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박물관 춘화전 <LUST>한국·중국·일본·유럽 네 섹션으로 총 114점 작품 선보여

토미오카 에이센의 '야쿠모의 언약' 중 다섯 번째 장면
지구 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에겐 네 가지의 기본적인 욕구가 있다. 식욕, 수면욕, 배설욕 그리고 성욕. 이들 중 유일하게 금기시되고 따라서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성욕이다.

대를 이어가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자 동시에 극한 쾌락의 수단이기도 한 성욕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적, 사회적인 규범에 갇혀 어둠 속에 감추어지고 때때로 음성적으로 '해소'되었다.

남녀 간의 사랑을 은근하게 혹은 노골적으로 묘사한 춘화 역시 책방 가장 깊숙한 곳, 박물관 수장고에 모셔지기 마련이었다.

오랜 시간 바닥과 가장 가까이에 놓여져야 했던 춘화가 밝은 조명을 받으며 세상 밖으로 나왔다. 동아시아 전문 박물관인 화정박물관에서 우리나라는 물론 동아시아권 전체에서 본격적으로 춘화를 조명해보는 최초의 전시를 마련했다. 감상의 대상뿐 아니라 학술연구의 대상으로서 춘화를 바라보며 제작 당시 사회문화에 한 발짝 다가서기 위함이다.

신윤복의 '사시장춘(四時長春)'에는 성인남녀가 아닌 어린 여종만이 등장한다. 급하게 벗은 듯한 두 쌍의 남녀 신발과 술상을 들고 방으로 들어갈지 말지를 망설이는 듯한 여종을 통해 방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짐작해볼 뿐이다.

춘궁화접선, 淸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사시장춘'을 포함해 한혜주 화정박물관장의 소장품으로 채워진 이번 전시는 '음란한' 춘화가 아닌 해학적이고 당대의 생활상이 가감 없이 드러난 '풍속화'인 춘화에 확대경을 들이댔다.

실제로 춘화의 에로틱함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알고 보면 그것은 야한 그림이 아니라 상상과 현실의 경계에 머무는 독창적인 스토리텔러가 되고 있음을 전시장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의 춘화와 유럽의 에로틱 아트 등 네 가지 섹션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총 114점이 전시되었는데, 아쉽게도 한국 작품이 가장 적다.

한국과 중국의 경계를 짓는 것은 금련배다. 전족의 모양을 본떠 만든 도자기로 남성들은 이곳에 술을 부어 마시기도 했는데, 이는 여성의 발에 대한 페티시즘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여성의 발에 대한 중국인들의 유난한 집착은 '춘궁화첩'(19세기 석판화, 작자미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2가지 체위 장면을 묘사한 화첩의 일곱 번째 그림에는 침대 위에서 잠든 여인의 음부를 바라보며 전족한 그녀의 발을 매만지는 남자가 있다. 여인의 발을 만지는 것만으로도 중국에서는 실제 성행위를 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할 정도로, 여성의 발은 가장 에로틱한 신체 부위로 여겨졌다. 또한 중국에는 결혼하는 딸에게 어머니가 혼수로 춘화를 지참시켜주거나 집에 두고 불을 피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하는 '피화춘도'도 전해진다.

몽골에서 온 풍속화는 '말 위의 사람'이란 제목으로 공개됐다. 기마민족의 특성은 춘화에서도 드러난다. 영화 <색, 계>를 따라 하던 중국 연인과 부부들을 병원으로 실려가게 했을 법한 '묘기' 수준의 현란한 체위가 말 위에서 일어난다. 몽골의 문화적 특징과 해학을 다분히 담아낸 이 작품 속에선 채찍을 든 여자의 등장으로 여성의 사디스트적인 성향을 보여주기도 한다.

춘궁화첩-일곱 번째 장면, 작자미상, 淸 19세기 말
중국에서는 성애 생활을 묘사한 회화를 춘궁(春宮)또는 비희도(秘戱圖)라고 불렀는데, 봄날 밤에 궁궐 안에서 벌어진 일을 묘사가 그 시작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명나라 이후 강력한 성 억압 정책이 시행됐지만 명대 후기에 춘궁화(春宮畵)는 가장 번성했으며 이는 청대는 물론 민국시대에까지 이어졌다.

일본 춘화의 가장 큰 특징은 화면 속 인물의 비율이다. 사람의 모습보다는 주변의 다양한 생활상과 주변 인물들이 다수 보이는 중국의 춘화와 달리, 일본의 화풍은 춘희를 느끼는 두 명의 인물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는 점이다. 또한 과장되게 묘사한 남녀의 성기, 강렬한 색채로 꾸며진 춘화는 판화가 발달한 에도 시대에 낱장 판화나 두루마리, 화첩 또는 그림책 등으로 제작돼 늘 곁에 두고 즐길 수 있게 했다.

일본실에 들어서면 처음으로 볼 수 있는 '풍류염색마네몬' 중 24번째 작품은 다색판화의 선구자로 알려진 스즈키 하루노부의 작품이다. 콩처럼 작아진 총각 마네몬이 일본 각지를 돌아다니며 남녀의 애정행각을 관찰하며 색도수행을 한다는 이야기가 담긴 이 작품은 야하다기보다 발상이 기발하고 코믹하다.

에도의 대표 화가인 가츠시카 호쿠사이는 50대부터 춘화에 집중해 '다양한 사랑의 방식'이라는 12편의 연작도 완성했다. 한바탕 사랑을 끝내고 잠든 부부 옆에서 교미 중인 쥐를 은근히 바라보는 고양이의 표정이 재미있다. 에도시대 후기 대중적 인기가 높았던 우타가와 파, 메이지 시대의 미인화가로 이름을 날린 토미오카 에이센까지 일본 회화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화가들의 작품도 전시되어 있다.

제 3자의 훔쳐보기, 내용과는 전혀 관계 없는 춘화가 삽화로 들어간 소설책, 이름 밝히기를 꺼려 '은호'를 사용했던 춘화 작가들, 오른쪽으로 펼치면 미인도가, 왼쪽으로 펼치면 남녀의 8가지 체위가 등장하는 '춘궁화접선'(부채), 퇴폐주의가 유행했던 19세기 유럽에서 허가받은 사람들에게만 비밀스러운 출입을 허락했던 '세크레툼'은 시대와 나라와 상관없이 '성'을 대하는 은밀한 사람들의 방식을 보여주는 예다.

'성'은 양성적이고 학술적으로 조명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힌트는 10월 2일, 화정박물관에서 이화여대 홍선표 교수, 일본 국제일본문화센터의 하야카와 몬타 교수, 영국 런던대학교 소아스의 타이몬 스크리치 교수 등을 초빙한 에로틱 아트에 대한 강연회에서 얻을 수 있다. 9월 14일부터 12월 19일까지 열리는 는 19세 이상 성인만 관람할 수 있다.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