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건축하기' 워크숍, 어린이집에 필요한 놀이공간 지어 기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은평구 갈현동 소리나는어린이집에 1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마당 가운데에 흙과 물, 몇 가지 재료를 붓더니 밟고 주무르느라 부산하다.

차진 흙동산 위에서 일제히 바지를 둥둥 걷어 올리고 발에 몸무게를 실어 기우뚱 기우뚱 움직이는 게 떨어져서 보면 덩실덩실 군무라도 추는 모양이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흙장난이라도 하는 것일까?

이들은 흙집을 지으러 왔다. 한국건축가협회의 시민 대상 교육프로그램인 건축문화학교의 수강생들로 '흙으로 건축하기' 워크숍에 참가한 것. 어린이집에 필요한 놀이공간을 지어 기부하는 실습이다.

그 첫 단계로 흙벽돌을 만드는 중이다. 흙 10부대에 석회 1부대, 황토풀 3통, 적당량의 소금물과 볏짚, 닥나무 껍질을 삽으로 섞어 벽돌로 찍어내기에 알맞은 끈기와 강도가 될 때까지 이불 빨래하듯 잘 밟아준다.

흙은 심토로 준비되었고, 석회 대신 시멘트를 넣어도 된다. 황토풀은 흙집에서 먼지가 일어나는 것을 막아준다. 예전에는 느릅나무 껍질 삶은 것을 쓰기도 했다. 소금은 살균 작용을 하며 볏짚과 닥나무 껍질은 섬유질로, 끈기를 높이고 금 가는 것을 방지한다.

손으로 쥐었다 폈을 때 원래 형태로 돌아가지 않고 몇 덩어리로 나누어질 정도로 반죽한 후 틀에 넣어 벽돌 모양을 만든다. 주의할 점은 물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것. 반죽하기는 편하지만 굳은 후에는 금이 가기 쉽다. 모양을 잡은 후에는 약 보름 동안 자연 상태로 말려야 한다.

이날 이들이 약 2시간 동안 만든 흙벽돌은 총 24개. 사실 이렇게 수공으로 작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인건비 때문에 단가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흙벽돌을 만드는 공장이 따로 있어서 개당 2천 원 정도에 판매한다.

하지만 이렇게 직접 작업해 보는 의미는 따로 있다. 수강생들은 언젠가 시골에서 스스로 집을 지을 꿈에 부풀어 있었다. 활동가인 이태영씨는 "언제까지 서울에서 살지 모르겠다. 시골에서 살 때를 대비해 흙건축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숲코디네이터인 허진숙씨는 "생태건축 관련 이론 수업을 들은 후 직접 해보고 싶어서 참가했다. 새들이 직접 집을 짓는 것처럼 나 역시 언젠가 직접 내 집을 지을 것"이라고 말했다.

'흙으로 건축하기'의 강사인 생태건축연구소 이윤하 대표의 말처럼 흙은 "단순한 건축 자재가 아니라 삶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최근 생태적 삶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흙건축이 재조명되었고 건축문화학교를 비롯한 시민 대상 교육, 체험 프로그램이 여럿 운영되는 중이다.

이윤하 대표는 "세계사 속에서 사회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흙건축이 대안적으로 연구된 사례를 종종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세계 2차대전 후 파괴된 도시와 마을을 재건할 때 흙건축이 부상했으며, 1950~60년대 경제 위기에 처한 남미와 아프리카, 중동 등에서도 흙건축이 주목받았다는 것이다. 1970년대 오일쇼크를 계기로 흙건축은 과학적 연구 대상으로 떠올랐다.

이는 흙이야말로 "싸고 어디에나 있으며 누구나 다룰 수 있는 재료"이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자재보다 만들어지는 과정, 건축되는 과정에서 소모하는 에너지와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적어 환경친화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늘어난 관심에 비해 흙건축에 대한 과학적, 체계적 접근이 부족한 실정이다. '흙으로 건축하기' 워크숍의 보조강사를 맡은 생태건축사무소 숨쉬는공간의 이현일 대표는 "서구에서는 7층짜리 흙건물 건축이 가능해졌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3층밖에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높고, 다양한 흙건물을 지으려면 강도를 실험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할 만한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는 뜻이다.

짓는 것뿐 아니라 유지, 관리하는 것도 문제다. 이윤하 대표는 특히 "방수와 단열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물에 약한 흙의 특성상, 강력한 방수재가 필요하다. 시멘트건물보다 난방 비용과 에너지가 많이 든다는 점도 해결해야 한다. 벽을 두껍게 하고 친환경 단열재를 개발하는 등 여러 방안이 연구되고 있다.

이윤하 대표는 시멘트건물의 일부를 흙으로 대체하거나 돌 등 다른 재료들과 섞어 디자인을 다양화한 외국 건축물들을 예로 들며 흙건축이 현대화될 수 있음을 설명했다.

흙집을 짓는 몇 가지 방법
흙집이라고 다 같은 흙집이 아니다. 벽돌을 만들어 쌓는 방법부터 '거푸집'을 세운 뒤 흙을 붙이는 방법까지 다양한 방법이 가능하다. 우선 흙벽돌 공법은 거의 모든 기후의 지역에서 발견된 전통적인 흙건축법이다. 건축문화학교 워크숍에서 한 대로 틀에 흙반죽을 넣고 눌러 만드는 것은 압축흙벽돌이다. 또는 틀에 젖은 흙을 세게 던져 넣어 만드는 진흙벽돌 등이 쓰인다.

거푸집처럼 틀을 세운 후 흙을 넣고 다지는 방법은 흙다짐 공법이라고 부른다. 국내에서는 안동이나 하회 등에서 발견되는데 이는 이 지역의 흙에 적합한 공법이기 때문. 거푸집이 비싸고 무겁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무로 된 단단한 단열재나 얇은 두께의 벽돌 등이 대신 이용되기도 한다.

대나무와 수수깡, 싸리나무 등으로 구조체를 만든 후 짚과 섞은 흙을 물에 개어 바르는 심벽공법은 전통 한옥에서 쓰였던 방법. 하지만 단열이 잘 되지 않고 현대식 주거와 접목하기 어려워 거의 현대화되지 않았다. 이외에 흙부대를 쌓아 집을 짓는 흙부대건축 등이 있다.

언젠가 내 손으로 지은 흙집에서의 시골 생활을 꿈꾼다면 관련 워크숍에 참여하거나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건축문화학교(www.archiaa.org, cafe.naver.archiaa)와 생태건축연구소의 생태환경건축아카데미(cafe.naver.com/aoeae), 한국흙건축연구회(cafe.naver.com/eartharchitecture), 전국흙집짓기운동본부(www.ecovillage.or.kr) 등에 교육,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다.

흙집 지은 경험을 공유하는 커뮤니티로는 흙부대건축네트워크(cafe.naver.com/ewarthbaghouse), 지성아빠의 나눔세상-전원&귀농(cafe.naver.com/kimyoooo), 대안기술나눔터-지구별 체험농장(cafe.naver.com/gomichun), 흙건축연구소 살림(cafe.naver.com/earthist21) 등이 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