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 롤랑 프티의 대표작 세 편 국내 첫 공개유니버설발레단 '디스 이즈 모던' 3人의 무대 올려

'롤랑 프티의 밤' 중 '젊은이와 죽음'
한국에서 발레는 그대로 백조다. 호두까기 인형이다. 발레리나의 빳빳한 튀튀다. 이것은 발레단에서 공연되는 레퍼토리가 주로 클래식 발레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 속의 가장 유명한 발레 장면엔 '그 발레'가 나오지 않는다. 영화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1981)에는 모리스 베자르의 <볼레로>가 등장한다. 우리에게 더 익숙한 작품은 <백야>(1985)다.

세기의 발레리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가 보여주는 그 유명한 춤은 롤랑 프티의 <젊음이의 죽음>이다. 20세기 발레를 견인해온 두 안무가는 몸을 곧게 세우고 중심을 무너뜨리지 않는 기존의 발레와 달리 현대적인 느낌의 발레(Modern Ballet)를 보여줬다.

이달 중순부터는 국내에서도 이 모던 발레를 다양하게 볼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을 클래식 발레 강국으로 이끌어온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이 동시에 모던 발레 공연을 펼치게 된 것. 국립발레단은 모던 발레의 전설이라고 할 수 있는 롤랑 프티의 세 작품을 보여주고, 유니버설발레단은 현재 세계 모던 발레를 이끄는 3인의 무대를 연작으로 꾸몄다.

유럽 발레 역사 롤랑 프티, 한국 첫 상륙

'롤랑 프티의 밤' 중 '카르멘'
국립발레단이 마련한 '롤랑 프티의 밤'에서는 아흔을 앞둔 롤랑 프티의 대표작 <아를르의 여인>, <젊은이와 죽음>, <카르멘> 세 편이 국내 처음으로 공개된다.

발레의 종가인 프랑스의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솔리스트로 활약한 프티는 전막 작품보다는 그만의 감각이 빛나는 단편 발레로 유명하다. 특히 그가 22세 때 안무한 <젊은이와 죽음>은 반 세기 이상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대성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1946년 초연된 이 작품은 시, 소설, 영화 등 전방위 예술가였던 장 콕토의 대본으로 안무됐다. 세계대전이 끝난 무거운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이 작품은 바흐의 웅장한 '파사칼리아'를 배경음악으로 활용한다. 훗날 장 콕토도 이 작품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는 설은 <젊은이와 죽음>의 걸작성을 말해준다. 프티가 좋아했던 프레드 아스테어의 특기(의자 등받이에 다리를 걸어 천천히 넘어뜨리는 동작)가 이 작품에서 영화로, 다시 국내 광고로 이어진 것을 반추해보면 더 흥미롭다.

<카르멘>과 <아를르의 여인>은 조르주 비제의 음악이 공통점이다. 수많은 발레리나가 가장 도전하고 싶은 역이기도 한 카르멘은 1949년 초연 당시 선정적이고 파격적인 의상과 안무, 도발적인 헤어스타일 등으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독특하고 화려한 무대 디자인 때문에 프티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많은 인기를 끌었다.

알퐁스 도데의 동명소설을 발레로 만든 <아를르의 여인>은 반 고흐가 사랑했던 프랑스 남부의 소도시 아를(Arles)의 아름다운 풍경을 무대로 옮겼다. 광기에 빠진 듯한 축제 장면과 주인공들이 번뇌하는 장면을 통해 삶의 대비가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그와 발레 뤼스의 교차점을 발견할 수 있다.

'롤랑 프티의 밤' 중 '아를르의 여인'
이 세 작품들은 지금도 파리 오페라 발레단과 밀라노 라스칼라 발레단의 레퍼토리로 공연되고 있다. 이번 한국 초연에 롤랑 프티는 기꺼이 5년 라이센스를 허락하고, 아울러 공연을 위해 해당 작품의 오리지널 스태프들을 대거 파견해 파리와 밀라노 무대와 같은 수준의 공연을 지원하고 있다.

세 거장이 펼치는 '동시대 발레'

이에 반해 유니버설발레단이 보여주는 '모던'은 보다 젊고 혁신적이다. '디스 이즈 모던'이라는 이름으로 이번 공연에 선택된 작품은 하인츠 슈푀얼리의 <올 쉘 비(All Shall Be)>, 윌리엄 포사이드의 <인 더 미들(In the Middle, Somewhat Elevated)>, 오하드 나하린의 <마이너스7(Minus7)>이다. 정확히 말하면 신고전 발레와 컨템포러리 발레, 현대무용이 '모던'이라는 이름으로 하나로 묶인 것이다.

스위스 취리히발레단의 하인츠 슈푀얼리 예술감독이 안무한 <올 쉘 비>는 바흐의 엄숙한 음악에서 역동적인 남성성과 관능적인 여성성을 동시에 뽑아냈다. 그는 'G선상의 아리아'가 흘러나올 때는 신중하지만 이어지는 '가보트'에 위트와 유머를 섞으면서 자신의 장기인 고전의 재해석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2년 전 유니버설발레단에 의해 국내에 소개된 바 있는 윌리엄 포사이드의 <인 더 미들>은 세계 유명 무용단에서 인기 레퍼토리로 삼을 만큼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가장 먼저 자극하는 것은 청각이다. 금속성 느낌이 강한 톰 뷜렘의 전자음향 사이로 3명의 남성 무용수와 6명의 여성 무용수가 타이트한 점프를 선보이며 관객의 몰입을 방해한다.

'디스 이즈 모던' 중 '인 더 미들'
하지만 끝 부분으로 가면서 도약이 커지면서 공연은 열정적으로 변해간다. 관객은 춤과 음악이 일치된 채로 전개된다는 사실을 도중에 알아차리며, 긴장과 흥미를 동시에 느끼게 된다. 발레의 고전적인 흔적을 보이면서도 관객이 예측하지 못하는 결과를 이끌어낸 이 작품 때문에 포사이드는 '클래식 발레를 해체하고 21세기로 끌어온 장본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지난 2006년에 이어 다시 한 번 <마이너스7>을 무대에 올리는 오하드 나하린은 무용의 변방인 이스라엘의 바체바무용단을 세계 정상급으로 끌어올린 국보급 안무가다. '디스 이즈 모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마이너스7>은 나하린의 기존 작품들을 새로운 각도에서 재구성했다.

<아나파자(Anaphaza)>, <마불(Mabul)>, <자차차(Zachacha)> 등 관객의 의표를 찌르고 무용 형식을 파괴하며 발생하는 역동적인 에너지들은 그가 왜 관객에게 사랑받는 안무가인지 체감하게 한다.


'디스 이즈 모던' 중 '올 쉘 비'
'디스 이즈 모던' 중 '마이너스7'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