊은이들이 결성한 이들 밴드는 1970년대와 80년대, 록이라는 음악 장르를 통해 자신들의 철학을 보여주고자 했다. 프로그레시브 록은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태어나는 색다른 록의 장르로, 특유의 몽환적 분위기는 당시 미국과 유럽을 휩쓸던 히피 문화와 맞물려 대중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들 밴드의 앨범 커버를 맡았던 로저 딘은 초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분위기로 프로그레시브 록의 음악세계를 시각적으로 재탄생시켰다. 하늘을 떠 다니는 섬과 부유하는 정글, 날개 달린 코끼리, 하늘을 가로질러 비상하는 용, 곤충의 날개를 달고 있는 인간 등 그의 작품은 70~80년대 프로그레시브 록의 영혼과 분위기를 공감각적으로 전한다. 그런 그의 작품은 음악사에 길이 남을 빛나는 기록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활동은 앨범 표지 디자인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다양한 로고와 레이블 작업, 무대 디자인 등 분야에서 활동하며 폭넓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는 아티스트다.

'VertigoLabe', 1974
음반 표지와 로고, 레이블 작업 등 그의 작품이 갖는 파급력은 대단하다. 그의 오리지널 일러스트레이션 작품은 한 점에 250만 달러(30억 원)를 호가할 만큼 현재 미술시장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또, 이번만큼 대규모 작품전이 열리는 것은 처음이지만 그의 전시회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개최되고 있다.

"요즘 예술 하는 친구들 기술력은 앞서도 창의력은 나를 못 따라와"

회견에서 로저 딘은 "모든 것을 컴퓨터로 작업하는 요즘 젊은이들과 달리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손으로 한다"며 "젊은이들이 기술적인 면에서는 나보다 뛰어나지만 창의력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과 바위, 동물 등 주변에 실제로 있는 모티프들을 전혀 상상하지 못한 판타지 세계로 보여주는 로저 딘의 창의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는 영국군 엔지니어였던 아버지를 따라 홍콩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이 시절 홍콩에서 용의 그림들을 많이 접했던 그는 종교적인 이유로 용을 꺼려하는 서양인들과 달리 작업의 주요 소재로 상상의 동물을 자주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여백 등 동양화법을 이용해 초현실적인 느낌을 구현해낸다.
자신만의 신비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그는 런던에서 기차로 1시간 가량 떨어진 작은 시골마을 농장에서 생활하며 작업을 하고 있다. 특히 고양이가 혼자서 외출을 갔다 돌아오는 오전 5시부터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한다고. 다양한 영역의 예술을 소화하는 크로스오버 아티스트이기도 한 그는 음악과 미술 등 여러 분야의 예술을 두루 즐기며, 조예도 깊다.

'Yes Logo', 2006
이번 전시회에서는 70~80년대를 이끈 대표적인 록 밴드들의 앨범 커버뿐 아니라, 음악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예스의 로고, 버진레코드 사의 레이블, 테트리스 게임 로고, 무대 디자인 등 로저 딘의 다양한 작업들이 소개된다.

전시는 대림미술관에서 6월6일까지 계속된다.


'아시아애스크라로봇', 1985

전세화 기자 cand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