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의 탄생> 일본 현대작가 5人 '새로운 해석'에 초점 흥미로운 시선 담아

리사 사토 작품
"여기는 내 아버지이고 이쪽은 새 아버지예요. 이 사이에 '고하치(こはち)'가 있지요. 고하치는 이들의 커뮤니케이션을 원활하게 해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졌거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일종의 메신저 역할을 해주는 거죠."

자신의 워크북에 있는 사진 중 동양인 남성과 서양인 남성 사이에 자리한 작고 새하얀 고하치를 가리키며 리사 사토는 설명했다.

일본어로 '작은 8'이라는 뜻을 가진 고하치는 리사가 10년 전부터 공공미술의 조각, 비디오, 페인팅, 퍼포먼스 등 여러 방식으로 표현해 온 캐릭터다. 전시에서 공개된 캐릭터는 고하치와 완전히 일치하진 않지만 리사는 상관없다고 했다.

마치 강낭콩처럼 생긴 고하치는 그녀가 생각하는 가장 단순한 형태를 표현해 준다. 가장 심플하고 작은 모습으로 언제나 사람들 속에 몰래 숨어드는 그것은 마치 사람처럼, 일상 속 인간의 밝고 어두운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2000년 필립모리스 수상작가이기도 한 리사 사토의 작품이 전시 중인 곳은 경복궁 역 부근에 있는 갤러리 팩토리. 지난 9월 7일에 오픈한 전시 <설화의 탄생(Alive _Birth of a Tale)>에는 그녀를 비롯해 쇼인 카지, 료코 아오키, 마사코 스즈키, 요이치 나가노 등 일본의 현대미술 작가 다섯 명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동경 소재의 출판사이자 갤러리인 FOIL과의 공동기획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지난 3년간의 공동 기획과정 결실 중 하나로, 지난 여름에는 FOIL Gallery에서 한국 현대미술작가들 전시가 이루어진 바있다.

출판, 사진 전문지, 갤러리 등을 운영하는 FOIL은 '요시모토 나라'의 작품집으로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 모인 5인의 일본 작가들은 모두 FOIL을 통해 워크북을 출판해 자연스럽게 갤러리와도 교류하는 이들이다. 이번 전시 오픈에 맞춰 FOIL Gallery의 공동기획자 타케이 마사카즈, 작가 리사 사토와 쇼인 카지가 내한해 그들 작품에 대한 설명을 상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 '설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뿐 아니라 신적인 존재들의 등장과 위대한 영웅의 탄생을 다루며 온갖 상상력을 자극하는 힘을 가진다. 그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시대에 따라 혹은 전하는 사람에 따라 변화된 의미와 새로운 이야기를 더해가기 마련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 전시는 '새로운 해석'에 초점을 맞추며 <설화의 탄생>이란 전시명을 사용했다. 이러한 '새로운 해석'은 작가들이 세상에 들이대는 새로운 프레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갤러리 팩토리에서 보여지는 작품 속에는 현재 일본에서 살아가는 작가들이 바라보는 일본 혹은 세계를 향한 시선이 내밀하면서도 흥미롭게 담겨 있다.

동경의 유명 패션 사진작가인 나가노 요이치는 여러 섬을 돌아다니며, 섬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은밀한 일상을 촬영해 왔다. 뚝방에서 키스하거나 물장난 치는 10대들이나 해녀와 같이 섬만이 가진 독특한 문화적 풍경은 이국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유럽에서 특히 호응을 얻고 있다.

료코 아오키 작품
이번 전시에 선보인 작품은 바닷속에 빠진 것처럼 연출한 섬사람들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프랑스 영화 <그랑블루>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 사진들은 비밀스럽고 신비스럽게 다가온다.

2007년 제 12회 카셀 도큐멘타의 일본관에 유일하게 초대되며 세계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 료코 아오키의 작품은 극히 만화적이지만 오히려 일본의 팝 작가 대열에 속하지 않기 위해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보다는 내면적인 작업에 몰두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갤러리 팩토리 전시공간 한쪽에는 세밀하고 장식적인 그림이 인상적인 마사오 스즈키의 작품도 걸려 있다.

세계 곳곳의 강과 바다를 카메라 렌즈에 담아온 쇼인 카지는 일렁이고 흐르는 물속에서 종교적 명상을 하면서 자신의 깊숙한 내면과 마주한다. 쇼인 카지는 불교 종파의 하나인 진언종 승려로, 일본에서 여섯 번째로 큰 섬인, 니가타현의 사도 섬에서 수행 중이다.

그가 사진작가의 대열에 들어선 계기는 1999년부터 5년간 사도 섬에서 파도를 촬영해온 사진이 일본사진가협회에서 신진사진작가상을 수상하면서다. 그의 작품은 "마치 고행과도 같은 과정을 통해 얻은 자연의 한 순간을 포착하며, 자연이 지닌 빛과 어둠, 아름다움과 두려움, 고요함과 복잡함 등의 양면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가 한국 관람객들에게 선보이는 작품은 신작인 '카와(かわ)' 시리즈. 일본은 물론,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하면서 담아온 강의 면면이다. 자연이 뿜어내는 신선한 물의 다양한 표정은 쇼인 카지에게 내면을 고요히 바라보는 명상의 도구 또는 종교와 같은 지점에 머문다.

요이치 나가노 작품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국경에 있는 이구아수 폭포에 깊은 인상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세계 곳곳의 강을 찍기 시작했죠. 한겨울에 간 중국에서 꽁꽁 얼어붙은 강 위에 현미경을 놓고 촬영한 일이 가장 기억이 남네요." 첫 사진집 발간 이후 6년 만에, 곧 그의 '카와' 시리즈 워크북이 발간된다고 한다. 가깝고도 먼 나라, 현대의 일본 작가들이 '현재'를 담은 이번 전시는 10월 3일까지 이어진다.


쇼인 카지 작품

이인선 기자 kell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