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 비튼 <세기의 아름다움> 전오드리 헵번, 마릴린 먼로 등 세기의 미녀 6인의 초상 사진

"세실 비튼은 언젠가 에 대해 코가 너무 길고, 턱은 너무 뾰족하며, 목은 너무 가늘다고 묘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를 찍을 때는 그런 단점들을 최소화 시키면서 포즈를 연출했죠. 그는 보여지는 아름다움이 아닌, 자신이 보고 싶어하는 이상적인 이미지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철저하게 탐미주의적이었다고나 할까요." – 세실 비튼의 전기 작가 휴고 비커스의 인터뷰 중

초상 사진의 역사는 사진의 탄생과 거의 그 시기를 같이 한다. 1893년 프랑스에서 사진이 '발명'된 이래 파리에는 수천 개의 초상 사진관이 생겨났고 사람들은 그 신기한 도구 앞에 앉아 기념 사진과 증명 사진들을 찍어댔다.

그러나 당시 사진에는 놀랍게도 탐미적 성격이 현저하게 낮았다. 이는 프랑스 예술의 대표 주자인 회화가 사진의 역할 범위를 '기록'에 한정시켰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학적 초상 사진의 발원지는 프랑스가 아닌 옆 나라 영국이 되었다.

세실 비튼이 태어난 20세기 초의 영국은 사진이 회화, 오페라, 연극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인물 사진과 패션 사진이라는 두 개의 가지를 탐욕스럽게 피워내고 있을 때였다. 세실 비튼은 그 중에서도 회화사, 복식사, 장식사 등 영국의 패션 아카데미 과정을 정석으로 섭렵한 정통 패션 사진가로 분류된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세실 비튼은 사진과 회화, 연극 등 여러 예술 분야에서 일찌감치 가능성을 보였다. 1928년, 아직 20대였던 그는 뉴욕으로 이주해 미국 <보그>와 <베니티 페어>에 실릴 패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오드리 헵번
패션 사진의 시대가 이제 막 부흥하기 시작했던 그때 비튼의 독자적 작품 세계는 그를 패션계의 중심 인물로 올려 놓았다. 1930년대에 들어서는 당대의 유명한 헐리우드 스타인 , 등의 사진 작업과 더불어 영국 왕실의 초상 사진가로 이름을 알렸다.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여전히 유명인들의 사진을 찍는 한편으로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 속 의 의상을 디자인해 오스카 상을 2번이나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예술의 전당 V갤러리에서 전시 중인 <세기의 아름다움> 전은 세실 비튼이 생전에 찍었던 6인의 미녀들에 관한 것이다. 외부 반출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 런던 소더비의 세실 비튼 알카이브가 후원해 성사된 이번 전시에서는 세실 비튼의 주옥 같은 미공개 빈티지 사진 90여 점이 국내 최초로 공개된다.

, , , , , 비비안 리 등 그야말로 한 세기가 사랑했던 미녀들에게 그가 들이댄 천재적인 앵글을 확인할 수 있다. 비튼의 전기 작가인 휴고 비커스는 전시 기획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세실 비튼과 대화를 나눈다면 그가 얼핏 상대방의 말을 듣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종일관 상대방이 어떤 포즈로 앉아 있는지, 손가락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심지어 말할 때 움직이는 입 근육과 코의 벌름거림 까지도 기억해 둔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일단 인물을 한 번 보면 눈과 머리로 그 이미지를 포착하는 데 거의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다."

마를렌 디트리히
6인 중 의 사진은 그녀와의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 된 단 하루 만에 탄생한 작품들이다. 사전에 약속이나 계획도 없이 호텔로 들어가는 를 뒤따라가 즉흥적으로 찍은 그 사진 속에서 먼로는 뭔가 의도를 잔뜩 품은 듯한 평소의 몽환적 이미지 대신 말갛게 씻어낸 얼굴에 청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세계적인 섹스 심볼에게서 그가 본 것은 배우가 되기 전 노마 진 베이커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움을 열렬히 추종한 나머지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사랑했던 그가 그 중에서도 가장 매혹된 것은 의 냉랭한 우아함이었다. 연인 사이로 알려졌던 그들의 관계는 사실 비튼의 일방적인 흠모였다.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가르보의 사진은 그녀가 여권에 쓰기 위해 세실 비튼에게 부탁해 찍은 것이다.

물론 지금처럼 귀를 드러내고 정면을 보고 찍은 사진이 아니라 당장 화보로 쓰여도 손색이 없을 작품 사진들이다. 그 안에서 예의 그 고집스럽고 강인한 턱선을 드러낸 가르보는 연신 차가운 눈빛을 고수해 찍는 이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그는 거기에 굴하기는커녕 그녀의 눈을 디자인 패턴으로 만들어 두고두고 활용했다.

그가 추구하는 탐미주의의 정점은 <마이 페어 레이디> 속 의상을 입은 에게서 잘 드러난다. 영국의 패션과 무대 양식에서 많이 쓰인 로코코 양식은 세실 비튼의 스타일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초콜릿 상자를 포장하는 거대한 리본'으로도 비유된 의 과장된 의상에서는 극단적인 여성성과 장식성, 여유롭고 행복하고 쾌적한 로코코 문화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7월24일까지.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은 휴관.

내용 참고: '세실 비튼, 패션의 시대 정신과 표상으로부터' – 사진평론가 진동선 글

그레타 가르보

마릴린 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황수현 기자 sooh@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