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시티서울2010국가와 미디어 관계 추적, 새로운 공동체 꿈꾸는 작품들 선보여서울시립미술관서 이화여고 심슨기념관, 서울역사박물관까지 이어져

실파 굽타, 노래하는 구름
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2010>은 '미디어아트'라는 장르를 내걸고 치러지는 대규모 미술행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을 조심스럽게 비켜간다.

새로운 미디어 기술의 스펙터클을 전시하는 대신 미디어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을 모았다. "미디어가 삶과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왔는가"(김선정 총감독)라는 주제가 전시장을 관통한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세 명의 큐레이터는 민족과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미디어의 역할에 주목한다. 클라라킴 큐레이터는 18c 서구의 민족주의가 신문과 책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논의를 빌려 디지털 기술이 동시대의 사회적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묻는다.

오늘날 민주적인 만큼 정치구조와 자본의 힘에 포섭되어 있는 미디어에서 "정보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며 메시지는 갈수록 모호해진다. 마케팅은 우정을 가장하고 고독은 집단의 형태를 띠며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얼굴을 하고 있다."

따라서 미디어를 사회적 공간으로 해석할 때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문제가 '신뢰trust'다. 이는 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정보와 발언이 교류되는 전제이자, 그 영향을 결정하는 참여자의 태도다. 미디어의 매개 기능이 확장되고 있는 오늘날 상황은 <미디어시티서울2010>이 '트러스트'를 주제로 삼은 이유다.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프리미티브_분미 아저씨께 보내는 편지
니콜라우스 샤프하우젠 큐레이터는 "우리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수없이 많은 가상의 상대를 신뢰하게 된 상황에서, 이런 미디어 조건이 결정적인지, 그 조건을 우리가 변화시키고 전복시킬 수 있는지, 신뢰에 대한 올바른 정답은 어떤 기반에 근거해야 하는지에 대해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경을 넘는 미디어 기술이 민족과 국가라는 근대적 상상적 공동체를 약화시키고 있다고 해서, 공동체에 대한 기대와 요구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미디어는 오히려 새로운 공동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장이 되고 있다. 스미토모 후미히코 큐레이터는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으로 재조직된 원거리 공동체가 등장하는 현상과 그 표현 양식으로서의 예술 작품에 주목한다.

<미디어시티서울2010>의 동선은 미디어에 대한 이런 인문·사회학적 질문들을 쫓아간다. <미디어시티서울2010>은 주 전시장인 서울시립미술관 입구에서부터 관객의 '참여'를 요구한다. 수표원이 표를 받으며 그 날 신문의 헤드라인을 말한다. 관객의 반응에 따라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이 상황극은 독일 작가 티노 세갈의 작품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이 오가는 현대사회를 풍자한 것이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치는 큰 오렌지색 화면 역시 작품이다. 총 81개의 미묘하게 다른 오렌지색이 연속되는 빌럼 데 로이 작가의 영상 작품 '오렌지'는 언어로 완벽하게 포착할 수 없는 현실을 보여주는 듯 하다. 네덜란드의 국가 색이 오렌지색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국가주의에 대한 풍자이기도 하다.

여러 작가들이 국가와 미디어의 관계를 추적한 작업을 선보였다. 국가 권력은 미디어의 시선을 장악함으로써 그 정당성을 획득해 왔다. 이에 대한 대항적 작업들이 눈에 띈다. 일본 작가 고이즈미 메이로는 할복 자살하거나 자살 비행한 군인들의 모습을 통해 국가가 강요한 남성성의 히스테리적 면모를 드러낸다.

블라스트 씨오리, 율리케와 아이몬에의 순응
분쟁 지역은 민족주의와 국가주의가 가장 뒤틀리고도 격렬하게 나타난 무대였다. 이스라엘 작가 야엘 바르타나의 영상 작업은 지속되는 전쟁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서 비롯한 의례들이 이스라엘의 구성 요소임을 보여준다. 아르헨티나 출신으로 이스라엘로 이민간 작가 미키 크라츠만의 사진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접경 지역의 긴장감을 담았다.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내려다 본 '표적 살인'은 이스라엘 방위군이 반 이스라엘 세력을 암살할 때 쓰는 특수 렌즈를 통해 찍은 것이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일상이다.

