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 얀센>, <미술과 놀이>전 등 관객과 호흡하며 색다른 즐거움 찾기

'테오 얀센'전
"놀이를 정의한다는 것은 농담을 설명하는 일과 비슷하다. 농담이든 놀이든 분석하기 시작하면 그 특유의 쾌감이 사라진다."

미국 최고의 놀이 행동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는 정신과 의사 스튜어트 브라운은 얼마 전 출간된 <플레이, 즐거움의 발견>에서 '놀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는 또 "놀이는 모든 예술, 게임, 책, 스포츠, 영화, 패션, 재미, 경이로움의 토대"라고 말하며 그 중요성을 설파한다. 직접 경험할 때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예술이나 게임의 근본은 놀이라는 것이다.

브라운의 말은 현재 한국의 관람 문화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이나 공연장의 관객들이 접하는 예술은 일방적이다. 관람객이 할 일이란 가만히 작품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나름대로 정의하고 분석하는 일뿐이다. 그래서 관람객에게 예술은 놀이보다는 '노동'에 가깝다.

그래서 어떤 전시나 공연에서는 이런 한계를 반영하듯 관객이 직접 체험하는 문화를 만들고 있다. 그동안의 문화 체험이 주로 부대행사에 그쳤다면, 이 행사들에서는 '놀이와 체험'이라는 콘셉트가 전시-공연의 또 다른 주제가 되고 있다.

'미술과 놀이'전 - 박현곤의 '해태동물원'
만지는 미술, 창작의 시작

최근 사람들의 이목을 가장 많이 끄는 전시는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열리는 이다. '키네틱(Kinetic) 아트'라고 하면 아직도 모빌이 연상될 정도로 일반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플라스틱 관으로 구축된 얀센의 거대한 조각들은 흥미롭게 키네틱 아트를 이해시켜준다.

얀센이 창조한 '해변동물'들은 인공지능 컴퓨터를 탑재한 듯 스스로 움직인다. 바람을 이용해 움직이다 물을 만나면 방향을 바꾼다. 강풍이 몰아치면 해머로 자신을 내려쳐 자신을 보호한다. 어떤 전기 동력도 없이 환경에 따라 변용하는 모습에선 키네틱 아트의 첨단을 체감하게 해준다.

눈 앞에서 혼자 움직이는 조각들을 보고 있자면 굳이 교과서를 붙잡고 키네틱 아트의 정의와 원리를 외울 필요도 없다. 오히려 가만히 눈으로만 보는 것보다 관람객의 손으로 만져질 때 이 작품들은 비로소 완성된다. 이번 전시는 특히 어린 관람객들을 위해 자기만의 해변동물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다양한 체험관도 따로 마련해 창의성과 상상력을 키울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테오 얀센은 "10살 때의 박물관 관람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말하며 "10대들은 무엇이든 받아들이고 교육받기에 가장 적절한 나이이기에 이번 전시처럼 재미와 함께 새로운 꿈과 희망도 줄 수 있는 멀티전시회가 많아졌으면 한다"고 개인적인 바람을 내비쳤다.

가야금앙상블 사계의 '뜯어도 보고, 튕겨도 보고'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이 매년 여름에 여는 '미술과 놀이'전은 '놀이'라는 형식을 통해 꾸준히 성공을 거두고 있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은 이 전시는 '난해한 현대미술'에 대한 편견을 깨며 지난 7년간 벌써 43만여 명의 관람객을 모았다.

'네버랜드'라는 주제로 열리는 올해 전시에서 피터팬의 놀이동산을 연상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 기존의 어린 관람객뿐만 아니라 그들의 보호자들까지 아우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그 매개가 되는 것은 과자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등장하는 윌리 웡카가 된 것처럼 기꺼이 동심으로 돌아간다. 과자와 아이스크림의 포장지는 기린과 코뿔소가 되고, 대형 웨하스로 집도 만들 수 있다.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이 공히 갖고 있는 특징은 즐거움이다. 단순히 쉽고 재미있어서 즐겁다기보다는 창작할 때 느낄 수 있는 근원적인 즐거움이다. 그래서 관람객들은 현대미술과 그 안에 담겨진 현대성의 다양한 속성을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군이 미술계의 유명교수에서부터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작가까지 다양하게 포진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해봐야 재미있다, 놀면서 알아가자

시각예술과는 달리 공연예술은 직접 체험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대중과의 만남의 기회가 적은 순수예술의 경우는 점점 더 일반관객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10일 나루아트센터에서 열린 <뜯어도 보고, 튕겨도 보고>는 연령대를 불문하고 어려워하는 국악을 '만져가며' 알아가는 공연이다. 크기도 현도 다양해진 가야금을 직접 만져보며 친숙하게 느끼게 함으로써 미래의 '국악 관객'으로 키워낸다는 의도다. 10년간 국악앙상블의 대표적인 팀으로 활동해온 '가야금앙상블 사계'는 지난해 인천 학생교육문화회관에서 초연해 호평받은 이 공연을 새롭게 해석해 영상이 함께하는 음악극 형식으로 풀어냈다.

이야기의 배경은 '가야금 나라'다. 국악기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익숙한 가야금이지만 그 종류와 그에 얽힌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사계는 이야기와 음악을 크게 정악가야금, 산조가야금, 25현가야금의 세 부분으로 나누어 각 악기의 이야기와 함께 연주를 들려준다. 우륵과 가야금의 탄생부터 크기와 줄의 개수에 따라 변화해온 가야금의 역사가 사계의 음악과 맞물려 펼쳐진다.

공연 전후 로비에 전시된 가야금을 만지면서 사계가 구축한 '가야금 스토리텔링'은 효과적으로 관객의 뇌리에 각인된다. 아직 오지 않은 가야금의 미래를 상상해보라는 사계의 권유는 그 스토리텔링의 '열린 결말'이 된다.

이밖에도 어린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한국-프랑스 합작 TV 애니메이션 <빠삐에 친구>도 16일부터 프랑스식 체험뮤지컬로 돌아온다. <빠삐에 친구>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미술가 밀라 보탕의 감각적인 종이 삽화를 바탕으로 한 미술교육 애니메이션. 뮤지컬 버전으로 옮겨진 <빠삐에 친구>는 '체험뮤지컬'을 표방하며 관객이 직접 공연 속의 사건의 실마리를 종이로 표현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