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화려한 휴가> 뮤지컬로… 두 주인공 사랑 통해 희망적 미래 부각

뮤지컬 '화려한 휴가'
5월은 푸르지만 광주의 5월은 1980년 그날 이후 언제나 붉었다. 전국이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로 축하의 꽃 몸살로 보내도, 광주의 5월은 스러져간 영혼을 달래는 헌화로 채워진다.

올해도 어김없이 5월 18일이 찾아왔다. 광주의 5월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가정의 달이 아닌 5.18을 기리고 오늘을 되돌아보는 행사들로 가득 채워진다.

하지만 30년 전 광주가 그랬던 것처럼 이 국가적 비극의 날은 언제부턴가 '지역구' 행사처럼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 지난 2007년 개봉했던 김지훈 감독의 영화 <화려한 휴가>가 관객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그날의 이야기'일 뿐이다.

지난달 완간된 고은 시인의 연작시편 <만인보(萬人譜)>는 이런 5.18 정신에 대한 대중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만인보>는 고은 시인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연루 혐의로 성남 육군교도소에 수감된 다음날(5월 18일) 구상한 것으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시편이 바로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다.

그 시절을 겪은 시인이 바라본 5.18은 아직도 잔혹한 참사다. 작품 속에서 소환된 그때 그 순간은 유가족의 고통을 가감없이 전하는 사실 그대로의 묘사다. 시인은 그날의 광주에 인물을 몰아넣고 그들이 겪는 죽음의 현장에서 함께 피를 토한다.

영화 '화려한 휴가'
반면 상상력을 통해 뱃속의 태아인 상태로 학살당한 아기가 2030년 5월 50세의 최연소 대통령으로 광주를 방문한다는 설정은 광주시민들에 대한 고은 시인의 애정이 발견되는 부분이다. 마무리된 것이 아니라 강제로 '종료'된 그들의 삶을 자신의 시 속에서 연장시켜주고 싶은 바람에서다.

영화 <화려한 휴가> 역시 이런 역사의 재연과 비극을 맞은 광주시민에의 안타까움이 두드러진 작품이었다. 5.18의 비극성이 장르를 넘어 주제와 결말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고통과 상처가 크고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준다.

얼마 전 제작발표회를 치른 뮤지컬 <화려한 휴가>는 이런 5.18 담론에 변화를 가미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감동을 자아냈다. 암울했던 과거시대를 중심으로 사건을 처참하게 묘사했던 영화 버전과 달리 뮤지컬 버전은 두 주인공의 사랑이야기를 통해 희망적인 미래를 부각시켰다. 역사적 사실의 재현보다는 80년 5월을 배경으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린 젊은 남녀의 사랑과 소시민의 염원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영화 버전을 뮤지컬로 각색하기 위해 머리를 싸맨 사람들은 연극 <오아시스세탁소습격사건>과 뮤지컬 <블루 사이공>의 콤비 김정숙 작가와 권호성 연출, 그리고 영화 <인디안 썸머>, <청연>으로 대종상음악상을 받은 미하엘 슈타우다허 경희대 포스터모던음악과 교수. 세 사람이 각색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것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전환점으로서 그동안의 원한을 희망으로 풀어내는 일이었다.

김정숙 작가는 "우리 역사의 치부를 보는 것은 분노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이번 각색을 하면서도 역사를 바로 전하려는 것과 과거의 역사와 현재가 품은 미래의 가능성을 함께 보려는 균형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5.18이라는 소재의 무게감은 자칫 뮤지컬이라는 장르마저 짓누를 수 있다. 김 작가와 함께 권호성 연출의 고민도 비슷한 지점에 있었다. 고민 끝에 두 사람이 내린 결론은 사랑의 이야기로 무거움을 녹여내는 것. 마치 프랑스 혁명을 다룬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두 연인의 사랑이 비극성을 상쇄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과 같다. "5.18 담론은 여기서부터 출발해서 앞으로 점점 더 발전해나가야 합니다."

권 연출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 작품의 성패는 음악에 달려 있다. 하지만 미하엘 슈타우다허는 독일인이다. 한국 사람들만이 공감할 수 있는 사건과 정서를 외국인인 그는 어떻게 풀어냈을까.

하지만 4일 상상마당 라이브홀에서 공개된 음악과 노래들은 서정적이고 희망적인 선율로 5.18 작품 답지 않은 감동을 자아냈다. 이는 김정숙 작가와 권호성 연출이 말하고 있는 바로 그런 심상에 부합하는 느낌이었다.

제작발표회에서 미하엘 슈타우다허는 이와 관련한 비밀을 털어놨다. "1980년 당시 14세 학생이었던 나는 광주에서 일어난 일을 뉴스를 통해 접하고, 당시 국제 사면 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던 누나와 함께 길거리 시위에 참여할 정도로 익히 한국 상황을 알고 있었다."

당시 한국 정부에 인권 보호를 호소하는 편지를 보낼 정도로 그는 한국에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인물이었다. 결과적으로 지나치게 선동적인 음악을 피하고 균형잡힌 감성을 위해 외국인 작곡가를 찾았던 권호성 연출의 선택은 의도 이상으로 적절한 인물을 찾아낸 셈이 됐다.

당시 대학생으로 참사의 현장에 있었다는 김태종 총감독은 "아픈 기억이지만 언제까지 거기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고 말하며 "<레미제라블>이 프랑스 혁명을 감동으로 승화시켰듯이 5.18도 이제 떨쳐낼 것은 떨쳐내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해원(解冤)'이다. 그는 "5월을 겪은 광주시민들에게는 5.18은 아직도 칼날 같은 아픔이다. 그분들에게 우리의 뮤지컬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어 해원의 시작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한국판 <레미제라블>이 되기에 5.18 민주항쟁은 아직은 날선 상처로 남아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오랫동안 1980년 광주의 비극에 머물러 있던 5.18 담론이 이제 새로운 희망의 가능성으로서 해석되고 있는 점은 분명 진일보한 변화라는 점이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