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작가축제와 서울국제도서전 참가 작가와의 대화 등 가져

세계 작가축제 사진=임재범 기자
지난 한 주 세계작가들이 한국을 찾았다. 올 봄 가장 큰 도서 행사인 세계작가축제와 서울국제도서전을 맞아 한국을 찾은 것. 지난 10일부터 16일까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며 한국 작가와 교류한 세계 작가들과 한국 독자들의 표정을 스케치했다.

퓰리처상 수상자 주노 디아즈 등 전주 여행

한국문학번역원이 마련한 세계작가축제는 올해로 3회를 맞는 문학행사. '환상 + 공감'을 주제로 해외 작가와 한국 작가 각 12명씩 모두 24명이 참가, 서울 문학의집에서 환영 리셉션과 개회식을 시작으로 5일간의 일정에 들어갔다.

'서울, 젊은 작가들'이라는 이름으로 치러졌던 이전 두 차례 행사와는 달리 모든 연령대의 작가들을 아우를 수 있도록 초청 범위를 넓혔다.

이번 축제에는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주노 디아즈를 비롯해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음식>의 재미 소설가 이민진, 핀란드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레나 크론, <펭귄의 우울>로 국내에 알려진 우크라이나의 안드레이 쿠르코브, <레이캬비크 101>의 아이슬란드 작가 하들그리뮈르 헬가손 등이 참가했다.

서울국제도서전 사진=류효진 기자
시인으로는 한국계인 마야 리 랭그바드(덴마크), 에드윈 썸부(싱가포르), 비벡 나라야난(인도), 이네스 아바시(튀니지), 질 시르(캐나다)가 참가했고, 아동문학가인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폴란드), 기타무라 사토시(일본) 등이 이번 축제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한국 작가로는 소설가 김애란 박형서 배수아 정찬 편혜영, 시인 권혁웅 김민정 김행숙 나희덕 최승호, 아동 문학가 김혜진 김남중 씨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행사에서는 한국 작가와 해외 작가 1명씩 팀을 이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작품 일부를 읽어주는 낭독회를 가졌는데, 이후 독자들이 궁금해하는 작품세계와 구상 과정 등을 말하는 '작가들의 수다'를 진행했다. 수다의 주제는 '내 작품 속의 환상'. 10일과 11일 이틀간 오전 아동문학을 시작으로 오후 소설, 저녁 시 분야로 이어졌다.

행사 둘째 날인 11일에는 성기완 시인이 이끄는 그룹 '3호선 버터플라이'의 공연과 인디 뮤지션 이장혁의 공연도 펼쳐졌다.

3일째 되는 12일 전북 전주시 한옥마을을 찾아 한국의 전통문화를 체험했다. 재미 소설가 이민진, 핀란드의 국민작가로 불리는 레나 크론, 한국의 소설가 김애란 씨 등 24명으로 구성된 방문단은 이날 한옥마을에서 떡메치기와 다도 등을 체험하고 전주 한정식과 막걸리 등을 맛보았다. 13일에 한옥마을의 경기전과 이목대 등을 둘러보고 귀경했고, 14일에는 국제도서전을 찾아 낭독회와 사인회를 가졌다.

세계작가축제 표정 스케치
행사 첫날인 10일, 문학의 집 서울에는 세계작가축제에 참여하는 국내외 문인이 거의 모두 모였다. 개회식에서 김주연 한국문학번역원장은 "국경이 낮아진 오늘, 세계의 문인들은 한국의 문인들과 함께, 그리고 한국의 문인들은 더 넓은 세계를 품고 가슴을 나누는 소통의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김후란 문학의집 이사장의 축사에 이어 한국 작가로는 최승호 시인이, 해외 작가로는 미국 퓰리처상 수상작가 주노 디아스가 각각 참가 소감을 밝혔다.

점심과 저녁 두 차례 식사를 통해 공식 교류 시간을 가진 작가들은 한국 작가와 해외 작가 1명씩 팀을 이뤄 낭독회와 대화 시간을 가졌다. 문학평론가 이광호 씨의 사회로 김애란-하들그리뮈르 헬가손, 박형서- 주노 디아즈, 정찬-레나 크론 작가가 각각 낭독회와 대화시간을 가졌다.

이광호 "행사 제목이 환상 + 공감입니다. 작가 자신의 작품 중에서 어떤 환상적인 측면이 있는지 말씀해 주세요."

김애란 "한국에서는 아시아에서 상상의 말 뿌리는 코끼리에서 왔다고 해요. 예전 중국이나 인도에서 코끼리 뼈를 보고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상상하는데서 상상이란 말이 나왔다고 합니다. 상상력이라는 건 부재나 결핍에서 온다는 것이겠죠. 그것이 텅 빈 부재가 아니라 코끼리를 연결시키자면 뼈있는 부재, 뼈에서 시작해서 바깥으로 확장해가는 식으로 환상을 그리기도 하고, 반대로 코끼리 뼈를 보면서 집중해 보는 방식으로 작품을 씁니다. 첫 단편집 <달려라 아비>는 첫 번째 방식, 도시 공간을 많이 그린 두 번째 책은 두 번째 방법을 많이 썼습니다. 환상은 사는 게 얼마나 황홀한가와 또한 견딜 수 없는가를 보여주면서, 저에게 이야기를 쓰는 힘을 줍니다."

