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협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장-고은 시인 대담

지난 11일 열린 <오월의 꽃> 학술회의에서 대담을 나누고 있는 최협 교수와 고은 시인
광주는 정부의 아시아문화중심도시 프로젝트가 추진되는 곳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에 의해 2006년 시작된 이 프로젝트의 내용은 광주민주화운동의 교훈을 바탕으로 광주를 아시아 문화가 교류하는 민주적 거점으로 구상하는 것이다.

공사중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을 중심으로 광주를 7개 지구로 나누어 문화 교류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 큰 그림이다.

하드웨어를 갖추는 것 외에도 콘텐츠 관련 사업도 진행중이다. 오는 19일 한국과 동남아 10개국의 전통 오케스트라가 협력한 공연이 열리고, 중앙아시아 5개국과 신화, 설화, 민담을 공동으로 발굴, 번역하는 사업이 추진된다.

이 거대한 네트워크의 중심에는 '광주 정신'이 있다. <오월의 꽃> 학술회의에서 열린 아시아문화중심도시조성위원장 최협 전남대 인류학과 교수와 고은 시인 간의 대담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었다.

최협 교수(이하 '최'): <만인보>가 완간되었습니다. 고향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해 한국전쟁과 4.19 등 역사를 두루 거쳐 광주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야기로 끝났습니다. 광주로 돌아온 이유가 있습니까?

고은 시인(이하 '고'): <만인보>를 구상한 게 미로 같은 감옥 속 독방이었습니다. 극한이었죠. 쓰지 못한 시에 대한 갈망만이 생존의 이유였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 이웃, 친척… 아는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살아 나간다면 그들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광주에서 사람들이 죽어간다는 소식을 어렴풋이 들었습니다. 살아 남는다면 죽은 사람들을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만이 힘이 되었죠. 그렇게 시작한 <만인보> 완간이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과 맞아 떨어졌으니 이렇게 또 하나의 우연한 사건이 피어났군요.

최: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지 30년이 지났습니다. 그 정신을 어떻게 이어야 할까요, 그리고 한국사회가 어떻게 나아갈지 전망해주신다면요.

고: 광주민주화운동의 속성은 민중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중은 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거의 상투적일 정도로 쓰였지만, 지금은 어디론가 가버렸죠. 그만큼 정치적, 문화적으로 시간이 많이 갔다는 뜻일 겁니다. 그것은 그날의 뜨거움과 정당한 분노도 시대에 맞게 승화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날 신자유주의가 사회를 덮치면 시민운동이 중해지고, 새로운 민중성을 도출하려는 시도들이 있지요. 보편타당한 자유와 평화를 향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최: 1980년 5월 18일에 당신은 어디에서 무엇을 했나, 라는 질문이 전 세대에게는 대단한 부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지난 30년 동안 어떻게 살아 왔느냐, 를 물어야 하는 시점인 것 같습니다. 광주가 민주화의 성지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지만, 그만큼의 모습을 갖추고 있는지를 성찰하는 시선은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다문화가 공존하는지, 민주적인 일상 문화가 형성되어 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광주의 현대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고: 한국사회 전반에 대한 진단이 함께 진행되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한구사회 자체가 급성장에 의한 과도기성을 갖고 있지요. 그것에서 비롯한 냉혹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외국인 노동자를 대할 때요. 그들을 어떻게 대했는가를 돌아볼 때 우리의 식민지 시절을 함께 떠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광주에는 민주주의를 몸 바쳐 얻어낸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한국사회 어는 곳보다도 살펴 나갈 가능성이 큰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정부에서는 광주를 아시아문화교류중심도시로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그 중심에 광주민주화운동의 정신과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아시아와 함께 하는 광주 정신이란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고: 원래 아시아는 없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20세기에는 유럽이 만들어낸 땅 끝 너머 오리엔트가 있었을 뿐이지요. 그리고 그곳은 서구의 비즈니스의 장에 불과했습니다. 21세기 들어서야 서구의 모든 철학과 신화가 고대 인도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이 인식되었습니다. 비로소 아시아라는 개념이 생긴 것이지요.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미국인을 만나는 것보다 인도인을 만나는 것이 낯설고, 프랑스나 이탈리아 음식에는 익숙하면서도 네팔 음식은 못 먹습니다. 아시아가 우리에겐 아직 이질적인 장소인 것이죠. 유구한 아시아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아시아를 창시한다는 생각을 기초로 광주가 공동체적 가치의 중심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