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티벌 場>8년 만에 부활·이질적 장르 간 만남 속출… 학술행사도 열려

최찬숙, 극단 몸꼴, 엘리어스 코헨의 'Private Collection'
호주의 한 재즈 드러머가 우연히 한국의 한 무형문화재의 연주를 듣고 충격을 받아 한국을 찾았다. 그가 들은 신기의 연주의 주인공은 동해안 별신굿 기능보유자 김석출 옹. 파란 눈의 드러머는 '마스터'와 만나 또 다른 경지의 즉흥음악을 사사하게 된다.

이달 초 개봉한 영화 <땡큐, 마스터 킴>은 우리 음악의 숭고함이 재발견되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재즈와 별신굿이라는 이질적인 장르의 만남이 깊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국내에서 외면받는 예술이었던 별신굿은 이 실험을 통해 대중에게 주목받고 있다.

다른 성격의 예술들이 다른 장르와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새로운 장을 모색하는 움직임은 최근 두드러지고 있다. 9일부터 개막한 '페스티벌 場(장)'에서는 이처럼 이질적인 장르들의 만남이 속출했다. 음악과 설치미술이 만나는가 하면 현대무용과 오페라, 회화가 한 무대에 섰다. 동해안 별신굿도 영상, 무용과 어우러지며 또 한 번 이목을 끌었다.

미디어와 공연예술의 결합과 교류

지난해 8년 만의 부활에 성공했던 페스티벌 場은 원래 1997년 국내 공연예술계의 주요 아티스트들이 다양한 무대를 실험하기 위해 대학로 소극장 일대에서 자발적으로 개최했던 공연예술축제다.

블루엘리펀트(전인정, 김용택, 박미향 등)의 '원'
축제의 이름인 '場'은 예술의 무한한 가치를 창출하는 '場'의 의미처럼 공연예술장르의 융합과 신진 예술가의 발굴, 관객과 예술가와 소통을 염두에 둔 제목이다. 이런 취지를 담아 올해 행사는 미디어와 공연예술 간의 결합을 테마로 삼아 장르 간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데 중점을 뒀다.

페스티벌 場의 시작을 알린 것은 독일 뒤셀도르프의 탄츠하우스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재독 안무가 전인정의 <원(一, one)>이었다. 연극, 영상, 음악,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작업을 해온 전인정은 이번 작품에서 영상과 무용, 동해안 별신굿의 교집합에 시도했다. 무형문화재 김용택과 대금의 성민우의 연주에 맞춘 무용수들의 움직임, 이들 사이로 메워지는 영상의 엇갈림은 한 편의 불교화를 연상시켰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한국관 대표 작가로 선정되어 국내에 알려진 양혜규 작가는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각색해 무대에 올리며 문학과 연극, 설치미술의 조우를 시도했다. 움직이는 조명 아래에서 뒤라스의 문자 언어가 여배우의 낭독을 통해 음성으로 전환되는 과정은 또 다른 형태의 '글쓰기'를 경험하게 했다.

또 독일에서 활동 중인 비디오작가 최찬숙은 에서 극단 몸꼴, 칠레의 안무가 엘리어스 코헨과 협업하며 몸짓과 영상을 기타나 첼로 같은 악기 소리와 결합하는 실험을 했다.

한편 김원, 안애순, 국은미 등 여러 안무가들과 함께하며 춤과 영상의 결합 작업을 해온 신정엽 작가는 최첨단 미디어 기술과 퍼포먼스가 결합된 두 편의 공연을 선보여 화제가 됐다. 국악과 인도 전통무, 연극과 현대무용, 오페라와 추상미술이 미디어 아트와 다양한 형태로 얽힌 와 이 공연에 참여한 모든 VJ와 사운드 아티스트들이 디지털 미디어를 기반으로 펼치는 잼 콘서트 가 그것이다.

사무소(양혜규, 유정아 등)의 '죽음에 이르는 병'
해금 연주자와 소프라노, 카탁댄서와 현대무용가, 프랙탈페인팅 아티스트가 한 자리에 모인 공연은 페스티벌 場이 지향하는 '장'의 모습을 펼쳐보였다.

공연예술, 왜 미디어와 만났나

한편 참가작품 공연에 앞서 참가 작품들의 주제를 관통하는 학술행사도 열려 관계자들의 관심이 집중됐다. '공연예술, 미디어를 만나다'를 테마로 한 학술행사에서는 스미토모 후미히코 도쿄현대미술관 수석큐레이터를 비롯해 서현석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교수, 장재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음악테크놀로지과 교수 등 3명이 발제를 했다.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 예술작품과 관객의 소통 방식'을 주제로 발제한 스미토모 후미히코 큐레이터는 다극화의 시대를 맞아 나타나고 있는 예술작품의 변화와 그 의미를 설명했다. 특히 그는 이런 시대에 나타난 예술작품의 특징으로 '메타 내러티브(meta-narrative)적'인 특성에 주목하며 최근 미디어와 공연예술의 결합 양상에 의미를 부여했다.

서현석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 대학원 교수는 "새로운 사유의 영역에서 시각미술과 공연예술은 새로운 형태로 만나고 있다"며 이제까지와는 다른 장이 열리고 있음을 설명했다. 그는 "공연예술의 가장 식상한 전통 속에서 미술의 새로운 힘이 창출되며, 모더니즘 미술의 진부한 문제의식은 무대를 확장시켜준다"고 현재의 흐름을 진단하며 예술 장르가 서로의 개입과 반영에 의해 모든 매체들의 정체성이 새롭게 재창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Nebular Factory(신정엽, 박호빈, 안광준 등)의 'The Wall-Remixed Conventions'
장재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음악테크놀러지과 교수는 현재 음악과 테크놀로지의 긴밀한 결합이 이루어지는 사례들을 소개했다. 그는 "사람들은 아무 의미 없는 듯한 3차원 컴퓨터그래픽과 귀에 거슬리는 전자음에 열광하고, 전자회로에 오디오 플러그를 여기저기 붙여가며 연주하는 서킷 벤딩(Circuit Bending)은 많은 젊은이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고 달라진 예술의 경계를 지적했다.

장 교수는 "테크놀로지를 전통적 악기를 대체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재미있다"고 감상을 말하며 자신이 결성해 활동하고 있는 태싯 그룹(Tacit Group)의 사례도 함께 전달했다. 그는 "오늘날 많은 작곡가들이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경계에서 이전까지 없었던 것을 창조하고 있다"며 "아마도 테크놀로지의 세계에서 새로운 종족이 되어가고 있는, 새로운 본능 때문일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모인 관계자들은 20세기를 통해 무너진 예술의 경계가 다시 세워지고 있다는 데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들은 그 지형도가 예전과는 완전히 달라서 새로운 방식 자체가 새로운 예술의 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개념의 이해와 교류가 중요한 시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송준호 기자 tristan@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