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토론토, 뉴욕의 다문화로부터<세 도시 이야기, 세계 주요도시의 문화생태계 엿보기> 세미나 열어

서울에서 열리는 다문화 축제 '지구촌 한마당'
바야흐로 다문화의 시대, 도시의 시대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에도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어울려 산 지 오래다. 지난 5월 27일에는 정치적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다문화 유권자 연대가 발족했을 정도다.

다문화적 환경은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고 다양한 문화적 현상이 나타날 수 있는 원천이다. '문화 도시'를 지향하는 세계 도시들이 이를 자산으로 주목한다. 서울 역시 최근 다문화 축제를 개최하고 다문화 거리를 지정, 육성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강한 민족주의는 다문화가 뿌리 내리기에 어려운 토양이다. 정부 주도의 다문화 정책도 전시성에 그치는 것들이 많다. 일상 속에 다름을 존중하는 풍토가 자리 잡지 않고는 진정한 다문화 도시가 될 수 없다.

세계의 도시들은 어떤 정책을 통해 성숙한 다문화 도시로 거듭나고 있을까. 파리와 토론토, 뉴욕의 사례를 살펴보는 세미나가 열렸다. 5월 25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서울문화포럼의 <세 도시 이야기, 세계 주요도시의 문화생태계 엿보기> 다.

파리, 이주자 동화를 넘어 인정으로

프랑스 대표 축구팀
"은 프랑스 다문화 정책의 상징과도 같습니다."

한승준 서울여자대학교 행정학과 교수의 말처럼 은 다양한 민족,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장 유명한 선수 중 한 명인 지네딘 지단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이민 2세다.

프랑스는 1,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를 빠르게 회복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 인력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오랜 이민의 역사를 갖고 있다. 하지만 1970년대 오일쇼크가 일어나자 이주민들에게 본국 귀국을 권유하는 등 폐쇄적인 방향으로 돌아섰다. 이후 불법 이주자가 늘어나면서 사회 갈등을 해결하는 정책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중에서 프랑스 다문화 정책의 핵심은 교육 정책이다. 프랑스는 이주자들을 동화시키기 위해 프랑스어와 문화 교육에 주력해 왔다. 특히 이주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 빈곤율과 범죄율이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우선교육지역을 지정해 학생뿐 아니라 학부모 등 지역 주민 모두를 대상으로 다양한 문화,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의무 교과 과정에는 다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시민교육이라는 교과목이 개설되어 있다. 교사들의 다문화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교사 교육도 하고 있다.

한승준 교수는 2007년 개관한 파리시 국립이민역사관의 상징적 역할을 높게 평가했다. 프랑스 이민의 역사가 전시되고 다문화, 소통, 더불어 살기 등을 주제로 한 컨퍼런스와 공연, 영화 상영 등의 행사가 수시로 열리는 이곳은 프랑스 사회가 다양한 구성원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장소라는 것이다. 한 교수는 서울역사박물관 역시 한국에 이주한 외국인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포함하자고 제안했다.

토론토 카리바나 축제
세계를 매혹하는 토론토의 다문화 축제

2004년 국제연합개발계획(UNDP)의 조사 발표에 따르면 캐나다 토론토는 외국 태생 인구 비율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도시다. 민족적 구성은 1위를 차지한 미국 마이애미보다 더 다양하다. 토론토는 이런 배경을 반영하듯 일 년 내내 다양한 민족 집단이 주인공인 축제가 열리며 이를 성공적으로 관광 자원화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중 가장 성대한 축제는 1969년부터 시작된 카라반 축제다. 매년 6, 7월에 토론토 전역의 교회와 지역센터에 다양한 민족 문화를 담은 30여 개의 전시관이 오픈한다. 바자회와 시식행사 등이 열리고 전통 의상을 입은 사람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이 축제는 매년 2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카리바나 축제는 캐리비안계 이주민들이 캐나다 건국 100주년을 기념해 기획한 것으로 1967년부터 시작되었다. 자메이카와 가이아나, 바하마, 브라질의 의상을 입은 참가자들이 카니발을 재현하며 벌이는 거리 퍼레이드가 장관이다.

이밖에도 다양한 전통 음식과 춤 등을 테마로 한 축제가 있다. 그리스 음식을 맛볼 수 있는 댄포스 음식 축제, 이탈리아 음식의 향연이 펼쳐지는 이탈리아 음식 축제, 토론토 거리 곳곳을 무대로 삼는 탱고 축제와 살사 축제 등이 그것이다.

작년 뉴욕 9대 관광명소 중 하나였던 코리아타운
뉴욕, 밑에서부터 다문화적 토대를 쌓다

홍기원 숙명여자대학교 정책산업대학원 문화행정 주임교수는 뉴욕의 사례를 발표하면서 도시의 다문화 정책이 빠지기 쉬운 함정을 지적했다. 교육, 문화, 사회복지와 같은 공공서비스 제공에 관심을 갖는 국가의 다문화 정책과 달리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다문화 정책은 주민들의 호응이나 민원에 영향을 받기 쉽다는 것이다. 즉 보여주기 식 사업에 치중하거나 경제적 논리를 문화적 논리에 앞세울 위험이 크다.

홍기원 교수는 따라서 지역 공동체와의 연계를 고려하는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범 사례로 제시한 것은 시민과 전문가가 주축이 되어 진행하는 '도시전승학' 프로그램이다. 지역의 독립예술가, 인류학과 민속학 연구자, 예술과 도시 관련 인력들이 이끄는 이 프로그램은 지역의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을 찾고 기록하는 작업에 충실하며 관광 수입을 고려해 운영되지 않는다.

하지만 한편 뉴욕은 다문화적 특성을 도시 마케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도시이기도 하다. 작년에는 '뉴욕시 9대 관광명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 행사의 특징은 관광명소에 포함된 다문화 지역 이주자 사회의 경제적 활성화를 돕는다는 것. 뉴욕은 주도적으로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지역을 위해 통합 마케팅 서비스를 제공했다.

이처럼 도시 이미지만을 홍보하는 것이 아닌, 건강하고 튼튼한 다문화적 토양을 배양하는 정책은 이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역할하도록 돕는다. 그리고 차이를 차별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만든다. 다른 문화와 타인을 존중하는 시민 의식과 인권 감수성을 높이는 것이다.

라틴 및 푸에르토리칸 이주자들이 모여 사는 뉴욕의 엘 바리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