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회 AALA 문학 포럼유럽중심 세계문학 틀 넘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지평 넓히자

난시 모레혼(쿠바, 시인)
지난 23일, 제 3세계 작가 13인이 한국을 찾았다. 제 1회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문학포럼(Asia Africa Latin America Literature Forum 이하 AALA) 참석차 인천에 모인 것.

제1회'세계문학을 다시 생각한다'는 주제로 열린 인천 AALA문학포럼은 ▲비서구권 여성문학, ▲이산(디아포스라)문학, ▲탈 유럽 중심의 세계문학이란 세부 주제로 인천아트플랫폼, 인천 하버파크 호텔에서 개최됐다.

세계문학 바로미터를 바꾸자

장 폴 사르트르가 '문학의 제도권 편입'을 거부하며 노벨 문학상을 거부한 지 4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세계문학의 바로미터가 유럽이란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지난 주 열린 제 1회 인천 AALA포럼은 바로 세계문학 표준모델로 인식된 유럽 중심주의 세계문학의 틀을 넘어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로 문학의 장을 넓히자는 취지로 기획된 포럼이다.

마카란드 파라자페(인도, 평론가)
난시 모레혼(쿠바 시인), 류전윈(중국 소설가), 신디웨 마고나(남아공 소설가), 미겔 바르넷(쿠바 소설가), 호 아인타이(베트남 소설가) 등 13명의 해외 유명 문인들과 박완서, 현기영, 도종환, 공선옥 등 국내 문인 20여 명이 참여했다.

행사의 집행위원장인 김재용 원광대 교수는 "해당 지역에서 문학적 성취가 높은가, 제국주의와 민족주의의 틀에서 벗어난 문학을 추구하는가를 기준으로 초청 작가를 선정했다"고 설명했다.

1부 '비서구 여성문학의 목소리'에 참여한 작가들은 서구 여성문학과 비서구 여성문학의 역사적 차이를 재확인하고, 비서구 여성문학에 대한 평가, 서구 문학과 다른 독법을 갖는 시선의 중요성을 말했다. 최경희 시카고대 교수의 진행으로 박완서, 이경자 소설가, 쿠바 시인 난 시 모레혼, 이집트 소설가 살와 바크르, 남아공 소설가 신디웨 마고나 등이 참여했다.

박완서 소설가는 '내가 믿는 이야기의 힘'이란 주제로 1시간에 걸쳐 한국 작가로서의 삶을 회고했다. 열 살 위인 오빠가 한국전쟁 때 좌우 진영의 틈바구니에 끼어 희생당한 20대의 일을 말하며 자신의 문학 바탕에는 그때 일에 대한 증언과 복수의 욕구가 자리잡고 있노라고 밝혔다.

"쓰지 않은 동안의 경험을 파먹고, 여태까지 연명한 것이 곧 저의 작가적 수명입니다. 40세에 첫 소설을 쓰고 다시 40년 가까이를 더 살았으면서도 저는 제가 아직도 충분히 젊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도 이야기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겔 바르넷(쿠바, 소설가)
2부 '제국, 탈식민, 근대, 이산'은 국민국가 틀에 대한 한계와 내셔널리즘의 문제점이 집중적으로 나타나는 현실에서 미국, 일본, 유럽 등 세계 자본주의 중심 국가들에서 논의되는 탈국민국가주의적 접근이 갖는 문제점을 비서구 지역 작가들의 눈으로 짚어보는 자리였다. 우석균 서울대 교수의 진행으로 시오닐 호세 필리핀 소설가, 현기영 소설가, 류전윈 중국 소설가, 호 아인 타이 베트남 소설가, 미겔 바르넷 쿠바 소설가, 프란시스코 골드만 미국-라티노 작가, 이석호 문학평론가가 참여했다.

현기영 소설가는 4.3사건을 다루었던 자신의 소설을 소개하며 "문학은 슬픔을 다루더라도 인간이 견딜 수 있는 슬픔만을 다루어 왔다. 그래서 비참한 떼주검과 피․비명․울음소리와 무서운 고통은 문학 속에서 발견하기 어렵다. 그러나 작가로서, 지식인으로서 공동체의 숨겨진 참혹한 경험들에 대해 발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기억의 재생, 재기억의 문학이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유럽 작가와 지식인들이 세계문학을 유럽문학으로 내면화 했던 것은 19세기 중반이후 제국주의 등장과 함께 식민지 정복을 꾀했던 역사적 상황과 관련 깊다. 이는 '세계문학'이란 말을 최초로 사용했던 괴테의 <서동시집>이 19세기 초반 페르시아의 시인 하피스의 시집에서 감명 받아 출간됐다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3부 '유럽중심주의를 넘어선 세계문학'에서는 이런 시선을 탈피해 비서구 문학의 가능성을 묻고 이들 지역 작가들의 실천적 연대 중요성을 세계에 알리는 자리였다. 김재용 원광대 교수의 진행으로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 마카란드 파란자페 인도 평론가, 파크리 살레 팔레스타인 평론가, 하리 가루바 나이지리아 평론가, 이데우베르 아벨라르 브라질 평론가, 김명인 인하대 교수가 참가했다.

