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 전강, 물, 달, 끈 네 부분으로 나눠 시간에 대한 다양한 인식 보여줘
바로 덕수궁이다. 태풍의 눈처럼 고요한 이 곳의 역사와 자연은 현대의 달음박질에는 아랑곳 없이 늘 제 모습이다. 이 오래된 정원 안에서 시간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난 8일부터 시작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의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 전이다. 백남준의 작품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에서 제목을 따 왔다. 문명의 이기가 이토록 일상을 점령하지 않았을 언젠가 달은 가장 매혹적인 볼 거리이자, 시공간적 좌표를 알려주는 지침이었을 것이다.
달이 차고 이울고 다시 차오르는 풍경은 우리 역시 저 크고 어김 없는 순환의 고리에 포함되어 있음을 말없이 일러주었을 것이고, 한 인간의 안달복달 따위야 그 안의 한 점에 불과하다고 깨우치고 달래주었을 것이다. 현대의 시간을 등지고 돌아보는 일은 그 오래된 의례를 기억하는 일이다.
이런 뜻을 담은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강', '물', '달', '끈'이라는 네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시간의 메타포다. 강처럼 흐르고, 물처럼 흔들리고 번지며, 달처럼 차고 이울고 차며, 끈처럼 이어지는 시간의 속성을 뜻한다.
'물'에는 한은선 작가의 <물결치다>가 펼쳐져 있다. 이접지에 물을 들여 떼어내고 또 떼어낸 결과다. 세공(細工)이다. 그 과정에 담긴 길고 촘촘한 시간이 짙게 배어 있는 작품이다. 돌아나오는 길에는 이진준 작가의 <불면증>이 상영 중이다.
창에 드리운 블라인드가 들썩이고 그 틈새로 빛이 들어오는 광경을 찍은 비디오 작품이다. 불면증 환자가 가장 신경이 곤두서 있다는 정오 갓 넘은 시각이다. 대상의 움직임과 명암이 민감하게 포착되어 있다. 지켜 보고 있으면 이렇게 또 하루가 오고 간다는 것이 생경하게 느껴진다.
'달'은 이 전시의 심장과도 같다. 전시를 기획한 김남인 큐레이터는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시간의 단위, 시계는 둥근 형태로 상상되었다. 그것은 시간이 모나지 않고 펼쳐지는 것, 끝없이 둥글게 순환하는 것, 그리고 하늘을 닮은 것이라는 사람들의 오랜 관념을 뜻한다"고 설명했다. 강익중 작가의 <365 달 항아리>와 백남준의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가 여기에 자리 잡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시간에 대한 옛 인식과 현대의 인식 사이 긴장감을 내포하고 있다.
강익중 작가의 <365 달 항아리>는 서로 다른 길이의 365개 패널에 달 항아리들을 그려 넣은 작품. 작품 곁을 걸어가며 보면 달 항아리들이 깨어졌다 다시 붙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문명의 편의에 따라 365일로 나누어진 시간이 원래는 구획 없는 것임을 주장하듯이.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는 서로 다른 꼴의 12개의 달 영상을 동시에 상영하는 작품이다. 작품 안에서 시간은 처음과 끝, 앞과 뒤 없이 시간들로써 공존한다.
시간에 대한 다양한 인식은 나아가 삶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을 회복시킨다. 백남준의
<달은 가장 오래된 시계다> 전은 7월4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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