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과 어울리는 음악 또 하나의 대사로 감동적 순간 선사

영화 '밤과 낮'
누구에게나 영화와 클래식 음악이 어우러지는 감동적인 순간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다.

영화 속 클래식 음악에 대한 기억은 극단적이다. 음악이 흘렀는지도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무심하게 흘러가거나 아니면 음악이 흐르는 순간이 극대화되어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결정한다.

교도소 방송실에 몰래 침입한 한 남자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의 음반을 틀고 있다. 음반에서 아리아 '저녁 바람은 아름답게'가 마이크를 통해 운동장까지 퍼져나간다.

그곳에서 몸을 움직이던 남자들이 전기에 감전된 듯 자리를 뜨지 못하고 멈춰 서 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마들렌처럼, 이 아리아를 들을 때면 영화 <쇼생크 탈출>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에 등장하는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의 뱃노래, 영화 <안토니아스 라인>에서 흐르던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도 기억에서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영화와 음악이 이처럼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는 예는 너무나 많다.

영화 '하녀'
영화와 음악의 호흡이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영화의 공통점은 적절한 순간에 음악이 분위기를 대신하고 있다는 점일 거다. 영화 <러브 어페어>에서 피아노 반주에 맞춘 아네트 베닝의 허밍은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워렌 비티의 눈빛과 어울리며 사랑의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

또 영화 <시네마 천국>의 마지막 장면에 흐르던 러브 테마는 토토와 영화에 대한 알프레도 아저씨의 깊은 사랑을 대신한다. 대사보다는 분명치 않지만 음악은 분명, 인물들의 감정선이자 또 하나의 대사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점에서 클래식 음악의 영화 속 등장은 한편의 영화만을 위해 창작된 음악과는 달리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작용한다. 영화에 앞서 존재하던 음악은 감독의 의도에 따라 다양하게 변용된다. 가령, 베토벤 교향곡 7번의 2악장은 영화의 장르를 넘어 사용됐다.

베토벤의 다른 교향곡 3번 '영웅', 5번 '운명', 6번 '전원', 9번 '합창'만큼 유명하지 않아, 일명 '숨겨진 교향곡'이라 일컬어지는 7번은 오히려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유명해졌다.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의 등장은 클래식 음악 드라마라는 점에서 수긍할 만하지만 의외의 영화들에서 각기 다른 감정선을 드러내며 음악이 흐른다. 모니카 벨루치 주연의 <돌이킬 수 없는>의 평화로운 마지막 장면에 흐르던 음악은, 재난영화 <노잉>과 판타지 영화 <더 폴>에도 쓰였다. 사실적 대화가 난무하는 홍상수 감독의 <밤과 낮>에서도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일상에서도 이 음악이 빈번하게 흐른다.

영화 '셔터 아일랜드'
관객들이 음악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귀에 익숙한, 유명한 곡이거나 음악과 영화의 분위기에 적절하게 어울리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종종 클래식 음악은 스크린과 관객과의 '거리 두기'의 한 방식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일부러 관객들의 주의를 산만하고 난해하게 만들어 영화 속 주인공의 심리상태나 상황에 대한 접근을 막는 것이다. 아무래도 클래식이란 장르 자체가 대중과 친숙하지 않다 보니, 음악이 흐르는 순간 귀를 닫아버리는 경우다. 어찌 보면, 전혀 기억나지 않는 영화 속 클래식 음악이 이런 기능을 하고 있거나, 화면을 기품있게 완성하거나, 영화와 음악의 호흡이 실패한 경우다.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오페라 아리아의 역할은 사뭇 다르다. 그 안에 내러티브가 있기 때문이다. 가령, 영화 <귀여운 여인> 속에 나온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매춘부 비비안의 심경을 대신하고 있다. 남자의 이기심으로 여자가 희생당하는 <라 트라비아타>의 줄거리는 비비안이 만난 사업가 에드워드와의 관계에서 자신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영화 속에 녹아있다.

최근 개봉작 <하녀> 속에는 조르다노의 오페라 <안드레아 셰니에> 중 ''어머니는 돌아가시고(라 맘마 모르타)'가 흐른다. 의외로 하녀 은이의 등장 씬에서가 아니라, 주인남자인 훈이가 감상하는 음악으로 사용된다. '어머니의 죽음'을 노래하는 아리아는 은이의 운명을 암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임상수 감독의 성향으로 볼 때, 다른 해석도 가능하다.

돈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 사람이 이 음악을 들었다는 데 주목하는 것. 죽음이나 희생과 같은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겐 슬픔까지도 하나의 '유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일종의 '트집'이다.

영화 <셔터 아일랜드>는 현대음악으로 가득 차 있지만 선곡이 잘 된 영화로 회자되고 있다. 영화 초반부터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등장하는 폴란드 출신의 현대음악 작곡가 K. 펜데레츠키의 '심포니 3번' 중 4악장이다.

묵직한 현악기와 관악기 소리는 앞으로 전개될 미스터리 극의 분위기를 극대화시킨다. 불길하고 스산한 분위기를 더하는 존 케이지의 '마셀 뒤상을 위한 음악'이나 효과음과 같은 백남준의 '존 케이지에게 바치는 경의'도 영화를 한층 음산하게 만들어주는 장치로 사용된다.

하지만 무엇보다 관객들은 OST 앨범만 100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셔터 아일랜드>에서 말러의 피아노 4중주곡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그동안 말러의 작품 중 각광받지 못했던 곡이지만 이번 영화를 통해 인상적인 영화음악으로 기록될 듯하다.

도움말 : 영화평론가 한창호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