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타 뮐러2009 노벨문학상 수상… 데뷔작 <저지대> 등 5편 국내 번역 출간

2009 노벨 문학상 수상자 헤르타 뮐러 강연
독일작가 헤르타 뮐러가 지난해 노벨상을 수상했을 때, 국내 문학계는 '당황했다'. 루마니아 태생으로 독일계 소수민족 가정에서 성장한 작가는 독일어로 작품을 썼고, 비평계에서 찬사를 받을 뿐, 독일 출판 시장이나 작가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일은 드문 작가였기 때문이다. 이 변방의 작가를 소개해 줄 국내 연구자는 한두 명에 불과했다.

그의 작품 일부가 이제 막 국내 번역, 출간됐고 대부분이 초기 10년에 쓰인 작품이기 때문에 섣불리 작품세계를 단정짓기 힘들지만, 스웨덴 한림원의 공식 코멘트를 빌어 소개하자면 뮐러는 "응축된 시와 진솔한 산문으로 박탈당한 삶의 풍경을 그리는" 작가다.

박탈당한 삶의 풍경을 그리는 작가

작가의 아버지는 2차 대전 당시 나치 무장친위대로 징집됐다 돌아왔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의 강제수용소에서 5년간 노역했다. 나치 몰락과 루마니아 독재정권 하에 작가는 성장했고, 이후 대학시절 차우셰스쿠 독재정권을 반대하는 젊은 독일어권 작가들의 모임 '악티온스그루페바나트'의 유일한 여성멤버로 참여해 글을 썼다.

1982년 자전적 경험을 그린 소설 <저지대>로 데뷔했지만 루마니아 정부의 검열을 받아야 했고, 1984년 베를린에서 재출간되며 독일문단과 정치권의 이목을 끌었다. 루마니아 정부는 이 책을 금서 조치했고, 비밀경찰의 감시와 압박으로 작가는 남편과 함께 87년 독일로 망명했다.

얼마 전 출판사 문학동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나는 루마니아에서도 독일 소수민족이었고 공공의 적이라는 낙인까지 찍힌 사람이었다. 이곳(독일)에 와서도 주변에 서기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작가의 삶은 곧 문학적 모티프였다. 그는 줄곧 독재 치하 일상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탄압과 공포를 자신만의 독특한 언어로 표현해왔다. 주요 작품 대부분은 전후 전체주의 공포를 묘사하고 있다. 국내 기자 간담회에서 작가는 "문학은 작은 사물에 대해 쓰는 것"이고, "문학은 무엇을 규명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는 나치의 광기를 겪은 가족사를 통해, 독재 정권 하에 감시 받아온 자신의 삶을 통해 인간성의 위대함과 허약함을 동시에 관통하는 이야기들을 반복해왔다. 참혹한 비극을 다룬 작품은 책 전체가 시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좋을 정도의 문장들로 구성된다.

그의 문학적 지향점은 대학시절 작가 모임 '악티온스크루페바나트'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문학동네와의 인터뷰에서 이 문학 동인의 성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문학 동인이었지만 동인들끼리 정치적인 입장을 같이했다. 문학은 현실에서 유리된 채 떠 있는 무엇이 아니라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견해들을 가지고 있었다. (…) 미학이 없는 문학은 문학이 아니다. (…) 우리가 지향하는 문학 프로그램의 골자는 우선 삶의 경험과 연관지어져야 한다는 것이었고, 비판적인 시선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문학은 섬광과도 같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학에 관한 작가의 생각은 수십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자신의 후반기 문학이 어떻게 변모했다고 보나?"란 질문에 작가는 "30년 전과 큰 차이는 없다"고 답했다.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날마다, 오늘까지도 독재치하에서 품위를 빼앗기는 모든 이들을 위한 문장을 말할 수 있기를 바라왔습니다."

국내에서 뮐러의 작품은 여러 작가의 짧은 글을 모은 <책그림책>(2001)에만 소개돼 있다가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장편 및 단편집 5권이 올해 번역 출간됐다. 그 중 데뷔작인 <저지대>와 최근작인 장편소설 <숨그네>(2009)가 지난 4월에 나왔고, 1986~94년에 쓰인 다른 3권의 장편 <마음짐승>,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가 뮐러의 방한에 맞춰 이 달에 동시 출간됐다.

