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열전' 연이어 성공, 뮤지컬 10년 황금기 마감, 전세 역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한때 영화의 자리까지 위협하던 뮤지컬의 위세가 예전 같지 않다. 지난해 약 10년동안 이어오던 성장세를 마감하고 위축된 모습을 보였던 뮤지컬은 해를 넘긴 현재까지도 전반적으로 조용한 인상이다.

반면 불황을 운명처럼 받아들여온 연극 무대는 연극열전 시리즈의 잇따른 성공과 함께 중극장 규모의 큰 무대에서 초연되는 명작들이 계속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절대적인 매출액 대비에서는 아직도 뮤지컬이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지만, 황금기를 구가하던 뮤지컬과 늘 가난했던 연극의 역전된 상황은 공연계의 새로운 고민이자 화두가 됐다.

연극에 대한 인식 변화, 성공을 이끌다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이어진 연극의 상승세에는 기본적으로 연극계 내외부의 공통적인 태도 변화가 있다.

연극 '대학살의 신'
무조건 '이 작품은 좋은 작품'이라고 홀로 주장하는 정공법을 택하는 모습 대신 여러 작품을 묶어 하나의 브랜드로 만드는 마케팅이나, 연극 관람의 기존 이미지를 깨고 다양한 관람 환경을 제공하는 실험들이 잦아지고 있는 것.

연극 활성화의 가장 선두에 서 있는 것은 역시 '연극열전'이다. 벌써 시즌 3까지 진행된 연극열전은 대중 관객에게도 익숙한 명작들과 스타 캐스팅을 기반으로 1년 내내 연극계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뮤지컬 제작을 주로 하던 기획사들의 참여도 눈에 띈다. 최근 가수 김C의 출연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연극 <사나이 와타나베>(장항준 연출)는 뮤지컬 <삼총사>, <살인마 잭> 등을 제작한 엠뮤지컬컴퍼니의 '감독, 무대로 오다' 시리즈의 하나다. '명품 연극 시리즈'의 일환으로 신경숙 원작의 <엄마를 부탁해>로 매진 행렬을 이끈 신시뮤지컬컴퍼니는 현재 <대학살의 신>으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뮤지컬 <스프링 어웨이크닝>을 제작한 뮤지컬해븐은 아예 '노네임 씨어터 컴퍼니'라는 연극 브랜드를 만들어 <뷰티퀸>을 공연해 관객과 평단의 한결 같은 찬사를 받았다. 뮤지컬해븐 측은 이후 '노네임 씨어터 컴퍼니'를 '연극열전'과 같은 연극 전문 브랜드로 키운다는 목표다.

이런 시도가 성공을 거두고 있는 배경에는 오랫동안 대중 관객의 취향을 파악하는 데 심혈을 기울여 온 뮤지컬 단체들의 노하우가 있다. '연극' 하면 떠오르는 대학로의 작고 어두운 극장 관람 모습 대신, 대중에게 익숙한 스타를 기용해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전당, 두산아트센터와 같은 크고 깨끗한 관람 시설에서 뮤지컬과 같은 관람 환경을 제공하는 것. 이런 작품을 보는 관객들은 마치 뮤지컬 관람과 같은 느낌 속에서 본래 연극이 가졌던 진중한 매력까지 느낄 수 있게 된다.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
연극을 고급 공연 장르로서 새로 자리매김시키는 이런 시도들은 '관객을 위한 연극'으로 침체된 연극시장을 활성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뮤지컬의 활로, 장기 공연과 창작 도전

한편 지난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뮤지컬 시장은 올해 초 <모차르트!>의 성공으로 불안을 떨치는 듯했다. 비록 아이돌그룹 동방신기의 시아준수 캐스팅이 초반 화제를 이끌기는 했지만, 이후 매진 붐을 일으킨 것은 온전히 작품 속 넘버들의 인기에 기댄 것이었다.

스타트를 기분좋게 끊은 뮤지컬 시장의 호조는 이후 <맨 오브 라만차>, <시카고>로 이어지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게 했다. 하지만 야심차게 기획되어 초연된 <선덕여왕>이나 <올 댓 재즈>, <홍길동> 등은 애초의 기대에 못미친다는 혹평에 휩싸였다.

이처럼 이렇다 할 반등의 기미 없이 상반기를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얼마 전 국내 뮤지컬 단일 공연 사상 최다 관객(24만 명) 기록을 경신한 <오페라의 유령>의 존재는 의미심장하다. 이번 기록은 지난 초연(2001) 당시 7개월간 공연하며 세운 기록을 다시 넘은 것으로, 3개월 남은 폐막까지는 30만 명 돌파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오페라의 유령>의 반복되는 성공의 요인으로 '장기 공연'을 꼽는다. 240억 원에 가까운 제작비를 들인 대작이 수익을 거두기 위해서 장기 공연은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작품 내적으로도 작품성을 인정받은 대작이 많은 관객들에게 충분히 제공되기 위해서는 1년에 가까운 공연 기간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는 한 극장에서 같은 공연이 수 년간 공연되는 일이 다반사지만 그동안 국내에서는 이런 일이 흔치 않았다. 전용극장의 희소성과 폭이 넓지 않은 관객층이 장기 공연을 저해하는 요소였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장기 공연 인프라 구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내왔다.

이런 가운데 대작들의 장기 공연이 속속 예정되어 있어 뮤지컬 시장의 새로운 활력을 기대하게 하고 있다. 지난 3월 고양아람누리에서 막을 올린 <미스 사이공>은 현재 성남아트센터 공연을 마친 후 충무아트홀로 무대를 옮기며 9월까지 일정을 계속하게 된다. 아시아 초연으로 하반기 최대 화제작인 <빌리 엘리어트>는 LG아트센터에서 8월에 개막해 내년 2월까지 꾸준히 관객과 만난다.

반면 대형 라이선스 작품에 대한 부담감보다는 오히려 창작뮤지컬에서 가능성을 찾는 시선도 있다. 4월 말부터 공연되는 뮤지컬 <친정 엄마>는 공연계 엄마 신드롬의 주역인 연극 <친정 엄마와 1박2일>의 뮤지컬 버전이다. 연희단 거리패의 이윤택이 극본과 연출을 맡은 뮤지컬 <이순신>도 <영웅>에 이은 '민족 뮤지컬'로 관객에게 어필할 전망이다.

시즌을 거듭해 새로워지는 히트작들의 재공연과 타 장르의 무대화도 기대해볼 만하다. 5월부터 경희궁에서 다시 공연되는 고궁뮤지컬 <대장금>과, <김종욱 찾기>와 함께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의 쌍두마차인 <오! 당신이 잠든사이에>는 이미 어느 정도의 흥행이 예상되는 작품. 만화와 드라마로 검증받은 <풀하우스>와 <커피프린스 1호점>, <궁> 역시 낙관적인 예상을 이끌어내고 있다.

최근 뮤지컬계의 침체를 '거품 제거'의 과도기로 보는 시각도 있다. 몇몇 작품의 큰 성공으로 공연의 질보다는 수익만을 생각하며 무작정 뮤지컬에 뛰어든 제작사나 투자자들의 한계로 나타난 결과라는 것. 그래서 한 공연관계자는 최근의 다양한 시도와 실험들에 대해 더 좋은 공연을 만들기 위한 기반 다지기의 측면에서 오히려 긍정적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