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올림픽에는 금메달이 없다> 전정책 돌아보고 시민참여와 공동체로서의 도시적 삶에 대한 논의와 제안들 담아

"서울이 좋아요", "디자인 덕분에 살 맛 나요"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인 서울은 이런 내용의 포스터로 도배되어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06년 취임한 후 주력한 디자인서울 정책의 홍보물이다.

디자인 덕분에 서울이 살 맛 나게 좋아지고 아름다워졌다니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지만, 이런 지나친 홍보 때문에 오히려 '디자인 울렁증'이 생겼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의 가장 큰 수혜자일 것 같은 작가와 디자이너 중에도 고개를 흔드는 이들이 있다. 일방적으로 추진되는 정책은 디자인 문화와 삶의 질 향상에 별반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 디자이너들은 이미 상품을 개발하는 수준을 넘어 삶의 방식, 사회·문화와의 관련 속에서 디자인을 하고 있는데, 디자인서울 정책에는 시민이 참여할 여지나 공동체로서의 도시적 삶에 대한 논의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미디어버스 '사각지대를 없애라'
이를 해결하러 작가와 디자이너들이 직접 나섰다. 정책 추진 과정의 부작용과 한계를 들추고, 함께 만드는 디자인서울을 제안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지난 2일 지방선거 개표와 동시에 시작한 <디자인올림픽에는 금메달이 없다> 전이다.

이들은 묻는다. "누구를 위한 디자인서울인가? 누가 서울시의 새로운 수장이 되더라도 계속 디자인서울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면, 한번쯤 진지하게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디자인올림픽의 사각지대

작년과 재작년, 서울에서 '디자인올림픽'이 열렸다. 서울이 2010년 세계디자인수도로 선정된 것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이름에서부터 디자인산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으려는 서울시의 의도가 드러난다. 이는 디자인서울 정책의 대대적 홍보전이기도 했다.

이처럼 디자인을 부가가치 산업으로만 인식할 때 그 사회·문화적 의의와 가능성이 간과되기 쉽다. 정치적 목적이 앞서면 더더욱 그렇다. <디자인올림픽에는 금메달이 없다> 전을 기획한 독립큐레이터 팀 AMP의 최정은, 박상권, 서은선 큐레이터는 디자인서울 정책 추진 과정을 주목했을 때 "그것이 오히려 자생적으로 발전해 온 디자인의 가치를 후퇴시키고 흐릿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히 단기간에 성과를 내기 위해 시민과의 협의 과정을 생략한 채 추진된 디자인 거리 조성사업과 이를 무마하기 위한 과도한 홍보 사업은 지방선거 직전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지난 4년간 서울시의 부채가 300% 늘어난 것이 전시행정 탓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기 때문이다.

AMP는 "무리한 디자인 정책 추진은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 특히 2009년 하반기 이후 강화된 디자인서울 홍보는 다분히 지방선거를 의식하고 전개된 것으로 느껴져 더욱 걱정스러웠다. 디자인이 정치 도구화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문제의식에 공감하는 작가들이 참여했다. 미디어버스는 <사각지대를 없애라>라는 작업에서 디자인올림픽과 1988년 서울올림픽 간 공통점에 주목했다. 한국사회의 근대화, 선진화를 위한 정치적 장치라는 것이다.

이들은 1988년 9월17일 서울올림픽 개막식을 보도한 한 일간지의 레이아웃 속에 옛날 신문에서 찾아낸 비이성적이고 기괴한,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인 내용의 기사들을 짜깁기하는 작업을 했다. 서울시민의 삶의 터전인 아파트가 북한의 남침에 대비한 요새로 설계되었다는 칼럼, 서울올림픽 당시 상징조형물을 둘러싼 서울시의 갈팡질팡과 미의식 없음을 꼬집는 사설 등이 실려 있다.

서울올림픽을 유치했던 전두환 정권은 "사각지대를 없애라"는 명령으로 도시를 개발했지만, 그 와중에 억눌리고 밀려난 삶들까지 없앨 수는 없었다는 뜻이다. 이성과 합리를 내세운 근대화 과정이 군사 독재정권에 의해 추진되었음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 작업들은 블로그 http://deletethedeadzone.blogspot.com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유병서 작가의 퍼포먼스
FF 그룹과 리슨투더시티는 디자인서울 정책의 문제점을 직접적으로 다루었다. FF 그룹은 이라는 캠페인성 프로젝트로 진행했다. 블로그와 트위터, 미투데이 등을 통해 시민들에게 신청받은 문구를 스티커로 제작, 서울시 홍보 포스터에 붙이는 작업이다.

시민들과 소통이 없다는 점을 꼬집기 위한 것이다. 그 결과 "서울이 좋아요", "디자인 덕분에 살 맛 나요"라는 말들은 "서울이 좋은지는 우리가 판단할게요", "한강에 나무 좀 그만 뽑으세요, 그늘이 하나도 없어요", "아스팔트 시멘트 말고 풀이 난 땅을 더 많이 보고 싶어요",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디자인은 디자이너에게" 같은 말들로 바뀌었다.

최근에는 새로운 방식을 하나 더 도입했다. 디자인 거리를 찾아가 더러운 바닥에 세제 묻힌 칫솔을 문질러 문구를 새기는 것. 이를테면 청소 퍼포먼스인 셈이다. 첫 결과물로 5월27일 대학로에 '서울의 진보 인간성의 퇴보'라는 글을 남겼다.

리슨투더시티는 디자인서울이 역사와 도시의 연속성을 간과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명박 정권의 문화 복원 프로젝트인 청계천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디자인 육성 프로젝트인 동대문디자인파크는 임기 중 완성하기 위해 공사 중 발굴된 유적과 유물을 제대로 보존하지 않아 비판받았다.

리슨투더시티는 변화가 빠르고 과거를 쉽게 잊는 도시라는 의미로 서울에 <알츠하이머 시티>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리고 30년 후 동대문디자인파크 역시 철거되는 장면을 상영한다. 현재를 풍자하는 예언이다.

FF 그룹의 스티커 캠페인
시민 삶을 북돋는 디자인서울로

지방선거 개표와 함께 전시를 시작한 것은 이런 문제의식을 공론화하려는 취지다. 지난 2일 저녁 서울 종로구 원서동 인사미술공간에서는 전시 오픈을 알리는 잔치판이 벌어졌다.

작가와 디자이너, 지인과 관객들은 물론 행인과 동네 주민까지 막걸리와 음식을 나누며 어울렸다. 한편에서는 개표 현황이 방송되고, 한편에서는 공연과 퍼포먼스가 열렸다. 그 광경이 곧, 전시 주체들이 디자인하고 싶은 문화 도시 서울의 모습처럼 보였다.

오는 19일에는 작가와 큐레이터, 평론가, 관객이 모여 디자인서울에 대해 논하는 워크숍 <창의서울시대의 디자인>이 마련된다.

올해 디자인올림픽은 디자인한마당으로 이름을 바꾸어 개최된다. 디자인서울 정책 역시 메달 따기에 급급하기보다 시민의 삶을 보살피고 북돋는 방향으로 선회할 수 있을까?

리슨투더시티 '알츠하이머 시티'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