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원한 챔피언> 등 풍자극, 우리 정치의 과거와 현재를 비춰

연극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
엎치락뒤치락, 두 후보 간의 경합이 치열하다. 개표 전 일방적일 거라는 여론조사와는 달리 두 후보 간의 경쟁은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며 유권자들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유권자들은 불안한 개표 상황을 지켜보느라 뜬 눈으로 밤을 지샌다. 부정선거의 정황 포착과 후보 단일화, 검찰 재조사 등의 이슈들은 사람들을 끝내 잠 못 이루게 한다.

뉴스의 정치면은 어떤 면에서 연예면과 닮았다. 인간의 욕망과 허영과 몰락이 선정적인 방식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그래서 정경유착과 성상납, 권력에 종속된 공공집단 등 '정치'라는 키워드는 풍자극에서 즐겨쓰일 수밖에 없는 소재다.

권력을 향한 인간들의 욕망과 그 끝

이번 지방선거를 전후로 공연된 '정치풍자극'들은 우리 정치의 과거와 현재에 대한 거울이다. 그 중 미국의 지방 소도시 시장 선거를 소재로 한 연극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작 제이슨 밀러, 연출 이영석)은 '검은 정치'를 둘러싼 선거의 이면을 절묘하게 풍자하고 있다.

연극 '리회장 시해사건'
미국의 어느 지방 소도시의 한 집에 모인 다섯 명의 중년 남자. 고등학생 시절 농구 챔피언이었던 이들은 코치의 집에 모여 또 한 번의 승리를 위해 맹목적인 동지가 된다. 그 승리란 현 시장인 동창생의 재선. 승리를 위해 학교 교장, 사업가 등 친구들은 코치의 주도하에 냉혹한 선거 전략을 짜기 시작한다.

<우리는 영원한 챔피언>에서 인상적인 것은 '농구'라는 매개다. 정치적 승리를 위한 냉철한 전략 짜기가 주 내용이라면 별 문제는 없겠지만, 이들에겐 승리에 대한 치명적인 트라우마가 있다. 고등학생 시절 따낸 우승컵이 사실은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거머쥐었던 것이기 때문.

이런 점을 표현하듯 한켠에 틀어놓은 턴테이블에서는 당시 경기 중계방송이 흘러나오고, 이들이 따낸 트로피는 점멸을 반복한다. 알코올 중독자 친구가 무대 위를 쓰러질 듯 배회하면서 던지는 냉소적인 대사들은 다른 친구들의 그런 부정한 '게임'을 비판하는 것이다.

'상대를 과소평가하지 말라', '승리엔 증오가 필요하다'와 같은 코치의 작전 지시는 그대로 농구와 선거 모두에 통용될 수 있다. 하지만 농구경기와 달리 이해관계가 불분명해진 동창생들은 이내 서로를 향해 이전투구를 시작한다. 사리사욕을 둘러싼 동상이몽은 국가와 시대를 초월하는 정치의 한 속성을 드러낸다. 결국 제목의 '영원한 챔피언'은 페어플레이를 하지 않는 한 진정한 승리자는 없다는 교훈을 반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서울연극제 이후 계속해서 좋은 반응을 얻어온 <리회장 시해사건>(작/연출 김광림)은 재벌이 좌우하는 한국사회를 다룬다. 정치와 재벌의 관계는 구태의연한 주제지만, 이 작품에서는 꿈과 현실,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욕망의 경계 속에서 이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연극 '낮병동의 매미들'
'사건'의 발단을 말할 틈도 없이 연극은 최고 재벌기업이자 글로벌기업인 우리그룹 총수 리석희 회장의 장례식으로 시작한다. 진정한 휴식을 위해 장남은 아버지의 모든 것을 놓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극 막판까지 죽은 리회장의 관은 아직도 아까운 게 남은 듯 장례식장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생전의 리 회장은 사돈인 장 회장의 기업을 적대적 M&A를 통해 집어삼켰다. 이후 비자금과 관련된 스캔들이 터지지만 청와대가 나서 사건을 막아주기도 한다.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권력, 그것을 주무르는 거대한 자금. 리 회장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인간 중에 신이 있다면 그건 나지"라는 대사로 쉽게 증명된다. 국내 모 재벌기업의 회장을 연상시키는 리 회장은 하지만 갑자기 특별한 이유도 모른 채 싸늘한 시체가 된다.

김광림 작가는 젊은 시절 대기업에서의 작가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을 꼬집고 있다. 정치 권력의 비호 아래 현실적인 법과 제도 안에서는 심판할 수 없는 재벌 권력의 단상을 풍자와 해학으로 파헤친다.

현실과 너무 닮은 통제사회의 공포

새 정부 출발 이후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 은유 중 하나는 <1984>의 '빅 브라더'일 것이다. 특히 문화예술계 인사들에게 정부의 통제와 획일적 태도는 계속해서 저항의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연극 <낮병동의 매미들>(작/연출 조영호)이 지닌 설정은 이런 세태를 반영하기라도 하듯 관제에 의해 좌우되는 예술인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다. 예술인만 모여 사는 '예술인 아파트'. 이 아파트에 사는 예술인들은 모두 '예술평가위원회'의 감시를 받는다. 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거나 거부 또는 사고를 쳤을 땐 아랫층으로 강등된다.

주인공인 6명의 예술가는 2층에 산다. 1층은 로비이기 때문에 2층은 사실상 최하층이다. 더는 내려갈 곳이 없는 주인공들에게 기다리는 건 추방의 위기다. 이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예술평가위원회의 구미를 맞출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예술인아파트의 계층구조는 이 사회의 천민자본주의 계급구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예술평가위원회가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법치주의에서 생존하기 위해 예술가들이 겪는 고생은 묘하게도 지난해의 문광부와 문화예술계의 잡음을 연상시킨다. 특히 예술평가위원회에 대항하여 평가 거부 투쟁을 한 예술가들이 '관리실'에 끌려가 '독방'에서 '명상'을 한다는 설정, 예술인아파트의 경비원들이 들이닥치면서 '진짜 슬프고 예쁘고 아름답고 잔인한 사건'이 발생하는 설정 등은 그대로 조지 오웰의 <1984>를 떠올리게 한다.

조영호 연출은 "처음부터 특정 사건이나 정권을 겨냥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 작품은 1992년에 처음으로 쓰여졌다. 하지만 '관리실'이나 '명상' 같은 용어나 "법조인아파트에 가서 쥐 잡는 일이나 해야겠지"라는 대사들에서 터지는 관객들의 헛웃음은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