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주리 <꽃보다 사람> 전삭막한 현실 속 일상적 삶의 의미 일깨우며 휴머니즘 전해

황주리 작가
도시의 속성과 꽃을 프레임으로 우리들의 삶을 담아온 가 서울 강남 갤러리현대에서 <꽃보다 사람>전을 열고 있다.

화려한 원색과 흑백, 풍부한 상상력과 유머러스한 그림언어로 독특한 회화 세계를 구축해온 작가는 이번에 새로운 회화작업으로 관객과 소통을 시도한다.

두드러진 것은 사진과의 변주다. 단순히 사진과 그림을 합성하는 방식이 아닌, 작가가 찍은 사진 이미지를 배경으로 그 위에 새로운 이미지들을 그려넣어 또 다른 하나의 이야기를 완성시키는 형태다.

골목길이나 섬 마을의 풍경, 어릴적 초등학교 수돗가를 연상케 하는 낡은 수도꼭지, 시골의 길가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항아리 등등, 사진은 낯익으면서도 낯설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놀이터에서 찍은 시소, 초등학교의 수돗가, 에스토니아의 담벼락, 비에 젖은 계단 등 여행하면서 다가온 느낌들을 담았어요."

여행을 많이 해온 작가가 늘 여행길에서 새로운 이미지들을 카메라에 담아온 것을 감안하면 이번 새 그림에서의 사진은 오래도록 작가의 마음과 눈 속에서 기다리고 숙성되어온 이미지들의 탄생인 셈이다.

사진이 찰나의 시간을 채집하는 것이라면 이는 수집광인 작가에게 익숙한 작업이다. 작가는 어릴적 우표수집에서부터 안경, 돌, 의자 등을 수집, 이를 회화의 모티프나 오브제로 활용 해 온 터, 그의 작업은 우리네 일상적인 삶의 편린들을 재구성하는, 시간을 수집하고 재편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작가의 작품들에서 사진과 그림의 만남은 꿈과 현실, 지나간 시간들과 지금 이 순간, 그리고 미래 어느 시간에 남을 그 흔적들의 만남이다.

전시장에선 먼저 알록달록한 그림이 그려진 작은 의자를 만나게 된다. 모두 22개로 2004년부터 의자에 그림을 그려온 '의자에 관한 명상'이라는 작품이다. 의자와 같이 전시된 벽엔 '동심의 원형'이 소개돼 있다. 출판사를 경영했던 아버지 밑에서 5살 때부터 원고지에 그림을 그렸던 작가의 어린시절이 현재의 작가와 연결되며 관객에게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작가에게 익숙한 '식물학' 시리즈에는 꽃잎마다 우리의 일상이 알알이 담겨 있고, '그대 안의 풍경' 연작에서는 어릴적 추억과 도시의 팍팍한 삶이 묻어난다.

작가는 도시문명과 그 안의 파편화된 삶들에 예리한 메스를 들이대지만 우리가 모르고 지나치는 일상의 작은 행복들과 사랑, 탄생, 죽음 같은 삶의 축제들을 담은 그림 속에는 따뜻한 휴머니즘이 녹아있다.

'식물학 Botany'
"아무래도 내게 꽃은 삭막한 현실에다 풀이나 강력 접착제로 정성껏 붙이고 싶은 꿈속의 벽지 같은 모양이다. 그 꿈속의 벽지가 바로 내가 그린 꽃 그림이기도 하다." (작가노트 중)

작가에게 꽃은 현실이면서 꿈이다. 그는 꽃에 대한 의미를 통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세상의 이름모를 꽃들은 꽃이면서 꽃이 아니다. 서로의 수분과 자양분을 나누며, 혹은 뺏고 빼앗기며 죽어가고 살아남는 우리네 인간의 삶도 이와 닮지 않았을까?"

작가에 따르면 꽃은 고층건물 속 하나의 방이기도 하고, 한 사람의 마음의 방이기도 하다. 결국은 모두 혼자이면서 그러나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수없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도시, 나라, 세계에서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는 그림에서 그렇게 팽창되어가는 식물의 번식을, 인간관계의 원활한 소통을 꿈꾼다.

그의 그림에는 늘 눈이 등장한다. 관객은 그림 속 눈을 바라보지만, 반대로 그 눈은 관객을 응시한다. 그림 속에 숨어있는 꽃의 눈들은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눈으로 다시 태어난다. 관찰하는 눈, 감시하는 눈, 따스하게 지켜보는 눈, 그 중의 어떤 눈이든 그것은 그림을 바라보는 관객의 자유라고 작가는 말한다.

새로운 작품을 통해 작가는 더욱 깊어진 사람 이야기를 하고, 현대인의 삶을 어루만진다. 다양한 꽃의 변주 속 주인공은 여전히 '사람'이다. 작가는 "꽃보다 아름다운 건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이 '꽃보다 사람'인 이유다.

우리가 살아가는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위트있게 풀어내 삶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일깨워 주는 이번 전시는 7월 11일까지 이어진다. 02)519-0800


'자화상 Self-Portrait'
'의자에 관한 명상 Installation View'
'그대 안의 풍경 The scene within You'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