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마임축제공연성과 축제성에 신화성 더해 새로움에 대한 갈증 해소

춘천마임축제의 시장 거리공연
전쟁이 날까 말까 하는 판국에 웬 축제냐, 하는 것은 기우였다. 오히려 침체된 분위기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고 난장을 벌이는 공연자들과, 그것을 당연한 듯 즐기는 시민들의 앙상블은 인상적이기조차 했다.

지난해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장소를 옮긴 춘천국제마임축제는 여전히 시민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만 축제가 시내로 들어오면서 마음껏 뛰어놀지 못하고 다소 위축된 느낌은 있었다.

그래서 춘천마임축제는 이제 제2의 도약을 생각하고 있다. 더 나은 축제를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고군분투하고 있는 춘천마임축제의 이모저모를 들여다봤다.

섬에서 도심으로 온 축제, 어떻게 변했나

20년 가까이 난장을 벌이던 고슴도치섬에는 이제 도깨비가 없다. 그들은 대신 도심에 나타났다. 번화가 한복판에서 요란한 난장을 벌이며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가 하면, 시장 상인들 사이에서 떡을 돌리며 익살을 부리기도 한다.

'수요일 플랫폼' 컨퍼런스
가면을 쓴 공연자들이 한바탕 독특한 몸짓을 보여주고 물러가면, 이번에는 남녀로 구성된 공연팀이 등장한다. 진열을 갖추고 우산을 펼친 이들이 앞에 놓은 것은 다름아닌 '투표함'. 해마다 선거 시기와 맞물려 관심의 분산을 염려했던 축제로서는 공존과 상생을 위한 이상적인 대안처럼 보인다.

'꼭 투표하세요'라며 선거 참여를 독려하는 캠페인성 공연은 축제가 단순히 먹고 노는 행사만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 축제 관계자는 "축제는 사회현상과 함께하는 데서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몇 년 전부터 춘천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담아낸 공연들을 준비하고 있고, 특히 선거와 매번 겹치다보니 아예 선거관리위원회와 상의해서 캠페인성 마임 공연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초기의 마임축제에서 현대공연예술축제로 확장해온 춘천마임축제의 두 축은 공연과 축제다. 축제 초반의 초점이 공연에 맞춰졌다면 지난해부터는 축제로서의 성격이 강화되고 있다. 공연 부분에서는 '몸, 움직임, 이미지'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마임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모든 인접예술을 포함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새로운 예술가 개발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축제 부분에서는 올해부터 난장의 진화가 눈에 띈다. 아!水라장, 미친 금요일, 도깨비난장, 아!우다마리 등 4대 난장으로 특화된 행사들은 축제 기간 흥미를 지속시킬 수 있는 행사로 거듭났다. 특히 '아!水라장'과 '아!우다마리' 등에 신화성을 부여한 것은 축제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간에서 만나 새로운 것을 만들자

바바라 무라타의 '카바레 쇼'
하지만 행사 초반과 후반으로 갈린 이벤트 사이에서 시민들의 관심은 사그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춘천마임축제가 올해 처음으로 선보인 '수요일 플랫폼(Wednesday Platform)'이다. 이는 월, 화요일 프로그램과 목, 금요일 프로그램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하는 기획프로그램으로, 국내외 공연자와 축제 및 공연관계자, 스태프, 자원활동가, 관객 등 축제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함께 교류하는 시공간의 플랫폼이다.

수요일 플랫폼이 열리는 옥천동 마임의 집과 봄내극장에서는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마임 공연들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 어린이들이 좋아할 만한 '참 쉬운' 공연이 있는가 하면, 어렵지만 무게감 있는 작품, 길어도 재미있는 작품 등 다양한 재미로 마임의 매력을 만끽하게 한다.

특히 이번 수요일 플랫폼에서는 춘천마임축제가 공연예술의 배급처만이 아닌, 새로운 창조의 장이 되기 위한 기능을 고민하는 컨퍼런스도 마련해 눈길을 끌었다. <창작 레지던시의 방향과 네트워크 활성화>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날 모임은 갈수록 다원화하고 있는 현대 공연예술에서 예술가 간 교류와 예술가와 아트센터 간 교류 등 더욱 절실해진 레지던시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강영규 춘천마임축제 기획실장은 축제 예술개발프로젝트인 '무빙 스페이스 프로젝트'를 설명하며, '향교'라는 춘천의 지역적 특색을 중심으로 한 레지던시의 성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금 지원에 따른 성과 발표라는 현재의 레지던시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요청했다.

정순민 전 아르코지원컨설팅센터 기획실장은 "국내 공연계가 레지던시를 너무 일정한 틀에 묶어 해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고 문제를 제기하며 레지던시에 대한 정형적인 시선을 경계했다. 백기영 경기창작센터 학예팀장 역시 이에 동의하며 "레지던시는 지속적이어도 되지만 그렇지 않아도 상관 없다"며 보다 유연한 사고를 요구했다. 원영오 극단 노뜰 대표도 그간의 실례를 밝히며 "레지던시 자체가 목적이 되기보다는 예술가들의 '창작의 1단계' 정도로 간주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송담대의 선거 캠페인 공연
새로운 공연 창작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는 수요일 플랫폼의 이런 모습들은 춘천마임축제가 타 지역축제에 비해 더 낮은 수익과 더 적은 참여자 수에도 불구하고 국내 최우수 축제 자리를 4년째 수성하는 이유를 말해준다. 공연성과 축제성, 두 개의 날개로 비상해온 춘천마임축제는 신화성을 더해 새로움에 대한 목마름을 채웠다. 다음 축제가 채울 빈 곳은 어디일까. 춘천마임축제 관계자들은 벌써부터 고민 중이다.


개막난장 아! 水라장

춘천=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