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스퀘어 미디어 심포지엄'미디어 파사드' 기법 둘러싼 여러 담론들 다양한 각도서 고민

서울스퀘어 외벽, 줄리언 오피의 '걷는 사람들'
세계의 상업, 금융, 문화의 중심지인 뉴욕의 심장부 맨해튼 빌딩 숲.

그 사이를 이리저리 누비는 스파이더맨 뒤로 현란하게 반짝거리던 타임스 스퀘어(Times Square) 광고판에는 이제 '쌤숭(SAMSUNG)' 말고도 '휸다이(HYUNDAI)'도 보인다. 지난달부터는 하루 48회씩 독도 광고도 방영을 시작했다.

기업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뉴욕의 타임스 스퀘어 광고판에 주목한 것은 이곳이 가지는 상징적이고 실질적인 효과 때문이다. 뉴욕에서 유명한 것은 패션만이 아니다.

타임스 스퀘어 거리 빌딩 외벽을 뒤덮은 화려하고 거대한 광고판들은 시각적인 장관으로 관광객의 발길을 끌어들이고 있다. 특히 정적인 광고 조명이 아니라 역동적인 동영상을 보여주는 미디어 파사드(media facade)는 뉴욕을 세계 최첨단 광고의 도시로 각인시키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이 같은 미디어 파사드 기법을 적용한 건축물이 늘어나고 있다. 서울에만 해도 강남의 GS 타워, 신문로의 금호 아시아나 빌딩, 상암동의 LG텔레콤 본사,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그리고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옛 대우센터빌딩)까지. 어둠 속에서 현란한 빛의 향연을 보여주며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서울스퀘어 외벽, 문경원의 '숭례문'
특히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서울스퀘어의 미디어 캔버스는 지난해 말부터 팝 아티스트 줄리언 오피의 영상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그동안의 미디어 파사드가 단순한 그래픽 이미지들에 그친 반면, 영상미술과 결합한 기법은 서울스퀘어가 처음이다.

하지만 미디어 아트 관계자들은 이 '번쩍이는 빌딩'들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미디어 파사드의 1차적 성과이자 동시에 한계였다고 입을 모은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즉 콘텐츠의 지속성이라는 것이다. 또 단순한 건축적 작업을 넘어 공공미술로서의 미디어 파사드에 대한 각종 규제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 10일 서울스퀘어에서 열린 제1회 서울스퀘어 미디어 심포지움은 최근 증가하고 있는 미디어 파사드 기법을 둘러싼 여러 담론들을 다양한 각도에서 고민해 본 시간이었다. 이날 발제자들은 문화와 산업, 예술과 기술의 미묘한 경계에 서 있는 서울스퀘어의 미디어 캔버스를 중심으로, 디지털 매체를 통한 예술의 확장과 새로운 도시성에 대해 논의했다.

이중식 서울대학교 디지털융합기술대학원 교수는 미디어 파사드의 학문적 경계를 논하며 그 틈새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는 먼저 '도시적 작업'으로서의 미디어 파사드를 설명하며 "도시라는 맥락에서 어떻게 소통하고 도시적 경험을 제공할까를 고민하는, 에너지가 외부로 향한 작업"이라고 정의했다. 결국 미디어 파사드는 '소통(communication)'을 전제로 도시와 역사의 맥락에서 디자인되고 이해된다는 것이다.

그는 또 르네 마그리트 등 예술가의 실험을 예로 들며 고전적인 형식미에 갇힌 도시의 내재된 욕망을 찾아내는 것이 미디어 파사드의 장점이라고 해석한다. 닌텐도와 트위터에 익숙한 요즘 세대의 새로운 욕망에서 미디어 파사드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일본 동경 긴자에 위치한 샤넬 건물
이현진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교수는 도시 공간에서 활용되고 있는 미디어 아트 작업들의 상호작용성에 주목했다. 이 교수는 "거리에서 우연히 작품을 만난 행인들은 일시적으로나마 작품의 참여자가 되어 그들의 족적을 작품 속에 새기고, 공공의 장소를 개인화된 장소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며 미디어 아트의 상호작용성의 가능성에 의미를 부여했다.

그가 미디어 아트에서 강조하는 또 하나의 특징은 '놀이 공간으로 공유되는 도시의 가능성'이다. "이제 미디어 예술과 기술적 상상력으로 도시는 단순한 경험과 기억의 장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끊임없는 상상이 가능한 하나의 커다란 캔버스가 되고, 또 함께 재미를 공유하는 놀이(play)의 장소로 변화해가고 있다."

문화와 산업 사이에 위치한 미디어 파사드의 현재를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바라본 논의도 의미 있었다. 김민주 리드앤리더 컨설팅 대표이사는 특정 장소를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하여 장소의 가치를 상승시키고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플레이스 브랜딩(place branding)' 전략의 차원에서 미디어 파사드의 가능성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서울스퀘어의 미디어 파사드를 서울 스토리움(Seoul Storyeum)으로 만드는 방법을 제안했다. "서울과 관련된 다양한 스토리를 보여줌으로써 국내외적으로 더욱 많은 주목을 받게 되고, 그럼으로써 명실상부한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는 것이 김 대표의 전망이다.

미디어 파사드에 앞서 도시의 밤을 밝혔던 루미나리에는 조명의 영역에서 공공예술적 감상의 장으로 확장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미디어 파사드는 그보다 한층 진화한 IT 기술과 디지털 미디어로 도시 공간을 문화·산업적 측면에서 변화시키고 있다.

독일 베를린의 O2 아레나
전문가들은 미디어 파사드가 건물주를 비롯해 미디어 아트 작가, 설치업체, 조명업체, 건물 입주자, 인근 지역 주민, 소비자 등 이해 관계자에게 다양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최근 LED 산업의 부양도 미디어 파사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디어 파사드가 대중들에게 열린 문화의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예술과 산업의 가치 사이에서 현명한 조율이 필요하다고 관계자들은 조언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 푸동지구, 시티그룹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