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춤과 현대춤으로 재해석한 서울시 무용단의 시도 관심집중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발레, <백조의 호수>는 오늘날 크게 두 가지 버전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마리우스 프티파와 레프 이바노프의 원작 발레와 매튜 본이 각색한 댄스뮤지컬 버전이 그것이다.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가 대중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은 동시에 원작 <백조의 호수>의 공고한 위상과 영향력을 반증하는 사실이기도 하다.

국내 대형 발레단들의 레퍼토리에서도 <백조의 호수>는 빠지는 법이 없다. 그래서 <백조의 호수>는 대중적인 작품이면서 '언제나 볼 수 있는' 발레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오는 5월 28일부터 이틀간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되는 한 <백조의 호수>는 좀 특이하다. 이 작품엔 백조 오데트도, 흑조 오딜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 유명한 극 후반의 흑조 푸에테도 없다. 심지어 발레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 이상한 <백조의 호수>의 정체는 서울시무용단(단장 임이조)이 한국인의 정서를 가미해 한국춤과 현대춤으로 재해석한 창작무용극이다.

닮은 듯 닮지 않은 한국산 백조

설고니, 거문조, 지규 왕자, 노두발수…. 낯선 이름들이 왠지 귀에는 익다. 서울시무용단의 <백조의 호수>의 주요 배역들인 이들은 사실 원작의 캐릭터들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원작의 백조와 흑조는 각각 '설(雪) 고니(백조)', '거문조(검은새(黑鳥))'로, 지크프리드와 로트바르트를 지규와 노두발수로 살짝 바뀌었다. 원작과 약간씩 닮은 이름들이 살짝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달라진 것은 이름뿐만 아니다. 극의 배경은 유럽의 어느 마을에서 동아시아의 만주로 바뀌었다. 평화로운 만주의 소국 비륭국과 흉포한 만강족, 그리고 강성대국 부연국이라는 가상의 나라가 새로 만들어진 설정이다. 왕자의 성년 축하연회는 태자책봉식으로, 헝가리, 스페인, 이탈리아 등 외국 사절단은 몽골, 중국, 일본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창작무용극 <백조의 호수>의 설정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줄거리의 큰 뼈대는 원작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특히 사연이 구체화된 것은 극의 정서를 중시하는 한국춤의 특징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번 공연에서 대본 각색을 맡은 서울시무용단의 김민 기획실장은 원작과의 큰 차이점으로 공주가 백조가 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설고니 공주에게 청혼을 거절당한 노두발수가 마법으로 저주를 걸었다는 설정이 추가된 것.

2막 4장으로 이루어져 그랑 파드 되로 완성되는 원작에 비해, 총 5장으로 이루어진 창작무용극 <백조의 호수>는 하나의 장면을 각 장으로 삼아 순서대로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때문에 발레팬들이 고대하는 흑조의 32회 푸에테는 여기서 볼 수 없다. 볼거리에 치중하는 원작과 반대로 스토리상에서 한국춤만의 춤사위를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에 이번 공연의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춤과 의상, 무엇보다 군무를 눈여겨보라

무엇보다 이번 공연에서 기대되는 것은 발레의 대명사인 이 작품을 어떻게 한국춤으로 표현해내는가이다. 그동안 <심청>과 <춘향>, <왕자 호동> 등 우리 고전 원작을 발레로 만든 시도는 있었지만, 서양의 고전 발레를 우리 춤으로 재해석한 것은 이번 공연이 처음.

특히 창작의 특성상 현대춤의 특성 또한 간과할 수 없어 이번 공연을 위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참여는 불가피했다. 그래서 예술감독과 총괄안무를 맡은 임이조 서울시무용단장 외에 현대춤의 김남식, 발레의 김경영 등 외부 안무가를 영입해 안무의 폭을 넓혔다.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공통점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백조의 호수>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꼽히는 군무 씬이다.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발레 <백조의 호수>의 VIP석이 2층인 이유는 정확히 계산되어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진행되는 24마리의 백조를 보기에 적합해서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맞춰 대열을 바꾸며 춤을 이어가는 장면은 '발레 블랑(백색 발레)'의 백미라고 할 만하다. 김민 기획실장은 "발레의 튀튀 대신 한국춤 스타일의 옷을 입고 곡선의 원형 변화를 하는 군무 장면은 직선 대형 변화를 하는 발레와는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하지만 그가 추천하는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는 5장의 전투 장면이다. 발레 버전이 두 사람의 사랑에 로트바르트가 자멸하는 설정이라면, 창작무용극 버전은 두 세력 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사랑이 완성된다는 차이가 있다. 왕자의 친위대와 노두발수의 군사들, 그리고 백조 무리까지 뒤엉키는 전투는 발레 <백조의 호수>와의 분명한 차별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묘하게도 이번 공연에 앞서 LG아트센터에서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도 계획되어 있다. 매튜 본은 자기만의 어법으로 권위 있는 고전 명작을 재해석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한국적 공간과 어법으로 대표 발레를 끌어온 서울시무용단의 이번 시도는 시작부터 관객의 냉정한 판단과 마주하게 됐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