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트위터 등 새로운 테크놀로지 사용서 유행

"태어나서 처음 보았던 매뉴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몇 달 동안 용돈을 모아서 산 디지털카메라의 매뉴얼이었다. 택배로 도착한 물건의 포장을 뜯었을 때 나를 압도한 것은 디지털카메라가 아니라 300페이지에 달하는 매뉴얼이었다.(중략) 감동적인 매뉴얼이었다. 디지털카메라의 매뉴얼은 머리 속 편평한 곳에다 커다란 밑그림을 그린 다음 문자와 그림과 도표로 오밀조밀한 지식의 건축물을 조각했다. 내 머리 속에다 디지털카메라가 주인인 어떤 마을을 지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작가 김중혁의 단편 소설 <매뉴얼 제너레이션>은 "좋은 매뉴얼은 머리 속에 거대한 밑그림을 그려주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말하자면 지도다.

매뉴얼이란 그저 기계의 기능에 대한 기계적인 소개인 줄로만 알았던 우리 대부분에게는 생소한 정의지만, 최근 등장하는 '매뉴얼 책'은 이런 이상을 향해 전진하는 중이다. 아이폰과 트위터 등 사람들의 일상과 행동, 사고방식을 바꾸는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의 사용법은 단지 기계 안에 머물러서는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폰으로 열린 매뉴얼 책 시대

올해 1월에 출간된 <아이폰 실용탐구생활>은 400페이지가 넘는다. 저자인 김재석의 말마따나 아이폰에 대한 탐구이자 새로운 생활에 대한 제안으로 빽빽이 채워졌다. 누가 겨우 손바닥보다 더 작은 기계를 이렇게 공부할까 싶지만, 이 책은 다섯 달 만에 5쇄 인쇄에 들어갔다. 총 1만5000부가 팔렸다.

서울 시내 한 대형서점에 마련된 아이폰과 모바일
이처럼 새로운 매뉴얼 책들의 중심에는 아이폰이 있다. 스마트폰 열풍의 선봉장인 아이폰의 특징은 사용자 친화적인 설계와 작동이다. 사용자가 누구이고 어떤 생활 패턴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사용법이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폰을 처음 대한 이들의 반응은 극과 극이다. 흥미진진해 하거나 당황하거나.

아이폰이 드디어 국내에 출시된 작년 말 이후 우왕좌왕하는 사용자들을 겨냥한 매뉴얼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해외 서적의 번역판부터 왕초보에게 기계 켜는 방법부터 가르쳐주는 책, 스마트폰 답게 스마트하게 사용하는 법을 전수하는 책까지 다양하다. 출판시장에도 새로운 장르가 개척된 셈이다.

지금까지 나온 책보다 앞으로 나올 책이 더 많다. 특히 다음달 아이폰4G 출시가 발표되면서 출판계도 업그레이드를 준비하고 있다. <아이폰 실용탐구생활>의 출판사인 지안출판사의 윤정훈 실장은 "<아이폰업무 탐구생활>, <아이폰놀이 탐구생활>을 비롯해 아이패드와 관련한 책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폰 관련 책을 시작점으로 최근의 미디어 환경 흐름을 따라잡는 일련의 시리즈물을 기획하는 출판사도 많다. 한빛미디어는 <도와주세요! 아이폰이 생겼어요>를 '한빛디지털라이프' 시리즈의 1권으로 정했다. 이후 지메일(GMail)과 아이패드 등 일상 속 테크놀로지를 주제로 한 책들을 내놓는다.

한빛미디어의 서형철 과장은 "생활 도구로서의 기술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라고 말했다. 올해 초 <아이폰북>을 번역 출간한 에이콘출판사는 아이폰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트위터와 미투데이의 사용법을 담은 를 '에이콘소셜미디어시리즈'의 일환으로 내놓았다.

출판사들이 앞다투어 아이폰 매뉴얼 책을 출간하는 데에는 판매 목적도 있지만, 시장 흐름에 발맞추기 위해서다. 이달 초 <왕초보 30분 만에 아이폰 사용하기>를 낸 세진북스의 홍세진 대표는 "아이폰 출시를 기점으로 컴퓨터, IT 관련 서적의 흐름이 바뀐 것 같다. 당분간은 전문가를 위한 전문서적보다 기술을 일상에 접목시키는 서적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사용자와 기술, 사회를 잇는 매뉴얼

"컴퓨터 프로그램 같은 사용설명서를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늘 불만이었다. 대개 메뉴 중심의 설명인 탓이다. 메뉴를 하나하나 밑줄 치며 공부는 했는데, 막상 하라고 하면 막막하지 않던가. 아이폰이 사용자 중심의 사용 환경으로 유명하듯, 이 책도 그런 취지에 맞추고자 여러모로 애썼다."

<아이폰 실용탐구생활>의 머리말이 선언하듯 아이폰 세대의 매뉴얼 책들의 특징은 기술에 접근하는 초점과 범위, 각도와 문체까지 각양각색이라는 점이다. 아이폰 사용자들이 어플리케이션을 골라 쓰듯, 기술과 일상 간 다양한 접점 중 궁금하고 필요한 것을 골라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예를 들면 <아이폰 실용탐구생활>은 한국에서 아이폰이 출시되기 전, 중국에서 2년 동안 아이폰을 사용한 저자가 썼기 때문에 아이폰을 둘러싼 한국의 이동통신 정책이나, 아이폰의 애프터서비스에 대한 국내 언론과 소비자의 비판까지 해외 사정과 비교·해석한 점이 눈에 띈다. <도와주세요! 아이폰이 생겼어요>는 사진과 그래픽 위주의 간명한 인터페이스가 눈에 쏙쏙 들어온다. 이는 IT 기술의 대중화와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관심을 가진 학자들의 기획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이다.

