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텔레콤의 서울광장 사용허가에 공식후원사 현대자동차 반발FIFA, 기업들 이해관계 얽혀… 상업화 우려, 공익강조 목소리도

꽃샘추위가 무색하게 서울광장은 벌써 월드컵 열기로 뜨겁다. 6월 남아공올림픽을 앞두고 기업들 간 각축이 벌어지고 있는 것.

지난해 말 서울시가 SK텔레콤과 '디자인 서울' 홍보 협약을 맺으며 '월드컵 마케팅도 포괄적으로 협조한다'는 부속 조항으로 사실상 SK텔레콤의 월드컵 기간 서울광장 사용을 허가했다는 것에 월드컵 공식 후원사인 현대자동차가 반발하고 나섰다.

공식 후원사가 거리 응원전을 진행하도록 강력하게 권고하는 FIFA의 규정을 근거 삼아서다. 이 상황은 월드컵 거리 응원전의 처지를 상징한다. 올 여름 주요 공공장소는 축구 경기가 중계되는 관람석일 뿐 아니라 FIFA 규정과 기업들의 이해가 겨루는 경기장이다.

이에 대해 상업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고, 공익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다. 판단은 월드컵 거리 응원전을 수익 통로로 보느냐, 공공 문화로 보느냐에 따라, FIFA와 소비자와 시민 중 누구를 주인공으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FIFA는 올해부터 월드컵 공식 후원사에 거리 응원전 주도권을 부여했다. 현대자동차는 이에 따라 지난 4일까지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거리 응원전을 함께 진행할 파트너를 모집했다. 현대자동차가 장외 중계권을 제공하는 대신 응원전이 열리는 곳에서 기업 홍보를 하는 조건이다.

현대자동차 해외마케팅팀 이호섭 차장은 "전세계적으로 거리 응원전이 확산되면서 기업 간 마케팅이 중첩되어 생기는 혼란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거리 응원전은 월드컵 '콘텐츠'의 일종인 만큼 마케팅 기회 역시 공식 후원사의 몫이라는 논리다. 국내마케팅팀 박은선 씨는 거리 응원전 파트너 모집에 대해 "장외 중계권 무상 제공이라는 공익적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광역시 지자체에 확인해본 결과 호응도는 높지 않았다. 파트너 모집에 지원했다고 밝힌 곳은 부산시 뿐이었다. 나머지 지자체에서는 "거리 응원전 진행 방식에 대해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는 지자체가 일종의 공공서비스로 거리 응원전을 행정 지원했던 관례상 특정 기업과 연관되는 것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천시 체육진흥과 김양태 씨는 "시민 행사를 사기업과 함께 해야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대표팀의 경기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거리 응원전을 기획해야 한다는 점도 문제다. 현대자동차는 파트너를 희망하는 기관에 진행계획을 제출하도록 했다. 대구시 체육진흥과의 김종명 주임은 "한국 대표팀의 승패 여부에 따라 거리 응원전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가 달라질 텐데, 지금 그 계획을 확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거리 응원전을 시민 행사로 접근할 때, 지자체가 공식 후원사의 파트너가 되는 것에는 딜레마가 있다. 지자체가 누구의 소유도 아닌 동시에 모두의 소유인 공공장소의 독점적 사용을 영리단체에 허가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가 제공하는 장외 중계권은 무상이 아니라, 이에 대한 대가가 된다. 시민들의 구체적인 요구와 합의가 필요한 사항인 것이다. 하지만 응원전 진행이 사전에 계획될 경우 합의 과정을 거치기는 어렵다.

서울광장 이슈도 이런 딜레마를 얼마나 고려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읽힌다. 이곳에서 월드컵 경기를 응원하는 것이 공공의 요구임을 전제하면, FIFA 규정에 따라 시장 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이 해결책처럼 보인다. 즉 공식 후원사가 아닌 SK텔레콤의 마케팅 여부가 문제가 된다.

SK텔레콤은 브랜드를 노출하지 않기 때문에 "마케팅이라고 보기 어려운 응원전 지원"(홍보2팀 윤지환 매니저)이라고 주장하지만 외부에서는 이 역시 규제 대상이라는 의견이 대다수다. 붉은악마 정기형 대외협력팀장은 "이미 SK텔레콤이 월드컵 관련 광고를 시작했고, 월드컵 기간 동안 서울광장 주변 건물의 외벽 광고권도 확보한 것으로 알고 있다. 공식 후원사가 아니면서도 월드컵 효과를 누리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이런 마케팅 방식은 '엠부시(ambush 매복) 마케팅'이라고 불린다. SK텔레콤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부터 광고와 응원 물품 제공 등을 통해 자사와 월드컵의 관련성을 '암시'해왔다. FIFA와 월드컵 공식 후원사의 입장에서 이는 "권한 침해"(현대자동차 해외마케팅팀 이호섭 차장)다.

