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성#01'
어렴풋이 보았고 그마저 기억의 파편 속에 묻어두었던 십자가들의 실루엣이 뚜렷한 명암과 세밀한 선, 절묘한 구도와 눈부신 색채의 사진 속에서 우리 눈앞에 선연하게 펼쳐져 있다.

진부한 소재에 생명을 불어넣고, 지루하고 그리 아름다울 것 같지 않았던 풍경에서 뭐라 딱히 표현하기 힘든 슬픔과 아름다움마저 느껴지게 만드는 사진들. 저 십자가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우리에게 무슨 말을 요구하고 있을까?

그것이 무엇이든,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흑백논리에 갇힌 이야기는 아니어야 할 것이다. 맹신과 독선에 갇힌 우리 사회와 종교의 그늘진 면에 관한 이야기든, 우리 사회와 종교를 건강하게 지켜줄 합리와 공존의 밝은 면에 관한 이야기든, 모든 이야기는 결국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십자가들이 덩그러니 우리 시대의 상징으로 도드라져 있는 저 풍경의 이면에는, 비록 모습을 드러내진 않았어도, 희망과 절망, 이성과 맹신, 이기심과 이타심이라는 온갖 모순과 양면성을 지닌 채 주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십자가들의 풍경이 말해주는 것, 우리가 그 풍경에서 읽어내야 할 것은 바로 그 사람들, 우리 자신에 관한 이야기다. 9월 1일부터 9월 7일까지. 갤러리 룩스. 02) 720-8488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