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원 감독 회고전> 독립 다큐 영화의 대부위해 전주국제영화제서 마련

상계동 올림픽
29일부터 시작하는 제11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한국 독립다큐멘터리 영화의 대부 의 회고전이 마련된다.

1986년부터 2008년까지 그가 담아낸 풍경들을 쫓아가 보니, 그 자체가 한국사회의 현대사였다. 그것도 우리가 감추고 싶었고 외면하고 싶었던 슬픔과 딜레마를 또렷이 포착한 용기 있는 역사.

소외된 사람들을 주목하다

1988년작 <>은 의 선전포고와도 같았다. 모두가 서울올림픽의 화려한 스펙터클로 근대화의 성공을 축하하고 있을 때, 의 카메라는 그 이면을 들추었다.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미관을 위한 재개발' 명목으로 쫓겨나다시피 삶의 터전을 떠나야 했던 상계동 주민들을 주목했던 것. 영화는 이들의 3년간의 투쟁을 정직하게 기록했고, 그 정직함은 이후 한국 독립다큐멘터리의 한 모범이 되었다.

돈과 권력에 의해 흔들리는 삶에 대한 감독의 관심은 1990년작 <>으로 이어졌다. 나날이 오르는 방값과 불안정한 노동 환경 속에서 가난의 쳇바퀴를 도는 도시빈민들을 담은 영화였다. 고향에서 땅을 잃고 서울로 온 이들 대다수의 삶은 한국사회 근대화의 한 동력이자 산물이었다. 사연은 슬프지만, 사람을 슬퍼하는 영화의 정서는 따뜻하다.

벼랑에 선 도시빈민
재개발과 철거, 그 와중에 의지와는 상관없이 삶의 터전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1994년작 <행당동 사람들>의 현장은 거의 전쟁터다. 곳곳에 타이어 바리케이트가 쌓여 있고 사람들은 각목을 지니고 있다. 행당동 철거에 맞선 세입자들이다. 그만큼 급박하고 필사적이다. 주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주거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영화는 현장을 보는 동시에 재개발 관련법의 문제점을 파고들었다.

<행당동 사람들>의 속편인 1999년작 <또 하나의 세상: 행당동 사람들 2>는 3년간 철거 투쟁을 한 행당동 주민들이 임시 보금자리를 꾸려, 스스로 문화축제를 열고 생산협동조합을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의 가난하지만 나누고 돕는 공동체 문화는 희망으로 다가온다.

역사적 사건과의 대화

어떤 역사적 사건들은 두고두고 거울로 삼아야 할 의무가 있다. 1997년 은 <명성, 그 6일의 기억>으로 10년 전의 6월 민주화운동을 재조명했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라는 함성이 가득했던 서울 도심을 다시 살려냈다. 냉철한 시각으로 당시 운동의 한계를 직시하면서도 그 정신과 경험은 잊지 않도록 만드는 작품. 풍부한 자료 화면과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증언들을 통해 역사와의 대화를 시도했다.

가장 최근작인 2008년작 <끝나지 않은 전쟁>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의 위안부였던 할머니들을 찾아간다. 아시아 여성들만이 아니다. 일본군이 진군한 세계 곳곳에 상처가 남아 있다. 영화는 한국은 물론 중국, 필리핀, 네덜란드를 오가며 당시를 돌아본다. 그 일이 아니었더라면 어떤 이는 수녀가 되었을 것이고, 어떤 이는 행복한 가정을 꾸렸을 것이다. 전쟁의 비극은 이렇게 아직, 진행중이라고 일러주는 작품이다.

행당동사람들
휴머니즘의 원칙

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휴머니즘은 종종 특정 인물에 대한 애정으로 표현되어 왔다. 의 카메라는 역사의 소용돌이와 가치의 혼란 속에서도 올곧은 신념을 지킨 이들을 편애했다. 1995년작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이다>는 고 문익환 목사의 생애에 대한 다큐멘터리영화다. 남북통일과 평화 운동에 평생을 바친 이 민족주의자의 삶을 존중하며 담았다. 이 영화에서 한 개인의 역사는 결국 한국사회의 한 시대를 상징한다.

푸른 눈으로 한국의 역사를 보고, 약자들의 편에 섰던 미국인 신부 서 로베르토 역시 이 사랑한 인물 중 하나였다. 2001년작 <한사람>은 198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어 소록도의 나환자들, 가난한 농민들, 상계동 철거민들, 매향리 주민들의 옆을 지켰던 서 로베르토 신부의 삶을 재조명했다. 그 삶에서 신학은 경전과 성당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안에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의 작품 중 가장 흥행한 2003년작 <송환>은 비전향장기수들과 함께 한 영화였다. 남파간첩 출신인 조창손씨를 만난 것이 출발이었고, 그를 중심으로 여러 비전향장기수들을 만나며 12년 동안 찍은 영화다.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은 어떤 강박관념도 편견도 전제된 메시지도 없이 사람에 접근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애정으로 역사 속에서 만들어지고 견디고 자신을 지켜 나가는 사람의 존재 방식을 포착해 낸다. 카메라는 사람에 대한 배려와 호기심, 상대의 특정한 딜레마에 대한 배려와 역사적 이해 사이에 있다. 이 영화가 개봉한 후 한 인터뷰에서 은 "영화의 원칙은 조창손 선생의 삶"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이 한국사회와 역사를 담는 태도이고, 신뢰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김동원 감독

명성, 그 6일의 기록
'끝나지 않은 전쟁'
'하나가 되는 것은 더욱 커지는 일이다'
'한사람'
'송환'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