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부족·업무과다로 고통의 연속, 사명감·프로의식으로 견디며 전문성 겸비

젊은이들에게 꾸준하게 인기를 끌고 있는 유망 직종군에 홍보전문가와 마케팅전문가가 있다. 공연예술 분야에서의 홍보 마케팅 업무는 최고의 직업일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공연계에서 배우보다 더 빨리 이름을 감추는 것이 바로 홍보 담당자들이다. 공연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작품과 관객 사이에 '낀' 존재들인 그들의 고충을 따라가 본다.

3D 시대에도 우리는 여전히 3D 업종

공연과는 전혀 다른 업종에서 근무하던 K씨는 오랫동안 동경하던 공연 홍보를 위해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고 홍보대행사에 신입으로 입사했다. 다른 분야로의 완전한 직종전환이었던 만큼 의욕도 충만했다.

하지만 주말도 없이 매일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이어지는 과도한 업무에 그는 금세 체력이 바닥나 잦은 몸살을 앓게 됐다. 보약과 병원 치료를 병행하던 그는 결국 입사한 지 석 달 만에 다시 사표를 쓰고 말았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 없음
이것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전 모 공연단의 홍보담당 직원으로 입사했던 K씨의 실제 사례다. K씨는 해당 업무에 대한 막연한 환상도 없었고 평소 공연계의 상황을 익히 잘 알고 있던 경우여서 문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현재 공연 홍보담당 업무의 가장 큰 문제는 이처럼 수명이 대체로 짧다는 데 있다. 공연의 특성상 평일보다 주말이 더 바쁘고, 따라서 사실상 이들에게 휴일은 없다. 가끔 월요일에 공연을 하지 않는 곳도 있지만, 언론 협조를 위해 출근해야 하는 곳도 상당수다. 이런 열악한 근무환경에도 불구하고 급여 수준은 좀처럼 높아지지 않는다. 경력 단명이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뮤지컬사의 홍보담당자는 인력 부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회사의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한두 명의 인력이 2개 이상의 작품을 맡고, 각각 수많은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들을 모두 상대해야 하니 견디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국립단체도 사정은 비슷하다. 한 공연단의 홍보담당자는 "국립이라 더 좋은 조건을 기대하며 들어오지만, 기대 이하의 박봉인데다 처리해야 할 서류도 너무 많고 상명하달식의 공무원 마인드를 견디지 못해 그만 두는 사람도 많다"고 털어놓는다.

휴가가 아예 없는 회사도 부지기수다. 휴가가 있는 회사의 경우는 연차에 따라 며칠이 주어지지만, 이마저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연 일정 때문에 사실상 쓰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것 같나."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홍보사의 직원들도 질문이 떨어지기도 전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마음 같아서는 당장 그만두고 싶다"고 대답했다.

뮤지컬 '아이러브유' 홍보 애플리케이션
자부심과 프로의식으로 견뎌내야

언론도 이들을 힘들게 하는 요소 중 하나로 꼽힌다. 들의 갑작스러운 인터뷰 요청과 예민한 배우들 사이에서 시달리는 것은 이들 홍보담당자들이다.

간담회나 제작발표회 때는 인원 유치를 위해 목이 쉴 정도로 각 언론사에 전화를 걸어야 한다. 또 해당 분야에 대해 아직 식견을 갖추지 못한 가 예술로서의 가치보다 "누가 제일 잘 하냐", "세계 3대 XX가 뭐냐"는 식의 질문을 해올 때는 난감하다.

그렇다면 공연홍보인들에게는 희망이 없는 것일까. '인력 부족-업무과다로 인한 충전 불가-체력감퇴와 의욕상실–퇴사'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수는 없는 걸까.

설앤컴퍼니의 신유미 대리는 홍보담당자들이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질 것을 주문했다. 신 대리는 "홍보계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을 모르고 뛰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길은 스스로에게 있다고 말한다. "어쨌거나 우리는 관객을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새로운 시장을 선도한다는 자부심과 프로의식을 갖고 트렌드를 읽는 눈을 키워야 한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홍보 애플리케이션
연극열전의 홍보를 2년째 맡고 있는 한지혜 씨 역시 비슷한 어려움들을 빠짐없이 겪고 있다. 그의 경우 당차게 업무를 계속할 수 있었던 요인은 '상처받지 않는 강인한 마음'이다. 그는 "어떤 일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졌던 것이 힘든 업무를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었던 것 같다"고 자평한다.

똑같이 힘들지만 일에 대한 사명감과 프로의식을 바탕으로 선순환을 만들어내는 이도 있다. 퍼니쇼컴퍼니의 최유진 팀장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어 자기계발에 힘써 업무의 능률과 재미를 찾는다. "일주일에 하루 쉴 때 스터디를 하고 다른 장르의 문화를 접하면서 틈틈이 다양한 공부를 해왔다. 특히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생활화된 시대에는 애플리케이션이나 QR 코드, 트위터 기반의 홍보 방식도 알아두는 편이 좋다." 전문성의 겸비를 통해 일도 더 재미있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관객들은 공연을 볼 때 배우를 바라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공연 전에는 신문이나 방송의 광고를 보고, 끝난 후에는 자신의 블로그나 트위터에 단평을 남긴다. 이 과정에서 이들, 홍보담당자들의 존재는 유령처럼 빠져 있다.

작품이 만들어진 후부터 관객에게 공개되기까지 이들이야말로 꼭 필요한 사람들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알아주는 이도 그들 자신뿐이다. 의욕상실과 긍정적인 마인드 사이에서 무한반복하는 운명을 가진 듯, 홍보담당자들은 오늘도 전화기를 쥔 채 분주하게 극장 안팎을 누비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