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양평환경미술제,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열려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에 설치된 에이조 사카타의 '버드나무 물소'
가을을 맞아 자연 속 미술제가 속속 열리고 있다. 9월16일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가 시작되었고 10월에는 양평환경미술제,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가 막을 올린다.

이들 미술제에서 강가와 산, 나무와 풀밭은 단지 예쁜 뒷배경이 아니다. 자연을 전시장으로 삼음으로써 미술은 생명과 정신, 환경과의 관계 등 도시문명이 간과한 가치들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관객이 체험하는 아름다움도 미술관 안에서 느끼는 것과 다르다. 미술 작품이 아니라 자연의 가치야말로 자연 속 미술제의 주인공일 것이다.

자연 속에서 태어나고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생태미술,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일본 작가 에이조 사카다는 금강 근처에 '버드나무 물소'를 심었다.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이 물소 모양 조형물은 봄이 되면 푸른 싹을 틔워 탈바꿈할 것이다. 잘라 심으면 뿌리가 나는 버드나무의 생명력 때문이다. 작가가 착안했지만 시간이 완성하는, 그야말로 인간과 자연의 협업 작품인 셈이다.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에 설치된 파웰 훌레벡의 '신세대'
올해 네 번째 열리는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는 '자연미술'의 본연에 충실한 생태비엔날레다. 모든 야외 설치작이 자연 속에서 태어나고 되돌려진다. 작가들은 한달 여 동안 현장에 머물며 체득한 것들을 풀어낸다. 흙과 돌, 바람과 물, 빛과 소리까지 작품 속으로 불러들여온다. 자연의 리듬과 작가가 자연과 맺은 관계가 곧 미술이 된다.

한국 작가 김순임은 연미산에 원형의 자리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 바닥에 앉아 주변을 정리했다. 흙을 고르고 잡초를 뽑고 돌을 밀어냈다. 작업이 길어질수록 원은 넓어지고 중심은 부드러워졌다. 새로운 생명이 자라나기에 적합한 환경이 되어갔다. 뒷일은 자연의 몫이다. 작가가 떠난 자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인간의 눈에 띄지 않게 될 것이다.

남성과 여성을 형상화한 나무 조각 틈에 새로운 나무를 잉태시킨 폴란드 작가 파웰 홀레벡의 '신세대'는 생명의 이치를 드러낸다. 나무가 자라면서 조각은 쪼개지고 벌어질 것이다. 모든 새로운 생명은 부모의 고통과, 전 세대의 해체를 토양으로 삼는다. 인간과 자연 간 관계에 대한 메타포로 볼 수도 있다. 자연의 힘 앞에서 인간의 생애는 짧고 무력하다.

비엔날레 형식으로 열린 지는 6년째지만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뿌리는 그보다 훨씬 깊다. 1981년 자연미술에 뜻을 둔 충남 공주의 작가들이 모여 만든 야투(野投)야외현장미술연구회가 출발점이다. 1991년부터 해외 작가들과 교류한 금강국제자연미술전이 열렸고 2004년 국제적 작가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비엔날레가 시작됐다.

올해에는 14개국 44명의 작가들이 참여했으며 연미산 자연미술공원과 금강둔치공원, 정안천생태공원에서 열린다. 9월16일에 개막했고 11월15일까지 이어진다.

고승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총괄 본부장
올해 주제는 '자연과 평화'다.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면서 살 것인가, 는 현재 가장 첨예한 이슈이기도 하다. 독일 작가 토니 쉘러는 언제든 위험한 때에 꺼내어 쓸 수 있도록 사랑과 평화를 채워 둔 탱크를 조각했다.

인간다움과 자연스러움을 진지하게 들여다 보는 일은 오늘날, 아이러니하게도, 하나의 저항이 되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간 불균형과 분쟁이 상시화된 세계에서, 저 조용하고 명상적인 작업들은 가장 자연스러울 뿐 아니라 가장 정치적이기도 하다.
홈페이지 www.natureartbiennale.org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의 살림꾼인 고승현 총괄 본부장은 야투야외현장미술연구회를 모태로 한 한국자연미술가협회 회장이다. 군사독재정권 하 한국사회의 정치, 사회적 모순이 그가 본격적으로 자연미술을 하게 된 계기다. 당시 혼란 속에서 한 고민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

어떻게 야투야외현장미술연구회를 만들게 됐나.

-대학에서 미술 교육을 전공하던 중 군대에 다녀왔는데, 복학한 학교는 무척 어지러웠다. 광주민주화운동, 12.12 사태 등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졌던 때다. 사회 혼란 속에서 "미술은 무엇인가?"란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하게 됐다. 인간 중심으로, 제도권 교육 중심으로, 도시 중심으로 만들어진 미술이 아닌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난 미술을 찾고 싶었다.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에 설치된 토니 쉘러의 '평화의 탱크'
비엔날레 형식의 행사를 열게 된 이유는.

