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는 양적 성장… 6월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 질적 수준 척도 될 듯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폐막작 '사파이어'
한 인터넷 뮤지컬동호회의 게시판에 대구행 전세버스 정보가 공지로 올라왔다.

출발 시간은 토요일 오전 10시. 금요일까지 업무와 야근을 마친 직장인들에게는 일어나기 힘든 시간이지만 게시글의 아래에는 '늦지 않게 가겠다', '벌써부터 설렌다' 등의 덧글이 연이어 올라온다.

서울에서 시작되는 인기작의 공연에선 상경한 대구 팬들이 유독 많이 발견된다. 반대로 서울공연을 놓친 관객들이 그 공연을 보기 위해 향하는 곳은 대구다.

지난해 말부터 올 상반기까지 서울공연을 마친 <헤어스프레이>, <모차르트!>, <맨 오브 라만차>, <금발이 너무해> 등 유명작들의 다음 행선지 역시 대구였다. 오는 6월부터는 국내 유일의 뮤지컬 축제인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도 열린다. 대구는 명실공히 '뮤지컬의 도시'라고 할 만하다.

계속해서 덩치 부풀리는 대구 뮤지컬

계명아트센터
뮤지컬 도시 대구의 도약은 양적 성장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제까지 서울의 유명 대형작들을 들여와 관객들의 명작 갈증을 해소해준 것이 그간의 일이었다면, 이제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과 명작 공연들을 균형 있게 제공해 선택의 폭을 넓히고 있다. 가정의 달인 5월에는 <어린이 난타>, <방귀대장 뿡뿡이>, <구름빵> 등 서울에서 이미 검증받은 어린이 뮤지컬들이 대구를 찾아 다양한 연령층에 고루 어필하는 장이 마련된다.

<오페라의 유령>과 <맘마미아>는 하반기 최고의 기대작들이다. 서울에서 한국 뮤지컬사를 다시 쓴 <오페라의 유령>은 다시 10월 말부터 대구에서 두 달 반 동안 100회 가까이 공연되며 대구 뮤지컬의 기록까지 갈아치울 기세다. 두 번의 대구 공연을 성공적으로 치른 바 있는 <맘마미아>는 외지 관객의 비율이 50%에 이를 정도로 뮤지컬 도시 대구의 명성을 재확인한 작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처럼 갈수록 거대해지는 대구 뮤지컬 시장에서 한 해 소화하는 작품 수는 약 80여 편에 이를 정도.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나고 있는 대구 뮤지컬의 뒤에는 서울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기반 시설들이 있다. 서울의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에 올려지는 대형 공연들을 소화할 수 있는 공연장들은 다른 지역에서는 찾기 어렵다.

하지만 를 비롯해 영남대 천마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등 2000 석에 가까운 대극장은 규모와 시설면에서 서울과 비슷한 공연 환경을 갖추고 있다. 대구 뮤지컬 시장이 서울의 제작사들에게도 요주의 관심사가 된 이유다.

배성혁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집행위원장은 "1000석이 넘는 최첨단 극장이 5개나 있고, 수성구의 뮤지컬 전용극장이나 아시아 최대 규모와 제작 환경을 자랑하는 공연 스튜디오 등 무대 메커니즘은 국내 최고라는 평가를 전문가들로부터 받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기자간담회
서울의 시행착오를 하지 않겠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선택지와 좋은 공연시설이 그대로 뮤지컬 인프라의 발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유명 라이선스 공연이 물밀듯 밀려들어왔던 서울은 그 때문에 한동안 창작뮤지컬의 부재라는 난항을 겪었다. 유명 작품들도 동시에 여러 작품이 맞붙을 때는 관객의 분산으로 인한 흥행 부진을 겪었다.

최근 쉴 새 없이 유명작들을 '흡수'하고 있는 대구의 뮤지컬 시장에 우려의 목소리가 잇따르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서울까지 원정 관람을 오던 장르 팬들을 제외하면 일반 대구 관객과 인근 지역 팬들의 성향은 아직 확실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작품이나 스타 캐스팅 작품의 경우에만 관객이 몰리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도 흔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실제로 근래에 공연된 뮤지컬 중 스타가 출연하는 뮤지컬에는 구름관객이 몰렸고 대학로에서 히트한 한 소극장 뮤지컬은 외면당했다.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 사이의 격차를 실감케 하는 부분이다.

이런 점에서 6월 12일부터 열리는 국내 유일의 국제 뮤지컬축제인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은 대구 뮤지컬의 질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구는 이 행사를 올해로 4회째 유치하며 짧은 시간 동안 '뮤지컬 특별시'로 성장해왔다.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현재 세계 뮤지컬을 이끌고 있는 진행형의 작품들은 서울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룬 질적 성장을 압축하는 통로라고 할 수 있다.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 개막작 '앙주'
지난 11일 간담회에서 공개된 올해 9편의 공식 초청작 부문에는 국내에서 좀처럼 접하기 힘든 멕시코(개막작 <앙주>)와 호주(폐막작 <사파이어>) 뮤지컬 작품이 들어 있어 관심을 끈다. 창작지원작 부문 역시 대구 뮤지컬의 유명작 공급과잉을 염려한 페스티벌 측의 고민이 엿보인다.

이번 행사를 통해 첫 선을 보이는 <뮤지컬 풀하우스>와 <번지점프를 하다>는 뮤지컬로 옮겨진 인기 드라마와 영화의 가능성을 검증받게 된다. 이와 함께 나서는 <헨젤과 그레텔>, <표절의 왕>, <사이드미러>, <마돈나, 나의 침실로> 등 창작뮤지컬들은 수상 시 내년 뉴욕뮤지컬페스티벌 공연 기회를 얻게 된다. 국내 뮤지컬의 자생력을 높이기 위한 장이 되는 것.

배성혁 집행위원장은 "공연 시설의 확충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아직 없는 전문 제작진 양성 아카데미나 공연 제작에 도움이 되는 공연 펀드 등 다양한 시스템을 마련해 현재 대구 뮤지컬이 가진 한계를 보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항상 예산 문제로 고심하지만 인맥 네트워크 등 보완책을 궁리해 더 좋은 작품들을 저렴하게 관객과 만나게 하고, 창작 지원에 힘쓸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