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극, 공동창작극, 관객참여형 로드플레이 등 다양한 실험

창작토론극 'Fucking 프란체스코傳'
최근 연극 무대는 참신한 제목과 발상으로 관객을 유혹하는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중 어떤 작품들은 아예 '관객 참여형' 연극을 표방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무조건 관객을 무대 위로 끌어들인다고 해서 관객 참여 연극이 되는 것은 아니다. 관객이 극 속에 빠져들 만큼 흡입력 있는 내용과 형식을 갖추는 것이 관객 참여 연극의 전제 조건이다.

말로는 쉽지만 정답으로 향한 과정은 쉽지 않다. 내용에 치중할수록 작품은 자칫 지루해질 수 있다. 모양새에만 신경쓴다면 깊이 없는 작품이 되어 관객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결국 식상하지 않으면서도 의미 있는 실험을 통해 시대의식을 담아낸 작품이 관객의 예민한 심장을 움직인다.

최근 기존 연극과는 다른 새로운 문법으로 쓰여지는 작품들은 이런 요건들을 고루 갖추고 있다. '극작가-연출가-배우'의 삼위일체가 제공하는 세계에 관객이 반응하는 것이 그동안의 공연-관람 형태였다면 이제는 즉흥적인 창작과 반응이 필수가 된 연극이 등장하고 있다.

얼마 전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된 연극 <1동 28번지, 차숙이네>는 특별한 사건이나 낯선 연출 기법 같은 것이 없었지만 객석의 반응은 흥미진진했다. 제목처럼 이 작품은 차숙이네 '가정'에 얽힌 이야기가 아니라 차숙이네 '집'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무대에 재현하며 집에 새로운 의미와 시선을 부여했다.

27인 공동창작극 '네, 마포경찰섭니다!'
어떤 장르의 어떤 작품 속에서도 집은 그대로 극이 전개되는 무대일 뿐이었다. 집은 언제나 그냥 '거기에 있는' 것이었다. <1동 28번지, 차숙이네>는 이런 선입견에 의문을 표한다. 최진아 연출가는 집을 짓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의견들의 충돌, 일하는 사람들의 땀을 담고 집의 변천사와 함께한 인류의 역사를 이야기하며 그 삶의 지혜를 되돌아보게 한다. '집'이라는 소재 하나로 참신한 고민을 제시하고 인생에 대한 성찰을 형상화한 연출이 놀라웠다.

최근 이라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공연된 연극은 '창작토론극'이라는 인상적인 형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토론극'이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는 특별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작품 속 미디어에 대한 비판과 맞물릴 때 최대한의 효과를 발휘한다.

아나운서의 사회로 국회의원, 교수, , 기획사 대표가 패널로 출연하는 토론의 주제는 노래하는 메시아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프란체스코'의 신곡이다. 토론은 프란체스코 논쟁을 시작으로 촛불집회, 학력위조, 자살 신드롬, 아동 성폭력 등 이 시대 현안들을 거쳐 세종시, 4대강 같은 현 정부 정책에 대한 신랄한 풍자까지 확산된다.

토론극을 지켜보며 관객이 스튜디오 안의 관객과 자신을 동일시할 때쯤, 이를 깨트리는 것은 요한이라는 캐릭터다. 열광적인 팬이자 히키고모리인 요한은 토론장 안 객석에 앉아있다가 난입해 '비극'을 만든다. 이는 마치 인터넷 구설수에 희생되는 스타의 비극을 보여주는 것 같다.

연출을 맡은 극단 미로의 안재범 대표는 "동시대에 대한 비판과 연극 본래의 제의성 부활을 위해 기존의 연극 문법으로는 어려운 시대가 됐다"며 "연극의 정형성을 깨는 실험을 통해 새로운 연극 문법을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할 것"이라고 연출 계획을 밝혔다.

관객 참여형 로드플레이 '우리 엄마, 정숙이, 차여사'
그런가 하면 생활연극네트워크가 무대에 올린 <네, 마포경찰섭니다!>는 1인 극작, 1인 연출, 배우의 도식을 전면적으로 깼다. 참가자 전원이 대본을 직접 쓰고, 연출하고, 자신들이 출연하는 '공동창작' 방식을 통해 작품을 만들었다.

<네, 마포경찰섭니다!>는 기획에서부터 공연까지의 모든 과정이 하나의 프로젝트다. 27명의 참가자 전원이 각자 캐릭터 하나를 만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으면, 이들은 스튜디오에 모여 준비해온 등장인물들을 꺼내놓는다. 자동적으로 성별과 나이, 직업과 성격 등 천차만별의 캐릭터 27명이 탄생한다.

이후 제비뽑기로 6개의 팀이 결정되면 예술감독에게 주제를 받아 팀별로 주제와 각자 만든 캐릭터를 연관지어 대본이 완성된다. 이 6개의 이야기가 한데 엮여 하나의 대본이 완성되고 이를 통해 공연이 가능해진다.

27명의 생활연극인들이 만든 6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들은 기존 연극 문법의 전형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27개의 파편이 엮이며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들의 연속은 관객의 뇌리에 입력된 도식을 무시하고 진행되기 때문이다.

생활연극네트워크 관계자는 "공연예술가들의 전유물로 몰락한 연극을 원래 주인인 관객에게 되돌리기 위한 문화운동"이라고 자신들의 작업을 설명하며 "관객 여러분과 같은 '생활인'들이 만든 연극을 통해 관객도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면 어떨까" 하고 제안한다.

한편 2007년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통해 관객 참여 연극을 고민해온 오치운 연출가는 이번에 <우리 엄마, 정숙이, 차여사>를 통해 '관객 참여형 로드플레이'라는 진화된 형식을 선보인다.

'관객 참여형 로드플레이'란 관객이 극의 일부가 되어 놀이와 행위로, 상황 속의 인물로 참여하며 여러 가지 일이 벌어지는 로드극이 결합된 장르다. 이에 따라 관객은 극이 미리 마련해놓은 길을 따라 적극적으로 움직여야만 한다.

공연 시작 전부터 관객은 주인공인 딸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극장 입장 전에 미리 딸의 머리핀을 착용하고, 간단한 놀이를 통해 배우가 되기 위한 워밍업을 하게 된다.

배우로서 좌석에 앉게 된 만큼 딴 생각을 할 겨를도 없다. "이 공간은 철거당할 것이다"라는 말과 함께 입장한 관객은 공연 도중 갑자기 변화하는 공간 때문에 자리에서 쫓겨나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해야만 한다. 객석 왼쪽에 설치된 이동식 벽이 오른쪽으로 한 칸씩 이동하면서 관객을 10여 명씩 차례로 밀어내기 때문. 관객을 귀찮게 하는 이런 설정은 관객의 몸을 끊임없이 움직이게 함으로써 작품에의 몰입을 가능케 한다.

시대와 동떨어진 소재와 계몽적인 메시지, 지나치게 무거운 이야기로 외면당하던 연극은 이제 새로운 연극 양식으로 무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