몇몇 책들은 개인이 기술을 어떻게 쓰는지를 넘어 기술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는 최근 몇 년간 트위터와 미투데이를 기반으로 벌어졌던 자발적 기부금 모금, 정보 공유, 마케팅 등의 사례를 정리함으로써 이들 서비스의 사회적 영향을 들여다 본다.

<미르몽의 원더풀 트위터 라이프>의 경우는 저자가 단기간에 팔로워를 늘려가는 과정을 담은 매우 소박한 취지의 '일기'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트위터 문화와 사회상이 투영되어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런 부분에서다. "진짜 웃긴다고 생각했는데 트위터에서 잘 안 먹히는 유머코드가 있다면 그것은 너무 젊은 코드의 유머들이다.

우리나라 트위터리안의 연령층은 다른 SNS에 비해 조금 높은 편이다. 그러다 보니 너무 젊은 코드는 먹히지 않는 경우들이 조금 있다. 종교적으로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이나 성적 코드 유머도 싫어한다. 트위터는 병적이다 싶을 정도로 성적인 면에 있어서 건전한 세상이다. 실명을 쓰고 아이들에게도 개방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술의 부산물을 넘어 성찰이자 지침으로

지난달 또 한 권의 트위터 관련 책 <트위터는 막걸리다>가 나왔다. 저자 이름이 독특하다. '@coreacdy'다. 이는 민주당 정동영 의원의 트위터 아이디. 책은 정동영 의원이 2009년 6월부터 2010년 4월까지 트위터를 통해 나눈 대화의 기록이자 소통의 일기장이다. 그래서 "혼자의 책이 아니라 열린 공론장에서 함께 한 모든 트위터 사용자들의 공동 저작물"이라고 적혀 있다.

책에는 그 시기 동안의 사회상과 트위터 문화가 칡덩굴처럼 얽혀 있다. 용산참사가 일어났을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온두라스에 한 한국인 여성이 억류되었을 때 이 일들은 트위터로 전해지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정동영 의원은 "트위터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마법이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소통에 목말라 했던가 보여주는 우리 사회의 아픈 단면이다. 그리고 소통이 얼마나 우리에게 힘이 되는지 보여주는 희망의 증거"라고 적어 놓았다.

<트위터는 막걸리다>를 전통적인 의미의 매뉴얼 책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최근 매뉴얼 책의 경향과 맞닿는 부분이 있다. 기술이 사회에 도입되고 자리잡는 데 당대 사람들의 욕구와 희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다. 나아가 어떤 기술의 가능성도 실제 사용자들을 통하지 않고는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킨다.

이런 관점에서, 새로운 매뉴얼 책들은 새로운 기술의 부산물을 넘어 성찰이자 지침으로 읽힐 수 있다. 매뉴얼 책의 유행은 기술의 종이 되어온 현대인들이 주인의 자리를 회복하려는 노력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내게 맞는 매뉴얼 책, 어떻게 찾을까?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매뉴얼 책들 중 나의 수준과 취향, 의도에 맞는 책은 어떻게 고를 수 있을까. 저자를 꼼꼼히 확인하는 것이 답이다. 기술과 일상을 잇는 내용에 맞게, 요즘 출판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매뉴얼 책 저자는 IT전문가가 아닌 '블로거'다.

이들을 저자로 삼는 데는 몇 가지 장점이 있다. 표현력을 갖추고 있으며, 첨단 기술들을 얕게나마 두루 알고 있어 대중에 대한 호소력이 높다. 예를 들면 <트위터 무작정 따라하기>의 블로거 정광헌은 트위터가 무엇인지를 메신저와 비교하며 설명해 준다.

"트위터는 기록되고 공개되는 메신저지만, 상대방이 그 페이지를 열기까지는 전달되지 않는다. 메신저가 둘만의 대화라면 트위터는 수많은 구경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대화를 하고 주변에서 구경꾼들이 불쑥 튀어나와서 훈수를 두는 광경"이라는 것.

"트위터는 주목받는데 왜 주변에는 사용자가 적을까요?" 같은, 책을 이끌어가는 질문들 역시 대중의 가려운 데를 긁어준다. 업계 종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기술산업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다는 것도 블로거 저자의 특징이다. 심지어 어떤 저자는 "인터넷도 되는 휴대폰"을 원한다면 굳이 아이폰을 쓸 필요가 없다고 충고하기도 한다. 직장인으로서, 비전공자로서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과정의 고충을 솔직하게 털어놓아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는 것도 장점.

대부분의 블로거들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바탕으로 책을 쓰며 책이 출간된 후에도 계속 업데이트를 한다는 것도 독자 입장에서는 쉽게 애프터서비스의 혜택을 누릴 수 있기도 하다.

따라서 책을 구입하기 전, 저자가 어떤 관점과 경험을 바탕으로 기술에 접근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프로필과 머리말을 읽고, 저자의 블로그를 찾아가 보면 감이 잡힌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 비슷한 취지로 기술을 사용하는 이의 가이드라면 쫓아가는 즐거움이 더할 것이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