하지만 서울광장의 공공적이고 상징적인 성격에 주목하면 문제는 거리 응원전의 상업화다. 서울시가 사용료를 받고 서울광장의 이윤 추구 활동을 합법화해주고, 나아가 공공장소의 공공 이벤트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를 상업화한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당사자인 두 기업이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시민 요구에 따라 그 결과를 허가할 것"이라는 서울시 관계자의 대응은 무책임하다. 서울시야말로 당사자인 것이다. 충남대 남상우 스포츠사회학 연구실장은 "가장 큰 문제는 사회 공유재산인 시청광장과 시민을 서울시가 '판'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초국적 기구인 FIFA의 운영 방향이 여과 없이 지역 문화에 반영되는 현상이기도 하다. 거리 응원전은 축구 경기라는 '상품'을 선택한 '소비자' 개개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 공공의 일상 문화의 일부가 된다는 점에서 사공이 여러 명인 배다. 하지만 현재는 FIFA의 일방적인 규정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대화를 나눌 창구가 없다.

남상우 연구실장은 "월드컵 거리 응원전을 시민이 주도하는 관람 문화로 만들기 위해서는 스스로 나서는 수밖에 없다. 이를 누가 지원하든 상관 없이 마케팅에 노출되지 않고 경기를 즐길 수 있도록 '노 배너 No Banner' 운동을 펼치면 어떨까"라고 제안했다. 적어도, FIFA와 기업들의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월드컵 거리 응원전은 더이상 공짜가 아니라 시민 자신을 담보로 한 대가임을 자각하자는 것이다.

"서울광장은 거래 대상이 될 수 없다"
정희준 문화연대 체육문화위원회 위원장∙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 인터뷰

지난달 25일 문화연대 체육문화위원회는 서울시와 SK텔레콤 간 서울광장 사용협약 체결에 대해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서울시가 시민들의 공공장소인 서울광장을 자의적으로 거래했다는 것이 비판의 초점이며, 2002년 시민들의 자발적 축제였던 월드컵 응원전이 2006년과 올해에는 "자본이 시민들을 동원하는 그들만의 축제"로 변질되었다고 지적한다. "서울광장에 대한 SK텔레콤의 독점적 사용권을 철회하고, 공적 공간으로서의 광장 본연의 의미가 실현되도록 하자"고 주장하는 문화연대 체육문화위원회 정희준 위원장을 인터뷰했다.

성명서 중 "서울시가 SK텔레콤에게 200억 원의 사용료를 받고, 서울광장사용권한을 줬다"는 내용이 있다. 200억 원의 사용료라니?

정희준 교수
-SK텔레콤 측에 월드컵 마케팅을 허가한 '매력 넘치는 도시 서울 만들기' 공동 추진 사업비용이다. 서울광장 사용료가 얼마라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 포함되어 있다.

SK텔레콤 측은 브랜드를 노출하지 않기 때문에 마케팅보다는 지원에 가깝다고 주장하던데.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요즘 어떤 기업이 마케팅을 노골적으로 하나. 브랜드를 직접 노출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그 기업의 존재를 알 수 있다면 명백한 이윤 추구 행위다.

서울광장 문제에 대해 서울시는 좀 방관하는 태도를 보이더라. 기업들 간 각축과 조정은 그들 문제고, 서울시는 시민을 위해 허가해줄 뿐이라던데.

-내가 보기에 가장 책임이 큰 쪽은 서울시다. 기업들은 원래 영리단체니 이해를 놓고 다투는 게 당연하지만, 서울시는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공적 공간을 판 것 아닌가. 이 상황을 해결하는 데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어떻게 해결되어야 한다고 보나.

-서울문화재단 같은 기관이나 문화 관련 비영리단체 쪽에 진행의 주도권을 넘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시의 행정지원은 스크리닝 설치, 중계권료 부담 정도로 이루어지면 될 것 같다.

결국 기업이 주도하게 된다면?

-2006년 독일월드컵 때 서울광장 응원전이 재현될 것이다. SK텔레콤과 몇몇 언론사가 컨소시엄을 구성해 진행했다. 노출이 심하고 예쁜 젊은 여성들을 앞자리에 배치하고 기업 직원들이 시민들을 통제했다. 붉은악마도 이에 반대해 다른 곳에서 거리 응원전을 펼쳤지 않나.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