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가장 방대한 자료집, 근·현대미술인 4900여 명 기초정보 수록

'대한민국 미술인 인명록 I' 펴낸 김달진씨
무릇 역사는 기록으로 생명력을 얻는다. 예술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기록에 의해 인물과 작품이 되살려지고 영생을 얻기도 한다.

그런 기록문화가 우리는 엷다. 특히 예술 분야는 예나 지금이나 빈약하기 짝이 없다. 미술만 하더라도 작가 자신이 관리에 소홀하고 이를 기록하는 이조차 드물다. 그러니 미술의 뿌리가 취약하고 근·현대미술은 더욱 두드러진다.

이런 우리나라 미술의 틈새를 메우고 생명을 불어넣는 지난한 작업 끝에 최근 하나의 결실이 나왔다. 국내 미술자료의 보고인 김달진미술연구소(소장 김달진)가 발간한 <대한민국 미술인 인명록Ⅰ>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으로 만든 인명록에는 한국 근·현대미술의 형성과 발전에 행보를 같이해 온 4,900여 명의 미술인에 대한 기초정보가 촘촘히 담겨 있다. 서양화·한국화·조소(설치미술과 행위예술 포함) 작가뿐 아니라 평론가와 전시기획자 등 미술계 인사를 광범위하게 포함시켰다.

그간 미술인 관련 자료집으로 <한국서화인명사서>(1959), <한국회화대관>(1969), <청구서화가명자호보>(1978), <한국서화가인명사전>(2000) 등이 있었지만 수록 인물들은 조선시대말 정도로 범위가 한정돼 전후 동시대 현대미술가들을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따랐다.

이건환경-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로비조형물 '희망의 프리즘'
이번 인명록은 1850~1960년에 태어난 근·현대미술인을 망라한데다 그 밖의 미술계 인사는 그 특수성을 고려해 1970년생까지 포함시켰다. 미술인 자료집으로는 국내 최대이자 최초인 셈이다.

320쪽 분량의 인명록은 크게 회화·조각·행위 등의 이미지를 만드는 작가와 이들을 대중에 중개하고 미술의 대중적 향유를 꾀하는 평론가, 큐레이터 등의 미술인으로 구분하고 작고 미술인을 구분해 수록한 것이 특징이다.

이에 따르면 1850년에 태어난 한국화가 채용신부터 1960년생 화가 사석원까지 작가는 모두 4,254명이고, 이중 작고 작가는 908명에 이른다. 작가 외 미술인(1850~1970년 출생)은 모두 655명이다.

인명록에는 이들 미술인들의 출생지와 생몰(生沒)연도, 학력, 전시경력, 사회경력, 상훈, 현직 등이 순서대로 정리돼 있다. 또 기존의 미술연감과 인명록에서 누락됐던 월북 미술인과 재외동포 미술인, 생몰연대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은 납북·월북 미술인, 행방불명된 미술인 등의 정보도 수록했다.

혜성처럼 등장했다 요절한 강신호(1904~1927), 국전 특선을 하고 아메리칸 드림을 찾아 미국으로 건너가 LA한인미협초대회장을 지냈으나 자결로 생을 마감한 위상학(1913~1967), 호랑이 그림으로 유명한 서정묵(1920~1993) 등이 인명록을 통해 주요 활동과 생몰 연도가 정확히 알려졌다.

이렇게 다양하고 풍부한 내용을 담은 인명록은 우리나라 근·현대미술의 흐름과 현실을 조망할 수 있는 길라잡이뿐 아니라 미술사 서술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미술비평을 위한 기초자료로 매우 유용하다. 또한 전시기획에 필요한 작가 활동정보, 미술시장의 가치 평가 및 유통정보, 미술품 수집가 및 애호가에 대한 정보 제공 등의 역할을 함으로써 국내 미술발전의 촉매 역할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역작은 30년 넘게 미술자료를 수집해온 김달진 연구소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소장은 고교 3학년 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근대 60년>전 관람하다 작가에 대한 자료가 미흡한 것을 보고 제대로 모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당시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 널리 알려진 작가들의 자료는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수많은 대다수 화가들은 이름만 존재할 뿐 구체적인 자료를 구하기 어려웠어요."

김 소장은 1979년 미술잡지 <전시계(展示界)>에 근무하면서 '근대 작고미술가 인명록'을 연재했고, 이것이 이번 인명록의 주춧돌이 되었다. 그는 이후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과 가나아트 자료실장 등을 거쳐 2001년에 김달진미술연구소를, 2008년엔 그동안 모은 자료를 기반으로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열었다.

김 소장은 책을 만들며 작가의 생몰 연도, 한자 이름 등이 부정확해 이와 관련된 자료를 찾아내고, 신문 기사, 인터넷 등을 통해 최근 자료까지 업데이트하는 게 힘들었다고 한다. '보람'을 물으니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작가들도 한국 미술사를 이뤄온 주역으로 그들을 기록할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한다.

김 소장은 "앞으로 인명록 작업을 계속하겠다"면서 "인물과 작품에 대한 평뿐만 아니라 대표작까지 곁들인 명실상부한 인명사전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이건환경-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희망의 프리즘' 제작
환경미술가 임옥상 작가, 이건 사원과 조형물 제작 기업과 예술의 상생 본보기돼

이건환경과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하 김달진박물관)이 올 초 공동 제작한 로비 조형물'희망의 프리즘'이 경제계와 예술계에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한국메세나협의회(회장 박영주)가 기업과 예술의 상생을 도모하기 위해 2007년부터 시작한 중소기업 예술지원 매칭펀드의 모범적인 성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소기업 예술지원 매칭펀드를 매개로 이건환경과 파트너가 된 김달진박물관은 이건환경의 2009년 모토인'환경'과'나눔'을 주제로 한 조형물을 제작하기로 하고 대표적 환경미술 작가인 임옥상씨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임 작가는 이건이 목재생산업체라는 것을 착안, 나무로'환경'의 이미지를 만들고, 조형물 안에 공장근로자, 엔지니어, 청소년, 청소부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나눔'을 표현하고자 했다.

임 작가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이건 로비에서 합판 300장을 60개씩 붙여 레이저로 나무를 깎아낸 뒤 입체감나게 붙여 세우는 작업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 이건환경 직원 13명이 참여해 작품 제작을 도왔다.

작품이 완성된 뒤 임 작가는 "나는 디자인만 했을 뿐, 이건 사람들이 작품을 만들고 완성시켰다. 사원들의 노력이 담긴 이건의 대표 조형물로 거듭났으면 한다"고 말했다.

'희망의 프리즘'조형물 앞에는 임옥상 작가의 이름과 함께 제작에 참여한 13명의 직원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새겨져 있다. 작품은 기업과 예술단체 상생의 표본으로 이건의 직원들에게 는 희망을 주는 상징물이 되고 있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