주노 디아즈 "제 이야기는 가족 경험에서 시작합니다. 저녁시간에 적어도 3세대 이상이 모이게 되는데, 어머니는 제국주의를 겪었고, 경험과 실증주의적으로 인생을 살아온 분입니다. 할머니는 꿈과 마법이 있다고 믿는 분이세요. 이들 세대를 보면서 저는 세계를 알게 됩니다. 제 소설은 할머니의 세계와 어머니의 세계, 서로 다른 세계가 존중하는 것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레나 크론 "제 작품은 판타지 문학으로 분류되거나 SF로 분류되지만, 공감하지 않습니다. 판타지는 뿌리를 깊이 현실에 속에 두어야만 합니다."

정찬 "저는 환상이 실제의 세계와 꿈의 세계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결핍 때문에 어떤 것을 그리워하는 것, 그런 그리움이 닿을 수 있는 것이 소설 쓰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작가들의 낭독회와 대화는 인터넷 서점을 통해 신청한 독자들만 참여할 수 있어 비교적 조용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첫날 만난 서먹한 표정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광호 "문학이 독자 공감을 이끄는 방식이 바뀌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영상매체의 영향 때문에 문자 문학의 역할이 제한되고, 문학도 전자책 등 다양한 매체로 소통되죠. 이에 대한 작가들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하들그리뮈르 헬가손 "작가를 하기 전, 저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화가였습니다. 미술과 문학의 차이를 말하자면 작가가 좀 더 창의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화가는 한 가지 아이디어로 3주를 작업합니다. 작가는 매 문장이 새 아이디어죠. 매체환경을 말하자면, 요즘 독자의 책 읽는 능력은 과거에 비해 퇴보했습니다. 영화처럼 보이는 소설을 쓸 수 없을까? 고민했고, 각 장을 짧게 만들고 대사를 많이 넣는 등 '시네로망'이란 영화 문학을 썼습니다. 독자들이 그 전보다 읽기 편했다고 하더군요. 한편으로 리스크도 있어요. 너무 텍스트가 단순해지는 겁니다. 새로운 시대에 반응해 다른 글쓰기 접목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주노 디아즈 "자본에 있어서 독서하는 사회는 반가운 상황이 아닙니다. 시장지향적인 행동이 아니니까요. 독서율이 떨어지지만,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아티스트로서보다 그 문학 형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할 행동은 제가 독자의 취향에 맞는 책을 쓰는 것보다 독자가 좋아할 책을 찾아주는 것이겠죠. 독서는 한 자리에 앉아 4~5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는 형태죠. 어느 시대가 이런 걸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나 독서를 보존하는 건 인류의 리듬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굉장히 인간적인 형태라고 생각하거든요. 때문에 독서는 행위만으로 가치가 있습니다."

이후 저녁 시간, 참여 작가 20여 명이 한데 모여 식사와 담소를 나눴고, 독자 행사로 치러진 시인들의 낭독회와 대담으로 이날 행사의 막을 내렸다.

베르베르, 마르크 레비 등 방한

12일부터 16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0 서울국제도서전'에는 21개국 596개 출판사 및 서점, 출판 관련단체, 저작권 에이전시 등이 참가했다. '책과 통하는 미래, 미래와 통하는 책'이라는 슬로건 아래 열리는 이번 도서전의 주빈국은 프랑스. 때문에 국내 작가와 프랑스 작가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가 대거 마련됐다.

먼저 베르나르 베르베르(<개미> <뇌> 등), 마르크 레비(<행복한 프랑스 책방> <저스트 라이크 헤븐>), 마르탱 파주(<빨간 머리 피오> <초콜릿 케이크와의 대화>), 소피 오두인 마미코니안(<타라 덩컨> 시리즈) 등 프랑스 작가들이 작가와의 대화, 대담, 사인회 등을 열었다.

공지영, 권비영, 김진명, 김홍신, 박민규, 성석제, 은희경, 한수산, 천명관 등 만나고 싶은 작가를 묻는 설문조사에서 높은 인기를 끈 한국 작가들도 독자들과 만나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었다. 작가들은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하고 독자들의 질문을 받았다.

이현우(인터넷 서평꾼, 서울대 노어노문학 강사), 고미숙(고전평론가), 강신주(철학자) 씨 등 지식인들도 각각 14, 15, 16일에 독자들이 인문학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는 강연을 선보였다.