"북한은 끔찍한 괴물 같은 나라"

헤르타 뮐러는 지난 주 '제19차 국제비교문학회 세계대회' 참석차 한국에 처음 방문했다. 그는 16일 중앙대에서 '이발사, 머리카락, 그리고 왕'이란 제목으로 1시간 동안 강연했다. 이 강연을 통해 그는 1차 세계대전 때 전쟁포로가 됐던 할아버지와 얽힌 유년의 기억, 루마니아 독재 치하에서 자신이 겪었던 고통이 어떤 식으로 문학에 반영되었는지 담담히 풀어냈다.

강연 후 공개 질의응답이 이어졌고 이후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 한국에 돌아온 소감은?

"첫 번째 방한인데 어제 와서 아직 많은 것을 보지 못했다. 어제 시내 호텔에 묵었을 때, 광복절 행사를 호텔 창문에서 보았다. 그 순간 북한과 북한의 독재, 베를린 장벽 무너지는 순간이 생각났다. 북한은 생각할수록 끔찍한 괴물 같은 나라다. 역사에서 미끄러진 나라다. 놀라운 건 북한과 이렇게 거리가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위에는 괴물같은 독재정권이 있고, 여기는 민주주의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게 정말 감탄스럽다."

- 그런 상황이 문학적인 소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그런 나라(루마니아)에서 이미 오래 살았고, 한국 작가들이 틀림없이 이런 소재로 문학을 많이 썼을 것 같다."

- 작가는 루마니아에서 성장했다. 루마니아는 한국보다 북한과 더 밀접하지 않았나? 성장하면서 텔레비전, 책을 통해 알게 된 북한의 이미지는 어떤가?

"(루마니아 독재자)차우셰스쿠에게 있어서 김일성은 모범이 됐고, 그가 북한도 여러 차례 방문했다. 그리고 북한의 여러 방식을 차우셰스쿠 정권이 모방, 수입했다. 유감스럽게도."

- 독재 하에서 글쓰기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였나?

"내가 생각할 때 문학은 무엇을 변형시키거나 큰 담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문학은 작은 사물에 대해서 쓰는 것이고 어떤 개인에 대해서 작업하는 것이다. '고발'이 이미 텍스트에 기술이 되어 있으면 그건 정치적인 글이나 연설이지 문학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그 글 안에 모든 것을 엮어 집어넣는 자이고 읽을 때, 고발(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독자가 읽고 분노했다면, 어떤 고발이 일어나는 것이다."

- 30년 가까이 작품을 썼고 국내 5편의 작품이 번역됐다. 이 중 4편은 초기 10년에 쓰인 것으로 작가의 생애 중 잘 알려진 부분을 모티프로 쓴 것이다. 이를테면 독재정권 하에 대학시절을 보낸 것, 기계공장에 취업한 것 등. 전반기 작품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측면보다는 규명하고 싶은 어떤 주제가 있어서 작품을 쓴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모티프가 변하지 않는다. 규명하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문학은 무엇을 규명하는 게 아니다. 자기 스스로에게 분명해지고 싶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자신과의 의사소통, 대화 이것이 문학이었다."

- 초기 10년 이후 작품은 최근작 <숨그네>만 국내 번역 출간됐다. 이후 작가의 작품 세계는 어떤 식으로 변모를 했다고 보나? 작가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나?

"루마니아에서는 짧은 작품을 썼다. 주관적으로 시간을 지켜야 한다,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쫓기고 있는 삶이 단편을 쓰게 했다. 독일에 온 다음에는 긴 텍스트를 쓰게 됐다. 그러나 3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큰 변화가 없다."

- 노벨상 수상 이후 작가와 개인으로서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변화가 없다. 변하고 싶지도 않고. 나는 똑같은 사람이다. 물론 수상 이후 인터뷰나 공식행사가 많다. 글을 쓰러 책상 앞에 앉게 하지 않는다. 노벨상 탄 후 변화라면, 독재에 대해서 사람들이 말하게 된 것이다. 독재가 없는 나라에서조차 화제가 된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