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 <나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어> 전<종군 위안부>서 <러시아의 한인들>까지 역사의 한 토막 포착

종군위안부 김순덕 할머니, 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 70×97cm, 1998
"광주에 있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쉼터에 다니며 설거지도 하고 할머니들의 말동무도 해드리며 자주 그곳을 왕래했어. 그러던 어느 날 지금은 돌아가신 박순덕 할머니께서 나에게 다시 카메라를 들 수 있는 용기를 주셨어. 그때까지만 해도 난 내 카메라로 어디를 봐야 할지를 몰랐거든. 할머니는 사진 찍는 놈이 와서 사진은 안 찍고 왜 엉뚱한 짓만 하냐며 내 카메라 앞에서 손수 포즈까지 취해 주셨지. 그때부터 난 세상을 보는 다른 눈을 선물 받았어." – 작가 노트 中-

지난 10년간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어온 김지연 작가는 이렇듯 사진 속 인물들과 함께 그 시간을 살았다. 누군가의 삶 표면에 맴도는 눈이 아니라, 그 속에서 같은 곳을 바라보는 눈. 그래서 그녀는 '실천하는 사진가'로 불리곤 한다.

<종군 위안부>를 시작으로, <탈북 아이들>, <외국인 노동자>, <러시아의 한인들>로 이어진 네 권의 책은 그녀가 사진 속 인물들과 살아온 지난 10년간의 흔적이다.

일제식민지 시절의 뼈아픈 잔상과 6.25 전쟁이 남긴 상처, 21세기 이 땅에서 일어나는 외국인들에 대한 인종차별, 러시아의 황량한 벌판에서 채소 한 움큼 내놓고 팔던 고려인들. 그녀가 현재의 시점에서 겪어낸, 가슴을 묵직하게 하는 한국 역사의 한 토막이다.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낭만적인 사진가'의 삶을 택했던 그녀는 1990년대 말, 세상을 바꿀 힘의 원동력이 '나에 대한 끝없는 성찰'에서 비롯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숙명 같은 삶을 묵묵히 걸어온 이유다.

어린이들, 러시아, 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 70×52cm, 2001
인사동에 있는 관훈갤러리에서 그녀의 첫 전시가 열린다. 전시를 기획한 독립큐레이터 최연하씨는 이번 전시에서 그 방점이 '처음'이란 것에 있지 않다고 한다. "정주하지 못하고 떠도는 이들이 벌이는 쟁투의 고단한 흔적들을 질기게 찾아낸 과정. 그렇게 만들어진 사진이라 보는 내내 통증이 일고 사진 속 인물들이 '살기/살아남기' 위해 벌인 사투가 눈에 밟혀 아리기까지 하다"고 이번 전시의 의의를 설명한다.

김지연 작가는 작가 노트의 마지막에 이렇게 써내려 갔다. "전쟁 발발 60년이 되는 해, (중략) 우리는 우리가 이 지구 상의 하나뿐인 분단국가임을 잊고 살며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망각하는 죄를 짓고 있어. 모두 집단 최면에 걸린 듯 무관심이란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지."

김지연 작가의 사진 속에 보이는 이들의 삶은, 우리가 무관심으로 일관하기엔 지극히 아름답다. 8월11일부터 24일까지 전시. T. 02-733-6469


려인 할머니, 우즈베키스탄, 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 90×114cm, 2002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 잉크젯 피그먼트 프린트, 70×52cm, 2000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