-처음에는 지역을 중심으로 한 문화예술 운동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유럽 사회의 반응이 좋았고, 작가들도 우리와 함께 작업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작가 네트워크를 강화하기 위해 국제미술제, 비엔날레를 열게 됐다. 자연은 인류 공통의 주제가 아닌가.

올해 비엔날레에 최근 상황이 반영된 부분이 있나.

-한국도 올해 아열대 기후를 보일 만큼 전세계적으로 환경 문제가 심각해지지 않았나. 인간이 자연을 거스르며 살았기 때문이다. '자연과 평화'라는 주제는 자연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이다. 30년 전에는 생소했던 자연미술이 최근 각광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 자신도 예전에는 자연에 천착했는데, 상황이 달라짐에 따라 환경 이슈까지 넓게 생각하게 됐다.

내년은 야투야외현장미술연구회 30주년이다. 특별한 계획이 있나.

작년 양평환경미술제에 설치된 최평곤의 '윗나루터 할아버지'
-이제까지 쌓여온 자료와 역사를 정리하는 아카이브전을 계획하고 있다. 금강이 자연미술의 메카가 된 만큼 국제적 작가 네트워킹도 더욱 적극적으로 할 생각이다. 예를 들면, 30년 전 이곳에서처럼 자연미술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이란 사회에 주목하고 있다.

지역 커뮤니티 형성하는 환경미술, 양평환경미술제

올해 3회째인 양평환경미술제는 양평의 지역적 특성으로부터 출발했다. 한강 상류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서울 근교이면서도 자연 환경과 농촌 생활 양식을 보존한 이곳에는 문화예술인이 많이 모여 있다. 미술 작가만 해도 약 300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친환경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양평환경미술제의 취지다.

따라서 양평환경미술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지역 커뮤니티 형성이다. 주민 참여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지역 작가, 미술 기관과 협력한다. 올해에는 작년에 이어 작가와 주민이 함께 하는 '우리 마을 가꾸기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동서울대학교 교수와 학생, 양평군 내 초등학생들이 공동으로 마을의 쉼터가 될 아트벤치를 만들 예정이다. 와갤러리, 마나스 아트센터, 닥터박갤러리 등은 양평의 자연 환경을 주제로 한 작품을 전시한다.

내년 4월 완공 예정인 양평군립미술관 주변은 앞으로 양평 문화예술의 허브가 될 장소로 소개된다. 이곳에 설치되고 있는 일본 조각가 세키네 노부오의 작품이 공개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환경아트페어, 환경영화제 등의 부대행사가 마련된다.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에 설치된 육근병의 'The Sound of Landscape+Eye for Field'
'자연을 그리는 세 번째 이야기'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올해 양평환경미술제는 10월23일부터 11월7일까지 열린다. part21.net

물질적 삶 넘는 정신적 가치를 찾아,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

대표적인 산업도시 울산에서 자연과 함께 하는 미술제가 열린다는 사실은 언뜻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산업도시이기 때문에 더더욱 자연의 가치가 필요하다. 올해 4회째를 맞는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에서 자연은 물질적 삶이 망각한 정신적, 정서적 영역으로 해석된다.

홍순환 예술감독은 "집중적으로 산업화 과정을 겪은 울산은 경제수준은 높을지 몰라도 문화예술적 기반은 취약하다. 정신적, 정서적 소통을 이끌어내려는 것이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의 기본 취지"라고 설명했다.

올해 주제인 '길 위의 길'도 그런 뜻을 담고 있다. 물질적 풍요를 쫓은 기존의 길을 넘어 인간다움과 행복, 관계를 생각하는 새로운 길을 찾자는 것이다. 소통이 첫째 과제이기 때문에 다가가기 쉬운 작품들 위주로 미술제를 꾸렸다.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에 설치된 김석의 'Beat Tree'
오픈 퍼포먼스가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의 성격을 대변한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낸시 랭과 현대 문명 속 삶을 성찰하는 서울부부가 미술제의 막을 올린다. 특히 조광희, 김현주 두 명의 퍼포머로 구성된 서울부부의 'How do you just live?'는 도시 생활에 길들여진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조광희 작가는 최대한 천천히 먹는 동작을 통해 빠른 속도에 반대한다. 김현주 작가는 자신의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의상을 떼어냄으로써 필요 이상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느라 허덕이는 삶의 방식을 비판한다.

한국 작가 중에는 육근병, 김기라가 초대 작가로 선정됐다. 육근병의 대형 설치 작품 'The Sound of Landscape+Eye for Field'는 그 자체가 하나의 시선으로, 관객과 마주하며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묻고 답한다. 김기라 작가의 '20세기 슈퍼 히어로즈'는 대중문화 속 영웅 캐릭터들을 해체, 재조립해 만든 혼성 괴물로 20세기의 정신적 바탕을 유머러스하게 풍자한다.

태화강국제설치미술제는 10월1일부터 12일까지 태화강 둔치와 옹기엑스포 행사장에서 열린다. 초대작가 6명을 포함한 40여 명 작가가 참여했다. www.teaf.co.kr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