국가의 이면을 포착한 작품들도 있다. 독일 작가 아네테 켈름의 '이스라엘 하이파의 조립식 주택, 1933-1935'는 1930년대 독일 나치 정부의 유대인 정책의 한 단면이다. 재정적 어려움을 해소하고 유대인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팔레스타인으로 유대인을 이주시키며 지은 집들이다. 미국 작가 캐서린 오피의 사진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취임식의 그늘을 보여준다. 희망에 가득 찬 관중이 아닌 스펙터클 바깥의 힘 없는 이들에게 초점을 맞춘다.

작가들은 새로운 미디어 기술에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어 보기도 한다. 중국의 첸 샤오시옹, 한국의 김홍석, 일본의 오자와 츠요시 작가는 '서경(西京)'이라는 가상 도시의 실체를 만들어 보인다. 서경의 역사와 경제적 현황, 그곳에서 열린 올림픽 등이 천진난만하게 펼쳐져 즐거움을 준다.

유목과 이주가 보편화된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상상되어 있는 공동체에 억압받는 대신, 스스로 자유롭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꿈꿀 수 있을까. 인도 작가 실파 굽타의 '노래하는 구름'은 개인과 집단의 무의식을 일깨운다. 하버드대학 심리학과 마흐자린 반야이 교수와 협력한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구름 모양으로 뭉친 수천 개의 마이크는 관객의 내면을 건드리는 모호한 노래를 불러준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작가 서도호의 영상 작업 <나/우리는 누구인가?: 유니-페이스>는 국가와 문화의 규정 이전의 인간 공통의 존재적 의미를 탐색한다. 작가가 1996년부터 지금까지 전세계에서 찍은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이 한데 겹쳤다가 흩어지는 이 명상적 작업은 생명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불교적 믿음에 기반하고 있다.

야엘 바르타나, 악몽
<미디어시티2010>의 전시는 근처 이화여자고등학교 심슨기념관과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분관으로 이어진다. 심슨기념관에서는 조덕현 작가의 '허스토리 뮤지엄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남성 중심의 '히스토리'를 여성적 입장의 '허스토리'로 균형 잡으려는 시도로, 다양한 연령의 여성들의 구술들로 기념관 곳곳을 채웠다.

서울시립미술관 경희궁분관에서는 가장 동시대적인 영상 작업들이 소개된다. 지난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감독 아피차퐁 위라세타쿤의 '프리미티브' 연작과 근대화에 의해 밀려나는 것들을 독특한 감각으로 기억하는 임민욱 작가의 작업 등이 상영된다.

관객들이 마지막으로 도달하게 되는 곳은 서울역사박물관 앞뜰이다. 오래된 우물을 통해 온갖 소리가 들려온다. 부엌에서 밥 짓는 소리, 참새 우는 소리, 차 지나가는 소리, 나무 사이 바람 소리가, 너무 오래되어 한 번도 듣지 못한 소리, 이제는 뜸해진 소리, 너무 자주 들어 무감각해진 소리와 늘 마음으로 그리는 소리가 뒤섞인다. 김순기 작가의 '우물의 침묵'이다. 작가의 변은 이러하다.

"우리는 여기에서 서울의 600년 세월을 거슬러 잠자고 있는 우물의 소리와 오늘의 소리를 듣고자 한다. 침묵은 소리의 부재가 아니오. 허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소음들을 들을 수 있는 마음의 열림이다."