마카란드 파란자페 평론가는 '세계문학'이란 개념의 흐름을 되짚으며 "세계문학은 그 문학을 탄생시킨 물적 조건에 기반을 둬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학은 경제, 정치적 변화에 의해 결정됐다는 것. 19세기 괴테의 '세계문학' 개념으로 입을 연 그는 "오늘날 글로벌한 세계 질서란 비전이 분명히 서구 지속적인 군사적, 경제적 문화적 지배를 함축한다. 이런 제도가 계속되는 한, 세계문학은 제국주의적 체계의 불평등을 늘 반영할 것"이라고 말한다.

살와 바크르(이집트, 소설가)
"그러나 세계문학이 보편적인 문화나 평등주의적 문명을 가리킨다면, 그때는 세계문학이라는 개념은 아무리 유토피아적이라 해도 얻으려 투쟁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세계문학은 세계 공동체, 동질적이지 않지만 보편적인 세계 문명에 토대한 이상입니다."

진행을 맡은 김재용 원광대 교수는 "AALA 문학포럼은 앞으로도 21세기 우리가 다시 쓰고 만들 <서동시집>의 실천적 연대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사유하고 토론할 계획"이라고 마지막 포럼을 마무리 했다.

발제 발표와 토론이 중심이 된 포럼은 독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행사도 진행됐다. 박완서, 이가림, 도종관 등 국내외 작가들과 함께하는 <낭독의 밤>이 포럼 첫 날인 23일 저녁 열렸고, 해외 작가 살와 바크르(이집트), 미겔 바르넷(쿠바), 호 아인 타이(베트남)와 한국의 작가 김남일, 공선옥 등이 함께한 저자와의 대화도 좋은 호응을 얻었다.

세계문학으로 나가는 길

여기서 의문이 생길 터다. 왜 작가 교류가 필요한가?

시오닐 호세(필리핀, 소설가)
전문가들은 "제 3세계 작가와 작품의 교류는 '서구 문학=세계문학'이라는 한국인의 문학관을 바꿀 수 있는 계기"라고 말한다. 근대문학 이후 국내 문학 시장에서 세계 문학작품은 곧 프랑스와 독일, 영미문학 등 서양 문학 작품으로 인식됐다.

주제사라마구,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오르한 파묵 등 몇몇 작가의 작품을 제외하고 중남미, 아시아, 아프리카 문학은 국내에서 배제됐다. 이런 배경에서 제 3세계 작가들의 교류와 작품의 번역 등 문학 교류는 국내 문학 지변을 넓히고, 문학 담론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대규모 문화 행사가 서울이 아닌 인천에서 열린다는 점도 특이할 만하다. 인천문화재단측은 "과거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거점이었던 인천에서 열린다.

인천이 과거 근대 개항장을 넘어 새로운 세계문학의 중심지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글로벌 문화 교류 거점 도시를 제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 매년 AALA 문학포럼을 주최하면서 보고서를 한국어판, 영어판으로 제작하고 해외 초청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 출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천시는 내년 말 한국근대문학관을 설립할 계획이다. 현재 한하운 시인 자료 220점 등 근현대 문학 관련 자료 1700여 점을 인수한 상태다.

프란시스코 골드만(미국-라티노, 소설가)
AALA 문학선 발간
위 포럼과 함께 제 3세계 문학선도 발간된다. 인천문화재단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출신 유명 작가들의 대표작을 모아 을 발간한다고 밝혔다. 국내 소개되지 않았으나 세계 각국에서 문제작으로 평가받은 작품으로 구성된 이 시리즈는 23일 AALA 포럼을 통해 첫 선을 보였다.

우선 1차분으로 베트남 작가 호 아인 타이(Ho Anh Thai)의 <섬 위의 여자>와 쿠바 문학의 기수 미겔 바르넷(Miguel Barnet)의 <어느 도망친 노예의 일생>, 소말리아 출신의 작가 누르딘 파라(Nuruddin Farah)의 <지도> 등 세 권이 번역 출간됐다.

<섬 위의 여자>는 베트남 전후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호 아인 타이가 1986년에 발표한 작품. 이 작품은 베트남 전쟁 이후부터 도이 머이(쇄신) 정책 이전까지의 베트남 내 사회 분위기를 전달하고 있다. 전후 국가 체제의 재통합이라는 중대한 목표 앞에 개인의 욕망과 상처가 자리해야할 곳이 어디인지, 욕망과 상처가 충돌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강렬한 문체로 풀어내고 있다.

1966년 발표한 <어느 도망친 노예의 일생>은 쿠바 '증언문학'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작가는 에스테반 몬테호란 실존 인물과의 인터뷰를 통해 썼다. 노예 생활과 탈출, 독립전쟁에 이르기까지 에스테반 몬테호의 증언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현실을 그려낸다. 한 인물의 개인사적 증언과 시선으로부터 보다 생생한 사회, 역사적 맥락을 찾아가는 증언문학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 환상문학의 문제점을 극복하려는 작품이다.

<지도>는 작가의 견고한 탈식민지적 세계관이 상징적으로 압축된 작품이다. 소말리아의 민족과 국가, 영토에 대한 비극적인 현실을 한 아이의 내면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작품이다.

신디웨 마고나(남아공, 소설가)

이데우베르 아벨라르(브라질, 평론가)
파크리 살레(팔레스타인, 평론가)
하리 가루바(나이지리아, 평론가)
호 아인 타인(베트남, 소설가)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