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재조명하는 <오월의 꽃> 전시와 학술회의
세계의 분쟁과 내란은 끊임없이 소설과 영화로 되살려진다. 참상을 재연하고 황폐와 부조리 속 인간을 돌아보며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다시 묻는다. 비극 없이는 교훈을 얻지 못하는 인간의 나태와 어리석음 역시 일깨운다.
5월18일이 다가오면서 광주민주화운동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30주년인 만큼 그날의 교훈을 어떻게 현재와 미래에 살릴 것인가, 가 중요한 화두다. 지난 12일부터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오월의 꽃> 역시 이에 대한 전시다.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 문화체육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 재단법인광주비엔날레, 광주시립미술관이 공동주최하는 이 행사의 초점은 '광주 정신'에 맞추어져 있다. 13개국 25명 작가들이 기념비가 아닌 현재적 작업을 선보였다. 전시 오프닝을 앞둔 지난 11일 전남대 용지관에서는 국내외 문화예술인이 참석한 학술회의가 열렸다.
광주 정신의 뿌리를 찾아서
고은 시인은 <만인보>의 시들을 읊는 것으로 기조 발제를 시작했다. "광주가, 전남대가 이런 곳입니다." 장내가 숙연해졌다.
<만인보>야말로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비극적 승리를 후대에 살리는 대표적 문학이다. 고은 시인이 광주민주화운동 직전 내란음모, 계엄법 위반 죄로 수감된 상황에서 구상한 이 서사시는 얼마전 완간되었다. 그 내용은 한국 현대사를 살아낸 민중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이며, 가장 26권에서 30권에 이르는 마지막 시들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시민들의 사연이다.
그래서 <만인보>는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송가이면서 지난 30년간 살아남은 이들의 삶의 증언이다. 고은 시인은 "일체가 봉쇄된 막다른 상황에서 인간에게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것이 시"라는 말로 <만인보>의 탄생 배경을 설명했다. 특히 마지막 시들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사자들, 관계자들의 자취를 형상화했으며 이 지역의 민주주의에의 열망과 민중성에 뿌리박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9월에 열리는 광주비엔날레는 <만인보>를 주제로 정함으로써 광주민주화운동을 문화적으로 계승하려는 의도를 밝혔다. 이용우 광주비엔날레상임부이사장은 "<만인보>의 함의를 시각적으로 풀어보는 비엔날레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학술회의의 또 하나의 화두는 시장의 힘이 커진 오늘날의 상황이었다. 즉 시장이 예술의 가치를 결정하고 관객과의 관계를 좌우하는 상황에서 역사적 사건의 정치적 의의를 살리는 예술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지가 논의되었다.
리처드 노블 골드스미스칼리지 예술학부 학과장은 이런 현실을 극복하는 예술적 전략으로 '유토피아'의 개념을 제안했다. 그는 "현대 미술에서 유토피아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고 지적하며 관객 개개인에게 내재한 이상사회로의 충동을 이끌어 내는 동시에 관객을 치유하는 유토피아 미술을 소개했다.
아그네스 덴스의 <밀밭-대결Wheatfield-A Confrontatiion>이 대표적인 예다. 그는 문명의 환경 파괴에 대한 저항의 표현으로 뉴욕의 쓰레기 매립지에 밀밭을 가꾸었다.
1980년 광주와 오늘날의 한국사회는 어떻게 같고 다른가
영국에서 활동하는 중국인 작가 차이 유안과 지안 준시, 인도인 작가 밥티스트 코엘료는 광주라는 지역성에 좀더 가까운 작업을 했다. 차이 유안과 지안 준시의 2000년 노동절 영국 런던에서 벌어진 반세계자본주의 시위 중 정치적 권력 구조에 대항하는 뜻으로 주변을 향해 간장과 케첩을 던진 퍼포먼스를 광주에서 재연한 <간장과 케첩 전투-2010 광주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밥티스트 코엘료는 2006년부터 광주의 518번 버스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해 온
한국 작가들의 작업 중에도 광주민주화운동의 뜻을 은유적으로 해석한 것이 많다. 김주연 작가는 도시의 산업 현장에서 일회용으로 쓰이고 버려지는 비닐포대들을 모아 <티셔츠>를 만들었다. 하나의 기능과 형태로 엮인 비닐 조각들은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힘을 합친 사람들 각각을 상징한다.
이불 작가의 2007년작
"나는 지혜는 후회라고 단언한다. 결코 천상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아픔과 어리석음들이 지나가며 만들어지는 삶의 결정(結晶)이 바로 지혜이고 그것의 체계화가 사상이라는 인간의 정신활동으로 될 것이다."
고은 시인의 말처럼 광주 정신은 "누구의 것이 아닌 누구누구의 것이며 누구누구들의 삶과 죽음이 남겨놓은 진리"다. 그러므로 <오월의 꽃>을 비롯한 30주년 광주민주화운동을 재생하려는 모든 문화적 기획들에서 끊임없이 논의되어야 하는 바는 그 중심에 현재의 사람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야말로 '광주'를 성지화함으로써 권력화하려는 어떠한 정치적, 경제적 의도에서도 비판적 거리를 둔 채 일상 속에 민주주의와 이상 사회를 향한 꿈을 살려내는 길이라는 점이다.
<오월의 꽃> 전은 다음달 13일까지 광주시립미술관과 쿤스트할레광주에서 열린다.
<오월의 꽃> 행사의 일환으로 지난 11일 광주 전남대 대강당에서 열린 콘서트 퍼포먼스 <새로운 꽃 새로운 법New Flower New Law>은 제목만큼이나 새로운 기념식이자 살풀이였다. 시작부터 반전이었다.
이 콘서트 퍼포먼스의 모토는 모임(Gathering)-탈바꿈(Transforming)-전파(Sending). 이는 5.18 민주화운동을 비롯한 모든 혁명적 사건들의 기본 서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새로운 꽃 새로운 법>도 작은 혁명으로 기획되었다. 그러나 다툼이나 피가 없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상태에 대한 상상적이고 상징적인 혁명 말이다.
이 혁명을 기획한 이는 실험적 음악가이자 행위예술가인 다. 1970~80년대 언더그라운드 펑크록밴드 이번 콘서트 퍼포먼스 역시 자유와 인권, 평화 등 인류 보편의 과제에 대한 것었다. 관련 내용을 담은 14곡이 선곡되었다. 다국적으로 구성된 그의 밴드 멤버들이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주제를 함축했다. 음악의 뿌리 역시 다문화성이다. 재즈, 삼바 등 라틴 음악이 합쳐졌고 그 자체가 하나의 저항적 운동으로 나타나기도 한 장르인 트로피칼리아에서 영향을 받았다. <새로운 꽃 새로운 법>의 뜻은 꽃이 진 자리에 새로운 꽃이 피듯이 하나의 법이 물러가면 또다른 법이 생긴다는 것. 그리고 이제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사회를 지배한 억압적인 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법을 구상할 때라는 제안이다. |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