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 '거장의 운명' 전1940~50년대 활동전, 미공개 종합 드로잉 거장의 미학 전해

'자화상', 1943
이 거장 예술가에게 2010년은 매우 특별한 해다.
그의 예술을 보존하고 연구하며 기리는 미술관과 아틀리에가 들어서고, 세계 석학들과 조각가들이 참여하는 국제 학술대회와 조각심포지엄이 열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올해는 그가 영구 귀국한지 30년, 타계 15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 작가를 기념하는 미술관이 4개나 세워지고 매년 그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국제 학술대회가 열리는 것은 국내 초유의 일로 그 주인공은 화가로 출발해 조각가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문신(1923~1995)이다.

그런 문신의 장도를 알리는 올해 첫 발걸음이 오는 9일 시작된다. 숙명여대 문신미술관에서 5월 말까지 열리는 '거장의 운명'전이다. 전시에는 문신 예술의 초기 기반구축과정을 보여는 1940~50년대 작품과 글, 그리고 그의 예술세계의 축을 이루는 '시메트리'를 살펴볼 수 있는 미공개 드로잉이 선보인다.

회화전은 당시 유럽으로부터 유입된 초현실주의, 인상파, 야수파의 미술사조를 반영한 작품들로 문신의 전시자료, 사진 등과 함께 해방정국을 전후한 한국화단의 단면을 보여준다.

12세 때 고향인 마산의 최초 화방인 '태서명화'에 취직해 그림을 그리고 판매하면서 미술에 눈을 뜬 문신은 1939년 도쿄 일본미술학교에 입학해 세계 미술을 섭렵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번 전시의 <자화상>(1943)은 당시의 대표작으로 일본 미술문화협회를 이끌면서 새로운 미술운동을 전개하던 후쿠자와 이치로(福澤一郞)는 자화상을 보고 문신의 재능을 아껴 징용을 면하게 해주기도 했다.

1953년 전시 카탈로그 표지
문신은 광복으로 귀국한 뒤 왕성한 활동을 전개, 마산을 시작으로 서울, 부산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어 당시 한국의 아카데믹한 화풍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1948년 서울 동화백화점화랑(현 신세계백화점)의 개인전을 본 조선의 최고 평론가였던 근원 김용준은 "조선의 대 작가 탄생을 예감한다"고 했고, 전시 서문을 쓴 당대의 화가이며 평론가인 길진섭은 "낡은 사상과 양식의 허의와 화려함을 벗어버렸다"고 평했다.

1950년대 문신의 작품은 변화를 보여주는데 입체주의적 화면구성에다 추상적 표현이 강화된다. 전시의 <생선>(1950), <금붕어가 있는 정물>(1959)이 그러한 작품들로 문신이 유영국, 한묵, 박고석, 황염수, 천경자 등과 '모던 아트'를 주도하던 때였다.

문신은 1961년 프랑스로 건너가 본격적인 추상화의 세계를 전개하다 자신의 예술혼을 담을 새로운 재료와 형식으로 조각을 찾아냈다. 그리고 1967년 2차 파리행 이후에는 3차원의 추상 조각으로 세계적 작가 반열에 올랐다.

이번 '거장의 운명'전에서는 문신의 1960~80년대 드로잉을 다수 만날 수 있다. 흔히 드로잉은 회화나 조각의 보조 수단 정도로 치부되나 문신 예술에서 드로잉은 그 자체 완성된 회화 작품으로 존재한다. 또한 문신의 드로잉은 그의 조각을 읽어낼 수 있는 코드이기도 하다. 김영호 중앙대 교수는 "문신의 드로잉은 자신의 조각에 미학적 활력을 불어넣는 새로운 에너지원이자 그 자체가 특수한 형식과 미감을 지닌 독립된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고 평한다.

'시메트리의 마법'으로 이름 붙여진 드로잉 특별전에서는 문신의 상상력이 원과 곡선으로 끝없는 예술세계와 맞닿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1941년의 문신
이번 '거장의 운명'전에는 시인들이 참여하는 '문신예술을 노래하는 시인의 향기' 행사가 함께 열려 최근 한국시인협회장에 취임한 이건청 시인의 '흑단을 보며'를 비롯해 조영순, 장석용 시인의 창작시가 발표된다.

한편, 오는 7월 마산에 문신 원형미술관이 개원하고 연말쯤 경기도 양주시에 문신 아틀리에가 들어서면 기존의 마산 시립문신미술관, 숙명여대 문신미술관 등 4개의 문신미술관이 전국에 세워지게 된다. 아울러 문신 원형미술관 개원에 즈음해 세계 조각가들이 참여하는 국제조각심포지엄이, 문신 아틀리에 건립 때는 세계 미술계 석학들의 심포지엄이 개최될 예정이다.

'디자인아카데미 Moonshin' 개설
문신 예술이 디자인과 만나 또 다른 세계를 연다. 문신 예술을 모태로 지역 문화와 경제 활성화를 위한 디자인 프로젝트다. 문신의 부인 최성숙 숙명여대 문신미술관장은 그 같은 취지의 '디자인아카데미 Moonshin' 설립 계획을 9일 밝힌다.

최성숙 관장은 " '디자인아카데미 Moonshin'은 문신 예술의 뿌리이자 미래인 마산의 문화와 지역경제 발전을 위해 구상하게 됐다"면서 "문신 예술을 기반으로 사회·문화 자본을 육성해 마산의 성장동력을 창출하는 계획"이라고 말했다.

시행 방안으로 △예술가들의 예술활동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시스템과 프로그램 구축, △마산의 예술자원(예술가, 교육기관, 유적 및 관광자원 등)을 새로운 예술 문화자본으로 재창출해 마산을 예술 허브 및 디자인 산업의 거점 도시로 육성, △문신예술의 명성에 근거한 디자인 박람회 및 컨퍼런스 유치 등이 거론된다.

'생선', 1950
'디자인아카데미 Moonshin'은 내년 초 개설 예정으로 마산 시립문신미술관 및 문신 원형미술관 일원이 유력하다.


'고기잡이', 목조부조, 1946
'야전병원(한국유일의 전쟁판화)', 목판화, 1951
드로잉, 종이, 싸인펜, 1968

박종진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