정보와 발언, 스펙터클과 모순이 포화 상태에 이른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 혹은 삶의 조건 속에서 우리가 끝끝내 질문하고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조덕현, 허스토리뮤지엄
<미디어시티2010>은 11월7일까지 열린다. 전시 기간 중 한시적으로 영국 작가 블라스트 씨어리와 던컨 스피크먼의 아웃도어 프로그램도 진행된다.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를 공공 미디어로 접근해 관객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도록 이끄는 작업들이다. 일정은 홈페이지(www.mediacity.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술과 관계 맺는 인간의 감정이 중심"
블라스트 씨오리의

전화기를 드는 순간, 당신은 율리케이거나 아이몬이다. 율리케 메인호프는 극좌파인 적군파 활동을 하다가 수감되었고 1976년 자살로 생을 마감한 독일의 여다. 아이몬 콜린스는 열성적인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이었지만 훗날 밀고자가 되었고, 1999년 살해당했다. 수화기의 목소리는 묻는다.

"율리케입니까, 아이몬입니까?"

당신은 선택에 따라 다른 지령을 받게 된다. 걸어가시오, 앞에 적이 있습니다, 모르는 척 하시오 등등 지령을 따라 30분 정도 율리케와 아이몬의 삶을 체험한 후 마지막으로 질문을 받는다. 당신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극단적인 행동까지 할 수 있는지.

임민욱, 손의 무게
<미디어시티2010>의 아웃도어 프로그램 '율리케와 아이몬에의 순응'이다. 작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공개되었던 작품으로 전화라는 미디어를 통해 공공장소를 문화적 공간으로 변형시키는 동시에, 미디어 환경이 인간의 판단과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극적으로 탐색한다.

이 상황극의 고안자는 예술과 디지털 기술, 대중문화를 넘나들며 새로운 문화적 공간을 모색하고 있는 작가 그룹 블라스트 씨어리(Blast theory). 지난 4일 그중 한 명인 를 만났다.

이런 내러티브는 어떻게 고안했나.

60년대 철학자 필리파 푸트가 제안한 '전차(trolly)의 딜레마'에서 힌트를 얻었다. 전차가 고장나 단 한 번의 선로 변경만 가능한 상황인데 그대로 두면 5명이 치여 죽고, 방향을 바꾸면 1명이 치여 죽는 경우 선로를 변경하는 게 윤리적이냐는 질문이다.

인물들은 어떻게 설정했나.

매트 아담스
율리케와 아이몬은 매우 지적이며 거의 10년 정도의 '성장'을 거쳐 테러리스트가 된 인물들이다. 즉 폭력을 선택한 과정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다. 테러리스트는 다른 인종, 다른 종교 사람이라는 편견을 가진 서구인들이 많은데, 이들을 딜레마에 빠지게 할 수 있는 인물들이었다.

베니스비엔날레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나.

기대보다 더 강한 리액션을 보여줬다. 신념이나 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해 직접적으로 질문했기 때문인 것 같다.

<미디어시티2010>에서 '한국적'으로 바꿔볼 생각은 없었나.

인물들을 북한 테러리스트로 바꿔볼까 생각해 봤다. 하지만 한국 역사에 대해 완벽한 이해가 없는 외국 작가가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블라스트 씨오리의 작업은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공공미술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 한국에서는 정치적 힘의 지원 하에 공공미술 붐이 일고 있다. 미술을 홍보 수단으로 삼으려는 행정적 의도와 갈등을 빚은 적은 없나.

공공장소는 언제나 논란과 투쟁의 장이다. 가치에 대한 갈등이 일어난다. 영국은 다행히 공유지(common land)의 전통이 깊다. 하나의 힘이 장악하지 못했고, 작가와 활동가들의 대항 활동이 활발했다. 우리 역시 공공장소는 늘 시민을 위한, 시민이 목소리를 내고 집회를 열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으로 작업한다.

미디어아트 중에는 기술의 신기효과에 기대는 작업들이 있다. 가끔은 예술과 게임이 구분되지 않는다. 최신 기술에 현혹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작업에 긴장을 유지하나.

기술 자체가 놀랍거나 즐거움을 주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관건이다. 다만 어떤 기술에는 전시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기술과 관계 맺는 인간의 감정을 작업의 중심에 두려고 노력함으로써 그 점을 극복한다.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