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으로 들어온 뮤지컬이벤트성 클럽파티에서 색다른 문화체험, 새로운 창작공간으로 변모

"어디 한번 놀아봅시다!"

공연장에서 무대 위 출연자들이 관객들을 독려할 때 쓰는 말은 이곳에선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오로지 춤추고 놀기 위해 오는 '클럽'에서는 어떤 이벤트가 벌어져도 신나는 놀이로 자연스럽게 연결되기 때문이다.

클럽이 문화예술의 공간이 된 것도 이런 특성과 무관하지 않다. 90년대 홍대클럽에서 시작된 각종 문화행사들은 이제 영화의 쇼케이스 현장이나 실험적인 무용 공연의 공간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다.

뮤지컬계에서도 이런 점을 놓칠 리 없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지난 2007년 초연된 '클럽 뮤지컬' <동키쇼(The Donkey Show)>였다. 영국 에든버러에서 시작돼 런던, 마드리드, 뉴욕 등 전 세계 12개 도시에서 공연된 <동키쇼>는 70~80년대 클럽 문화를 주도했던 디스코 음악에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을 새롭게 각색해 세계 최초로 '클럽 뮤지컬'이라는 장르의 탄생을 알렸다.

아시아 최초로 공연되며 많은 관심을 모았던 <동키쇼>는 올해 초 또 한 번 공연돼 클럽 뮤지컬의 색다른 재미를 선보였다. 그동안 클럽에서의 뮤지컬이라고 하는 행사들이 사실상 이벤트성 '클럽 파티'였던 것과는 달리 '클럽 뮤지컬'이라는 장르는 뮤지컬의 또 하나의 무대로 관객이자 손님들에게 더 흥미로운 즐거움을 선사했다.

클럽 호러 파티 중 뮤지컬 '헤드윅' 공연
최근에는 여름 시즌을 맞아 클럽에서 작은 '호러예술제'가 열리기도 했다. 강남역 근처의 문화예술 레스토랑 '아이 해브 어 드림'은 지난 한 달 동안 '호러'라는 콘셉트로 이색적인 공연을 보여줬다. 평소 주말마다 클럽 '달은 가장 오래된 TV(Moon is the oldest TV)'(이하 M.O.TV)로 변신해 운영했던 이곳은 8월 한 달을 댄스 퍼포먼스, 일렉트로닉 국악, 뮤지컬이 함께하는 호러쇼로 진행했다.

댄스팀 그루브 컴퍼니가 참여한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플래시몹, 퓨전국악그룹 옌이 보여주는 '여고괴담' 콘셉트의 호러 국악 공연이 매주 주말 분위기를 고조시킨 가운데, 마지막 주말에는 뮤지컬 <헤드윅>이 뮤지컬배우 김수용의 공연으로 치러져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특히 이번 행사에서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브로드웨이 42번가>, <헤드윅>, <미녀는 괴로워> 등의 뮤지컬에서 분장을 담당했던 분장 디자이너 채송화 서울종합예술학교 교수가 직접 참가자들의 분장을 해줘 호응을 얻었다. 참가자들은 분장 체험을 통해 해당 작품의 배우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만끽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M.O.TV의 김하나 씨는 "이번 공연은 기존의 클럽 문화에 호러예술파티가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자리잡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획됐다"며 취지를 밝히고 "매년 회를 거듭할수록 많은 문화예술인들에게 색다른 공연의 기회를 주고, 관객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이달 3일에는 더 진화된 클럽 뮤지컬이 시작됐다. 2003~2004년 대학로 객석 점유율 1위를 차지했던 뮤지컬 <십이야>의 제작진들이 다시 모여 클럽에서의 파티를 소재로 하는 <클럽 십이야>(연출 송은주)를 만든 것이다.

파티컬 '클럽 십이야'
이 공연을 기획한 곽준희 프로듀서는 "뮤지컬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미디어 아트를 뮤지컬과 접목시키는 시도를 통해 '멀티 뮤지컬'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선보이게 됐다"고 이번 공연에 의미를 부여했다.

국내 최초의 '멀티 뮤지컬'을 지향하는 만큼 <클럽 십이야>는 기존의 클럽 뮤지컬보다 내용과 형식 양면에서 다양한 면모를 자랑한다. 셰익스피어의 원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설정은 기존 <십이야>들과 비슷하지만 일렉트로닉 클럽을 배경으로 서사가 진행된다는 점이 다르다. 삼각관계 중 한 축을 담당하는 캐릭터도 '클럽 사장'이다.

또 하나 이색적인 점은 오케스트라를 도입하면서 클럽 뮤지컬의 전형을 깬 것이다. 보통 클럽에서 나오는 음악이라고 하면 일렉트로닉 음악뿐이라고 예상하기 쉽다. 하지만 영화 <왕의 남자>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음악감독으로 유명한 박상현이 이끄는 '모스틀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이번 작업에 참여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하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은 공연 작품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열린 결말'을 가지고 있는 점이다. '열린 결말'이라고 해서 관객의 상상에 맡기는 것은 아니다. 미디어 아트의 특성을 활용해 관객이 직접 감정센서를 통해 하나의 결론을 선택하면 원하는 결말이 기술을 통해 즉각적으로 구현된다. 익히 알려진 셰익스피어의 원작이 '내 맘대로' 재창작되는 순간이다. 공연 관계자는 "이 같은 인터랙티브 아트를 통해 관객은 세 가지의 결론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고 귀띔했다.

원래 춤과 사교, 일탈의 공간이었던 클럽은 이제 뮤지컬 등 공연 장르와 만나며 새로운 장을 열고 있다. 이제까지의 클럽 행사가 주로 일회성 파티에 그쳤다면, 이제는 그 공간의 특성을 활용한 맞춤형 공연들이 출현하며 클럽이 새로운 창작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클럽 호러 파티 중 퓨전국악그룹 옌의 공연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