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심(文心)과 문정(文情)> 전

겸재 정선 '황려호'
언제부터인가 일반 갤러리에서 우리의 문향(文香)을 찾기란 쉽지 않아졌다.

현대미술과 서양화가들이 그 자리를 넘치도록 차지하면서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간송미술관 같은 특별한 곳에서나 만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지난 15일, 서울 인사동 공화랑에서 막올린 '문심(文心)과 문정(文情)' 고서화전은 눈길을 끈다.

지난해 6월 조선시대 명품서화를 감상할 수 있는 '안목(眼目)과 안복(眼福)' 전을 선사한 지 10개월 만이다. 전시에 나온 60여 점이 모두 희귀작품인데다 처음 공개되는 것도 적지 않아 조선 문화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다.

개막일 전시장을 찾은 한국 화랑의 산증인 박주환(83) 동산방화랑 창업주는 한 작품을 가까이, 또는 떨어져 유심히 살펴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옛 그림인데 현대적이면서 중량감이 있어." 달빛 아래 정적이 흐르는 밤, 고목나무 아래 초옥(草屋)에서 선비가 글을 읽고 있는 <한거독서도(閑居讀書圖)>, 실학자 박제가(1750∼1815)의 그림을 두고 한 말이다.

고람 전기 '장심시회도축'
"지두화(指頭畵, 손가락으로 그린 그림)입니다." 공화랑 공창호 대표가 옆에서 설명을 보탰다. 18세기 후반 유득공과 함께 연행(사신으로 중국 베이징에 감)을 한 박제가는 청(淸)의 문사 괴륜 등과 교류하면서 지두화를 접하고 스스로 작품으로 구현했다고 한다.

"어쩐지 주산과 지붕이 뭉툭하고 나무 묘사가 다르다 했더니…." 고서화에 일가견이 있는 박주환 선생은 전시장을 둘러보며 연신 감탄을 했다. 학계 인사들과 고미술 전공자, 콜렉터, 일반 관객들은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희귀 작품들에 큰 관심을 나타내며 어려운 상황에서 고서화전을 마련한 것에 고마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문심(文心)과 문정(文情)'전은 규모와 내용 면에서 올해 개인 화랑이 개최한 고서화 전시 중 최고 수준이라 할 만하다. 앞서 <한거독서도> 작품만 하더라도 보기 드문 수준급 지두화인데다 왼쪽 아래 '조선 박제가(朝鮮 朴齊家)'라는 관서(官署)는 박제가가 청나라 문신들과 교류했다는 문헌기록을 입증한다.

이번 전시에 처음 공개된 <황려호(黃驪湖)>는 겸재 정선(1676∼1759)이 남종화풍으로 그린 작품이다. 1732년 7월 19일 백춘 김원행이 화백 원경하의 시를 써서 백옥 오원에게 전하고 겸재는 이들의 부탁으로 지금의 경기도 여주의 한강변 풍경을 그린 것이다. 황려호는 조선 시대의 기록성과 함께 당시 학자들 간의 교류를 말해준다.

호가 고람인 전기(1825∼1854)의 <징심시회도축(澄心詩會圖軸)>도 이번 전시의 백미다. 개성 한의사인 전기는 추사 김정희의 문하에서 서화(書畵)를 배워 이를 제자들에게 가르쳤다. 징심회(澄心會)라는 이 시사(詩社)의 구성원들은 해마다 봄이면 한양 근교 징심정(澄心停)에서 시사를 열었는데 무슨 사정인지 더이상 모임을 할 수 없게 됐다.

화재 변상벽 '묘작도'
그래서 그들은 지금의 성북동 계곡으로 추정되는 징심정에 함께 모여 술을 나누며 시를 짓고 이별의 아쉬움을 달랬고, 고람은 이날을 기념해 징심시회도(澄心詩會圖) 한 폭을 손수 그렸다. 그런 고람은 30세에 요절했다.

공창호 대표는 "30도 안된 젊은 고람의 작품 수준은 70∼80대와 같은 경지에 이르고 있다"며 "추사의 세한도에 버금갈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말했다.

일제시대 <조선고적도보>(1934)에 대표작으로 소개된 오원 장승업(1843∼1897)의 <군마도(群馬圖)>역시 첫 선을 보인다. 색채와 음영 없이 백묘법(白描法)으로 7마리의 말과 인물을 그린 이색적인 작품은 필치에서 장승업의 개성을 엿볼 수 있다.

작자 미상의 <야유풍속도(野遊風俗圖)>는 실물이 처음 공개되는 걸작으로 19세기 후반 조선의 풍유를 전해준다. 채색물감으로 그려진 양반과 기녀, 구경 나온 어른과 아이들의 노니는 모습은 혜원 신윤복과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를 연상케 한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제초의순소장석옥시첩(題草衣洵所藏石屋詩帖)>은 제자인 초의 의순이 소장한 석옥시첩에 남긴 글로 '다산시문집'에는 누락된 귀한 자료이다.

오원 장승업 '군마도'
조선의 문기(文氣)를 느낄 수 있는 작품들도 반갑다. 추사 김정희(1786∼1886)의 <묵란도(墨蘭圖)>는 '난초를 그리는 데 정해진 법이 있어서는 안 된다. 또한 법이 없을 수도 없다(寫蘭不可有法 亦不可無法)'는 글로 추사만의 경지를 보여준다. 왼쪽 여백에 자신만의 법식을 갖추고 있는 난은 간결하면서도 유려한 필선으로 절제의 미학이 느껴진다.

표암 강세황과 함께 조선후기 문인화를 이끌었던 현재 심사정(1707∼1769)의 <월매도(月梅圖)>는 온아한 빛을 머금고 있는 매화를 힘차고 역동적인 필치로 그린 수작이다. 영조 최고의 초상화가이자 동물화에 탁월한 화재 변상벽(1730∼?)의 <고양이>,<토끼>, <암탉과 병아리>는 정확한 필선과 살아있는 듯한 묘사가 압권이다.

40년 고미술 경력의 공창호 대표는 "마음으로 보고(文心), 작품의 뜻을 헤아려보라(文情)"고 권한다. 그래서 우리 고서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고, 그에 따라 우리 고미술이 격상되고 활성화면 더할 나위 없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4월 26일까지 전시. 02)735-9938


초정 박제가 '한거독서도'
작자 미상 '야유풍속도'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