'책과 함께 보는 한국 근현대 100년' '대한출판문화협회 선정 도서 특별전' '세계우수그림책 전시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아시아 북아티스트 특별전' '국제 소형 북아트전' '호랑이와 환경' 등 다양한 특별전도 준비됐다. 디지털 특별관에서는 최근 들어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전자책 콘텐츠를 감상하고 다양한 전자책 단말기들을 사용해 볼 수 있다. 한국 출판계의 관심사를 공유하고 세계 출판계의 동향을 엿볼 수 있는 각종 세미나와 토론회도 열렸다.

2년 전만 해도 서울국제도서전은 '공짜'로 구경할 수 있었지만, 지난해부터 대학생·일반인 3000원, 학생 1000원 씩 입장료를 받고 있다. 홈페이지(www.sibf.or.kr)를 통해 사전등록할 경우 무료로 입장할 수 있었다.

서울국제도서전 표정 스케치
국제도서전 행사장을 들어오면 주빈국 프랑스 관이 눈에 띄었다. 국내 선보이지 않은 프랑스 문학작품과 예술서적, 과학전문 서적 등이 전시되고 에이전트 사들의 미팅이 실시간 진행됐고, 입장객들도 자유롭게 프랑스 서적과 디자인을 구경했다.

일반인들이 관심을 두는 것은 국내 출판사들의 부스. 베스트셀러 책을 10~20%할인해 판매하고 있었고, 반품이나 흠집이 있는 새 책을 50%까지 할인해 판매하는 각종 할인 코너 때문에 출판사 부스는 평일에도 사람들로 가득했다.

첫째 날인 12일 베르베르의 대담을 시작으로 프랑스 작가 마르크 레비와 소설가 김숨의 대담이 진행됐다. 문학평론가 장석주 씨의 진행으로 1시간 가량 진행된 대담에서 두 소설가는 한국과 프랑스 문단 현실과 달라진 출판계 현황, 작품 창작 방법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장석주"오늘날 소설의 입지가 적어지고 있어요. 활자문화 쇠퇴와 함께 영상문화가 인기를 모으고 있고, 소설 책이 과거에 비해서 팔리지 않습니다. 문화산업에서 소설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데 작가로서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습니까?"

김숨 "영화나 타 장르가 점점 많아지고 책을 읽는 독자들이 줄어드는 상황이 꽤 오래전부터 진행돼왔는데, 위기감을 느끼기는 하지만 어쨌든 제가 좋은 작품을 쓰면 누군가 읽을 것이고 나중에 읽어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르탱 파주 "어떻게 보면 부정적인데, 저는 아주 흥미로운 소설도 아주 팔리진 않죠. 피츠제럴드 경우 자신의 책을 사기 전에 서점에서 자기 책이 절판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때는 소설이 황금기라는 시대인데요. 소설 독자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소설과 영화, 만화는 경쟁관계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는 이가 영화를 보고 만화를 보죠. 저도 그렇고요. 이런 의미에서 저희가 지속적으로 글을 써야하고 책의 위기를 조금 비껴두고 소설의 황금기가 존재했다,는 환상도 피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빈국인 '프랑스 관' 옆에서 진행된 행사는 주빈국 부스를 찾은 일반 관객과 대담 관람을 미리 예약한 신청자, 언론과 출판사 관계자들로 만원을 이루었다. 대담자로 참석한 마르크 레비는 한국의 문학작품과 문인들에게 깊은 관심을 표하며 여러 질문을 던져 예정된 시간을 넘겨 대담이 끝났다.

마르크 레비 "최근 프랑스 문화부 장관이 콩쿠르상을 수상한 은디아예를 공개 비판해 '표현의 자유'에 프랑스 문화계에서 논란이 일었습니다. 은디아예는 소설에서 프랑스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판했는데, 이 비판이 너무 노골적이라는 것이죠. 이에 프랑스 작가들은 '표현의 자유' 침해라며 르몽드에 기고문을 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나요?"

김숨 "80년대 어두운 사회 현실을 고발하는 리얼리즘 문학이 한국문학의 주류를 이룬 적이 있고, 여전히 이런 전통이 강한 나라입니다. 작가는 예술가인 동시에 지식인이라고 생각하고, 작가의 한 사람으로 저는 프랑스 소설가들의 행동을 지지합니다"

장석주 "김숨 작가의 말에 해설을 보태자면, 한국은 문인의 사회참여가 가장 강하고, 이런 기류가 문학적 전통으로 가장 강하게 남아 있는 나라 중 하나입니다. 과거 70~80년대에 민주화 운동으로 투옥을 경험한 작가도 여럿 되고요."

한편 도서전 첫 날인 12일은 '전문가'의 날로 출판업계 변화에 대한 각종 세미나가 집중적으로 열렸다. 한국출판물의 해외진출전략과 출판 유통 세미나 등 오전부터 진행된 세미나에는 출판, 디자인 관계자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고, 일부는 자리를 찾지 못해 뒤에 서서 3~4시간에 걸친 세미나를 지켜보기도 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