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환의 대형 샹들리에, 김재관의 기하학적 추상화, 인디애나의 <마릴린>

집안의 위용을 자랑하듯 대저택의 거실 천장으로부터 으리으리한 샹들리에가 드리워져 있다. 멀리서 보면 전형적인 모양 같지만 가까이서 보니 부엉이가 군데군데 앉아 있다.

환하게 불 밝힌 부엉이들은 파수꾼처럼 이 집의 밤, 화려한 외양 뒤의 은밀한 이야기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관객도 그 자리에 초대한다.

이곳은 영화 <하녀>의 무대인 대저택이다. 700평의 면적의 중심지인 거실에는 분위기를 압도하는 대형 샹들리에가 있다. 귀족적이지만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고, 무심한 소품 같지만 의미심장한 데가 있는 이 샹들리에는 배영환 작가의 작품이다.

2008년작 <불면증>을 영화에 맞게 재창조한 것이다. 불야성의 환경과 신경과민의 상태에 익숙한 현대인의 삶을 풍자한 작품으로 깨진 술병 조각 등 도시의 버려진 재료들로 만들었다. 에머랄드 빛 유리의 정체는 소주병이다.

배영환 작가의 원작의 뜻은 세트와 어우러져 영화에 해석의 가능성을 더한다. 대저택과 그곳에 사는 상류층 가족이 상징하는 세속적 부와 권세의 이면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하녀>의 이하준 미술감독은 "무조건 화려하기보다 갤러리 같은 인상을 주는 저택을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영화의 캐릭터와 내러티브가 강한 만큼 이 '작품'들을 효과적으로 살려줄 수 있는 인테리어를 구상했다는 뜻이다. 온기와, 으스대는 장식들은 최대한 뺐다. 그 결과 미니멀하고 모던하지만 어딘지 쓸쓸하고 음흉한 공기가 감도는 환경이 완성되었다.

이에 기여하는 또 다른 미술작품들은 서양화가 김재관의 것이다. 거실과 방, 주방 등에 걸린 20여 점 그림들은 김재관 작가가 평생 그린 '기하학적 추상화'들 중 추려낸 것이다.

이하준 미술감독은 "언뜻 단순한 인상이지만 들여다 보면 볼수록 미로를 헤매는 듯한 착시 효과를 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그 다층적인 특성을 저택 곳곳에 심은 셈이다. 컬러와 톤 역시 중요하다. 백색 배경처럼 보이지만, 약간의 블루톤이 가미되어 있어서 보통 백색보다 더 차가운 느낌을 준다.

그리고 또 한 작가의 작품이 <하녀>의 결정적 순간에 등장한다. 팝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의 <마릴린>이다. 마릴린 먼로를 모티프로 만든 이 작품은 임상수 감독이 손수 대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영화는 모든 욕망의 소용돌이가 지나가고 집주인인 훈(이정재)이 자신의 딸에게 이 작품을 건네는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저 도발적 스타를 내세운, 매혹적이지만 동시에 참을 수 없이 가볍고 허망한 팝아트의 정신은 영화와 어떻게 겹쳐질까.

김재관 작가의 작품
<하녀>는 어떤 영화?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 <오래된 정원> 등 한국사회의 현실을 풍자적으로, 또 은유적으로 풀어낸 작품을 만든 임상수 감독의 신작으로 김기영 감독의 1960년작을 리메이크했다. 상류층 가정에 하녀가 들어온 후 벌어지는 분열과 혼란상을 담은 작품. 원작은 급격한 근대화와 도시화 과정의 이면을 상징한다고 해석되기도 했으며, 당시로서는 매우 실험적인 영화 어법을 보여주어 화제가 되었다. 2010년판 <하녀>에서는 전도연과 이정재가 각각 하녀와 집주인을 맡았다.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출품되었으며 국내에서는 5월 13일에 개봉한다.


배영환 작가의 샹들리에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